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극 ‘섬: 1933~2019’, 차별의 역사를 딛고 선 사랑[리뷰]
입력 2026. 10.15. 15:24:00

'섬: 1933~2019'

[셀럽미디어 정원희 기자] 하나의 무대 위에서 1933년, 1966년, 2019년이라는 세 개의 시공간이 교차한다. 일제강점기 한센인들의 참혹했던 소록도 강제 이주, 소록도에서 헌신한 오스트리아 간호사들의 사랑, 그리고 오늘날 발달장애 아동 가족이 마주하는 사회는 우리에게 어떤 질문을 던질까.

음악극 '섬: 1933~2019'가 세 번째 시즌으로 국립정동극장 무대에 다시 올랐다. 역사 속 실존 인물의 삶과 동시대의 목소리를 무대 위에 담아온 '목소리 프로젝트'의 두 번째 작품으로, 1966년부터 2005년까지 40여 년간 소록도에서 한센인들을 위해 헌신한 마리안느 스퇴거와 고(故) 마가렛 피사렉의 삶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섬: 1933~2019'는 단순히 지나간 역사를 돌아보거나 동시대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나의 무대에 유기적으로 엮으며, 그 사이에서 반복되는 차별과 편견, 그리고 그럼에도 서로를 보듬으려는 인간의 마음을 마주하게 한다.



작품은 일제강점기 조선나예방령으로 소록도로 강제 송치된 한센인 백수선의 이야기(1933년), 카톨릭 재속회원 신분으로 소록도에 입도해 40여 년간 한센인들을 위해 헌신한 간호사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이야기(1966년), 그리고 발달장애 판정을 받은 아이 지원을 키우며 세상의 냉대와 싸우는 고지선의 이야기(2019년)를 한 무대에 배치한다.

세 시대 속 인물이 저마다 놓인 시대와 환경은 다르다. 그러나 작품은 이들을 하나의 서사 안에 교차시킴으로써 시대가 달라져도 반복되는 사회적 태도를 비춘다. 우리는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구분하고, 그와 함께 살아가기보다 경계 바깥으로 배제하려는 태도를 무대 위에서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이 작품은 과거의 비극을 현재의 문제를 설명하기 위한 단순한 사례로 소비하지 않는다. 과거 백수선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기억되어야 할 삶이고, 현재 고지선의 이야기는 지금 우리가 마주해야 할 엄혹한 현실이다. 그러나 '섬: 1933~2019'은 어느 한쪽을 희생시키지 않으면서 두 시대를 맞물리게 만들고, 관객은 자연스레 과거와 현재가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연결은 작품의 제목인 '섬'에 대한 사유로도 확장된다. 쉽게 생각하면 작품 속 '소록도'를 생각할 수 있지만, 어쩌면 섬은 누군가를 우리와 구분 지으면서 만들어지는 공간일지 모른다고 작품은 말한다. 결국 섬을 없애는 일은 그들을 고립시키는 경계를 돌아보는 데서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섬: 1933~2019'은 차별과 폭력의 반복만을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 안에서 사람들이 서로를 보듬는 온기를 놓치지 않는다는 점이 이 작품이 지닌 진정한 의미다.

특히 소록도에서 헌신한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서사는 세 이야기를 잇는 중심축으로 볼 수 있다. 이들이 보여주는 사랑은 단순한 동정이 아니다. 사회가 만든 경계 너머로 다가가고,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삶의 태도에 가깝다. 차별이 사람들을 서로 멀어지게 만든다면, 이들은 사랑이 그 거리를 기꺼이 좁히려는 행동이라고 말한다.

결국 작품은 세상이 배제한 누군가를 나까지 외면할 필요는 없다는 사실, 사회가 만들어 놓은 경계 안에 반드시 갇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관객들에게 조용히 일깨운다. '섬: 1933~2019'은 차별의 시선이 시대를 넘어 반복되듯, 누군가에게 손을 내미는 마음 역시 이어질 수 있음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는 '음악극'이라는 형식도 빼놓을 수 없다. 상대적으로 낯설게 다가올 수 있는 장르임에도, '섬: 1933~2019'에서 음악은 이야기와 인물의 내면을 전달하는 핵심적인 언어로 작동한다.

이번 시즌에도 '마리안느&고지선' 역의 백은혜, 정연과 '마가렛&백수선' 역의 정운선, 이지숙을 필두로, 시공간을 넘나들며 극의 흐름을 이끄는 20명의 ‘목소리들’이 촘촘한 앙상블을 완성한다.

특히 여러 배우의 목소리가 겹쳐지는 순간, 음악은 강한 울림을 만들어 낸다. 가사보다 소리의 울림이 먼저 마음에 닿는 순간은 인물들이 견뎌온 고통과 억울함, 오랫동안 억눌려온 한을 전달한다.

또한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겹쳐지는 순간 개인의 감정은 여러 사람의 기억으로 확장된다. 한 사람의 목소리가 홀로 걸어온 길을 전한다면, 여러 목소리가 함께 울릴 때는 그 너머에 존재하는 수많은 삶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또한 각기 다른 시대를 살아온 인물들의 목소리가 하나의 공간에서 울려 퍼질 때, 작품이 말하는 연대의 의미도 선명해진다.



“내 진짜 잘 하고 있나?”
“잘 하고 있다. 묻지 말고 계속해라.”
“계속하면 되나?”
“그럼, 계속하면 된다.”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마지막에 현재의 고지선과 과거의 백수선이 대사를 주고받는 장면이다. 이 대화에서 백수선은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저 계속하면 된다고, 안 되면 또 하면 된다고, 될 때까지 하면 된다고 말할 뿐이다.

용기를 주는 힘은 바로 그 단순함에 있다. 확신이 없더라도, 지금 내가 잘하고 있는지 알 수 없더라도,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해 볼 수 있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명쾌한 정답이 아니라, 정답을 알 수 없는 순간에도 한 걸음을 내디딜 수 있게 하는 다정한 허락이다.

이 대사가 과거의 백수선과 현재의 고지선 사이에서 오간다는 점은 더욱 깊은 여운을 남긴다.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두 사람은 각자의 현실 속에서 저마다의 불확실함을 마주하고, 스스로를 의심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 순간 과거와 현재는 교차하는 시간을 넘어 하나의 대화로 만난다. 더불어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다른 사람이 살아갈 힘이 되는 것, 이 또한 '섬: 1933~2019'이 전하는 사랑과 연대의 모습이다.

결국 "될 때까지"라는 대사는 수선과 지선을 넘어 객석의 관객에게 도착한다. 한 번에 해내지 못하더라도 다시 해보면 된다고 말하는 이 위로는 극장 문을 나선 뒤에도 계속해서 질문을 던진다. 누군가를 배제하는 시선이 반복될 수 있다면, 손을 내미는 마음 역시 계속될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없는 삶 속에서도 우리는 서로의 목소리에 기대어 또다시 나아갈 수 있다고 말이다.

[셀럽미디어 정원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국립정동극장, 라이브러리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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