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봉, “신비주의는 그만, 대중적 인기 즐거워” [인터뷰]
- 입력 2013. 01.08. 14:38:51
- [매경닷컴 MK패션 김희선 기자] ‘한국’과 ‘패션’이라는 무대가 좁다. 적어도 디자이너 이상봉에게는 그러하다. 지난 해 페루의 자연과 인물을 주제로 사진전을 개최하고 실험적인 디지털 퍼포먼스를 선보이는가 하면 재능 나눔, 지구온난화를 위한 패션쇼 등 사회적 의미를 담은 작업으로도 활동범위를 넓히고 있는 이상봉. 2012년 출범한 한국패션디자이너연합회(CFDK)의 초대회장으로 한국 패션의 위상을 높이는 데에도 앞장서고 있는 그를 역삼동 쇼룸에서 만났다.▶뉴욕으로 파리로, 계속되는 컬렉션
“컬렉션 준비로 정신없어요. 뉴욕에서 컨셉코리아 발표가 끝나면 바로 귀국해서 일주일정도 작업을 마무리하고 곧 파리로 건너가죠.”
작년 여름 파리에서 ‘이상봉(LIE SANG BONG)’의 세컨 브랜드 ‘라이(Lie)'를 선보인 이후 런던과 제주도, 뉴욕, 태국 초청쇼 등 굵직굵직한 컬렉션이 계속이다. 그 중 컨셉코리아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중심이 되어 한국의 패션 문화를 세계에 알리기 위한 프로젝트로 다섯 번째 참여하고 있고, 매 시즌 참가해 온 파리 컬렉션도 어느덧 12년째다.
새해 첫 주말에 찾아간 그의 사무실은 이어지는 컬렉션 회의와 인터뷰로 평일처럼 분주하다. 한글과 소나무, 전통자수 등 한국적인 모티프를 현대적 감성으로 펼쳐 온 디자이너 이상봉. 가을겨울 컬렉션 컨셉인 돌담길 문양이 매장 내 의상 곳곳에서 드러난다.
“다가오는 봄여름 시즌은 버터플라이와 하운드투스로 풀었어요. 자유롭고 화려한 나비를 하운드투스 무늬의 규격적인 느낌과 결합시켰죠. 여기에 동과 서의 만남도 함께 넣고자 했구요.”
컬렉션마다 새로운 테마를 의상으로 담아내야만 하는 고된 작업 속에서 이상봉은 특별히 영감을 받는 아이콘이나 뮤즈를 정해 두지 않는 편이다. 항상 새로운 테마를 찾아 고민할 뿐 한두 개의 아이콘 속에 메이는 것 자체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패션을 넘어 제품까지
대중에게 많이 알려진 한글의상뿐만 아니라 이상봉을 특징짓는 또 하나의 키워드는 바로 다른 분야 브랜드와의 공동작업. 휴대폰을 시작으로 그릇, 다이어리, 홈 데코와 인테리어, 담배, 양주, 컴퓨터에 이르기까지. 패션이라는 영역에 갇혀있지 않고 끊임없이 작업 반경을 넓힌 결과 이상봉을 사랑하는 이들은 그의 숨결이 깃든 제품을 폭넓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도 제의가 많이 들어오죠. 그 중 작업을 선정할 때는 해보고 싶은 것이 우선이예요. 저에게 의미 있는 작업인지 그리고 제 작품이 기업의 이미지와 어떻게 결합될 수 있을지도 함께 고려합니다.”
물론 모든 프로젝트가 다 소중하지만 첫 공동작업인 ‘LG샤인폰 이상봉 에디션’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제품을 출시하면서 선보인 삼청각 패션쇼에서 국악과의 접목도 시도한 점도 뜻 깊었던 부분. 모스크바에서의 런칭쇼로 이어진 담배 ‘에쎄’의 케이스디자인과 그 자신의 스토리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프랭클린 플래너’ 디자인도 인상적인 작업이었다. 더불어 향수와 가구도 도전해보고 싶은 분야라며 개인적인 바람을 내비친다.
▶무한도전 아저씨? 한글 디자이너?
1983년 중앙디자인컨테스트 입상 후 중앙디자인 정기 컬렉션에 참가하면서 디자이너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으니 패션계에서야 벌써 30년이 넘은 중견이지만 이상봉에게 ‘국민 디자이너’급 대중성을 안겨준 건 인기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이 아닐까.
“그러게요, 제가 출연한 거의 유일한 연예프로가 무한도전인데 워낙 재방송을 많이 해서 한때는 만나는 사람마다 그 얘기뿐이었어요. 게다가 제 의상이 교과서에 실리면서 청소년들은 제가 한글 디자이너인 줄 안다니까요. 하하”
물론 대중적 인기만큼 반가운 건 없겠지만 한편으로 디자이너로서 가벼워진 캐릭터가 걱정스러울 법도 한데 정작 본인은 여유롭다. 카리스마를 강조하느라 사진찍을 때 웃지도 않던 그가 디자이너에게 신비주의는 필요한 덕목이 아니라 생각할 정도로 유연해졌다. 오히려 대중을 위해 디자이너로서 뭘 할 수 있을지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되었다고.
이상봉의 이름이 대중의 입에 오르내리게 된 사건은 이미 오래 전에 있었다. 1999년 그의 디자인을 응용해 엄정화가 쓰고 나온 물장식 헤드폰이 온 국민을 ‘몰라’ 열풍에 빠뜨린 것. 당시 이런 반응을 전혀 예상치 못했던 그는 디자인이 엔터테인먼트산업과 만나 갖게 된 엄청난 파괴력을 실감했다. 몇 해 전 그의 옷을 입은 레이디가가의 사진이 공개되면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는데, 유명인이 선택한 스타일 하나가 대중에게는 즐거움이 되고 꿈을 심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디자이너로서 큰 행복을 느낀다.
▶소통 그리고 인연
교류와 소통은 이상봉이 이야기를 풀어가는 데 더없이 소중한 원동력이기에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적극적으로 즐기는 모습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의 사이버 공간은 스크롤바를 내리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김문수 경기도지사, 성악가 조수미를 비롯해 눈에 익은 이름들이 자주 등장하고 2AM의 진운, 울랄라세션 등 젊은 연예인들과의 스스럼없는 관계도 엿볼 수 있다. 주로 컬렉션 무대에 올랐거나 소개를 통해 맺은 인연들로, 지난 크리스마스엔 울랄라세션의 공연을 김주혁-김규리 커플과 함께 관람했고 가수 출신 연기자 심은진, 가수 박선주와도 오랜 친분을 유지중이다.
그에게 인연이란 자연스러움이 밑받침되어야 한다. 만나게 될 인연은 어떻게든 이어지며 억지로 만들어가는 관계는 힘들기 마련이라는 생각이다.
“물론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좀 닫아놓고 싶을 때도 있긴 해요. 내 시간을 너무 빼앗길 때도 그렇고. 누구나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옮길 수 있지만 그게 오픈되면서 다른 누군가에게는 짐이 될 수도 있거든요. 그냥 폭넓게 공유할 만한 내용을 올리고, 힘들 땐 서로 응원해주는 공간이길 바라죠.”
▶“디자이너와 대중이 호흡하는 교류의 장이 되길”
새해가 열린 지 며칠 되지 않았지만 벌써 그의 2013년 일정표는 빼곡하다. 당장 뉴욕과 파리에 이어 해외컬렉션이 몇 개 준비되어 있다.
“작년에 태국에서 쇼를 할 때 느낀 점이 있어요. 일반 대중을 위한 쇼도 물론 중요하지만 이제는 정말 저만을 사랑하는 사람들만을 위한 특별한 쇼를 하고 싶네요.” 계속해서 활동범위를 넓혀 온 그이지만 이상봉의 의상 자체를 사랑해 온 오랜 팬들을 더 만나고 싶다는 새해 소망을 전한다.
캣워크와 잡지 속에 등장하는 눈부신 작품들도 물론 의미 있다. 하지만 실생활에서 쉽게 접하고 즐길 수 있는 것이 진정한 패션의 가치라 믿는 디자이너 이상봉. 최근 어려워진 한국 패션의 앞날을 모색하고자 조직된 한국패션디자이너연합회의 회장으로서 보다 적극적인 행보를 다짐하면서 미디어의 조력도 함께 당부한다.
“MK패션이 인터넷 기반 매체인 만큼 우선 신속한 정보전달을 기대합니다. 블로그, SNS 등 많은 창구들이 넘쳐나지만 우리 디자이너들의 생각을 전할 수 있는 길이 그리 많지 않아요. 부디 우리나라 패션에 자부심을 갖고 한국 패션을 보급하는 데 MK패션이 앞장서 주세요.”
[매경닷컴 MK패션 김희선 기자 fnews@mkinternet.com/사진=송선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