‘그 겨울, 나는’, 기성세대에 고민+가난 물려받은 N포세대의 현실
입력 2022. 11.24. 16:15:06

'그 겨울 나는'

[유진모 칼럼] 오는 11월 30일 개봉될 영화 ‘그 겨울, 나는’(오성호 감독)은 제목만큼이나 을씨년스럽지만 꼭 짚어 보아야 할 사회적 문제를 정곡으로 찌른다는 점에서 주목 받아 마땅한 작품이다. 29살 동갑내기 경학(권다함)과 혜진(권소현)은 동거 커플이다. 경학은 경찰공무원 시험을, 혜진은 한국관광공사 입사 시험을 각각 준비 중이다.

혜진은 공사 입사에 실패하지만 나름대로 탄탄한 중소기업에 입사한다. 경학에게 청천벽력 같은 전화가 온다. 예전에 어머니가 은행에서 자신의 명의로 2000만 원을 융자 받았는데 이제부터 매달 100만 원이 넘는 돈을 분할 상환해야 한다는 것. 그는 주머니를 털어 친구의 중고 스쿠터를 구입해 음식 배달을 시작한다.

말이 ‘알바’이지 음식 배달은 그야말로 전쟁이다. 식당과의 갈등, 손님의 클레임, 심지어 동료들과의 갈등까지 하루하루가 싸움터를 오가는 듯하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시험공부는 손에서 멀어진다. 가장 마음 아픈 것은 혜진과의 다툼이다. 혜진도 신입 사원 생활이 녹록치 않아 신경이 예민할 대로 예민하게 곤두서 있다.

게다가 혜진은 새벽에 일어나 출근해야 해 일찍 잠자리에 들지만 경학은 밤늦게 들어와 느지막이 출근하므로 서로의 안면을 방해하는 일로 자주 다투게 된다. 혜진은 경학이 조금 더 공부에 몰두할 수 있게 만들어 주려고 어머니에게 돈을 꾸어달라고 한다. 혜진은 경학의 짐을 치우지만 들이닥친 어머니는 남자 팬티를 발견한다.

동거하는 걸 어머니에게 들킨 것이다. 어머니는 크게 야단치며 동거를 반대한다. 직장 상사가 점잖기는 하지만 노골적으로 접근해 오자 혜진은 연인이 있다며 선을 긋는다. 그 모습을 일을 하던 경학이 발견한다. 잠자리에서 그는 등을 돌린다. 그리고 당분간 떨어져 있자며 방을 보러 다니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헤어지자고 한다.



경학은 배달 사무실에서 특히 막내 영민과 갈등을 빚는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트럭에 부딪히어 사망하는 것을 목도하는데. 이 영화의 제목과 배경이 겨울인 이유는 현재 대한민국 대다수의 젊은이들이 꽁꽁 얼어붙은 환경 속에서 살고 있다는 의미이다. 감독은 그게 자본주의의 폐해인지, 정치인이나 경제 정책의 잘못인지는 따지지 않는다.

그저 젊은 두 연인의 어긋남을 통해 현실을 매서우리만치 후벼 팔 따름이다. 왜 대한민국 젊은이들 대다수가 ‘N포세대’가 됐을까? 굳이 경제학자가 아니더라도 피부로 겪어 왔기에 웬만큼 살아 본 사람들은 안다. ‘개천에서 용 난다.’라는 말은 전설이 된 지 오래되었다는 것을. 부와 가난은 ‘거의 반드시’ 대물림되기 마련이다.

가난한, 혹은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은 아주 치밀한 거대 범죄를 저지르거나 로또 복권 1등에 당첨되지 않는 한 영원히 생계 걱정을 해야 한다. 경학의 처지는 그 정도만 되어도 다행이라고 웅변하는 듯하다. 그렇잖아도 가난하고, 부모에게 물려받은 것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 같은 그는 오히려 빚을 상속 받는다.

이는 기성세대가 ‘n포세대’에게 뭔가 도움이 될 만한 것을 물려주거나 최소한 그럴 가능성이 높은 길을 닦아 준 게 아니라 오히려 걸림돌이 될 만한 환경을 조성했다는 의미이다. 지난달의 이태원 참사만 보더라도 ‘꼰대들’은 사회 문제를 분석하거나 정치와 행정을 비판하려 하지 않고, ‘그러게, 거길 왜 가?’라고 혀를 끌끌 찼다.



그 ‘꼰대들’이 젊었을 때 후세에게 보다 발전적인 대한민국을 물려주기 위해 열심히, 건전하게 일하고, 투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정부와 정치인을 매의 눈으로 감시하면서 직언을 아끼지 않았다면 대한민국 젊은이들의 현실이 이토록 암울해졌을까? 21세기 대한민국이 한류 관련 도약을 제외하면 대부분 우울해졌을까?

아직도 천재로 추앙 받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각각 이론적 유토피아인 공산주의를 주창하는가 하면 민주주의를 다른 시각에서 보았지만 어쨌든 모든 사람들이 잘 살 수 있는 안락한 세상을 꿈꿨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국가가 국민에게 봉사하고, 오직 국민을 위하는 길을 걷는 것을 정치 철학으로 삼아 설파했다는 것이다.

이 영화는 각본의 문제인지, 연출의 문제인지 중간 중간 살짝 어색하기는 하지만 착 가라앉아 시종일관 침울함을 안겨 주는 전체적 분위기만큼은 꽤 세련됐다. 두 가지 다 해 낸 오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니 그 정도면 충분한 합격점을 받을 만하다. 남녀 주인공의 현실적 문제점 묘사를 통해 그런 사회적 배경을 유추케 만드는 재주!

다음은 사랑에 빠진, 그러나 매우 어려운 현실에 처한 젊은 남녀의 심리 묘사이다. 이전까지만 해도 평화롭고 사랑스러운 분위기였던 두 사람은 경학 어머니의 빚 상환과 혜진 어머니의 동거 확인, 그리고 혜진의 취업 후 변해 간다. 나날이 싸우는 횟수와 시간이 는다. 수위도 높아진다. 그러나 왜 싸우는지, 해결책은 뭔지 모른다.

감독의 경험을 통해 탄생된 시나리오이기에 온몸에 소름이 돋을 만큼 현사실적이다. 마지막 두 가지 시퀀스는 관객들에게 매우 강렬한 인상을 줌과 동시에 공감대를 퍼뜨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시간이 흘러 삭발을 하고 기숙사가 딸린 지방 공장에 취업한 경학은 실수로 기계에 손이 잘릴 뻔한 사건에 놀라 오열한다.

이게 바로 기성세대가 ‘N포세대’에게 물려준 현실 세계이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고 서점과 문구점으로 향한다. 누군가 ‘아프니까 청춘이다.’라고 이야기했는데 오늘날의 현실은 ‘어른들이 그렇게 만든 세상에 태어난 청춘이니까 아픈 것.’이다. 29살의 경학, 혜진과 59살의 기성세대가 함께 머리를 맞댈 필독서.

[유진모 칼럼 / 사진=더쿱디스트리뷰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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