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선옥 ‘파츠파츠’, 부분이 모여 예술로 완성되다 [인터뷰]
- 입력 2013. 01.24. 08:28:28
- [매경닷컴 MK패션 김희선 기자] 1998년 데뷔 이후 줄곧 실험적이고 진보적인 작품세계로 주목받아온 디자이너 임선옥.
그를 만나기 위해 향한 곳은 바로 핫 플레이스 부암동이다.
“부암동에 온 지 5년째네요. 가로수길과 압구정을 거치며 컬러를 즐기고 플레이하듯 재미있게 작업했지만 정체성에 혼란도 겪었어요. 쉬는 동안 가장 자신 있는 작업이 뭘까 뒤돌아보면서 이쪽으로 옮겨 왔고, 번잡함을 떠나 작업에 몰두하다보니 제 스타일도 다듬어져 지금에 이르렀네요.”지금의 인기디자이너 요니P처럼 한때 노랑머리로 발랄함을 뽐내던 그가 커다란 썬글래스와 사과머리의 탄생배경을 설명한다.
당시 가로수길은 트렌드의 중심이 아니었지만 신진디자이너들의 매장이 하나둘 생겨나며 패션피플이 몰려들었고, 지역의 트렌드와 매출에 작품이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비교적 독창적인 라인을 추구하던 그였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딜레마에 빠졌다.
“혼란스러웠어요. ‘패스트패션’ 열풍 속에 많은 옷들이 쉽게 만들어지고 구매되고 버려지는 풍조는 디자인을 왜 해야 하는지조차 알 수 없게 만들었죠. 잘 만든 의자나 식기만 봐도 한 번 사면 굉장히 오래 쓰는데, 옷은 왜 그렇지 못한지. 경쟁력 없이 소모적인 작업을 반복하는 메커니즘에 의문을 갖게 되었고, 작업의 중심이던 ‘아트’를 기반으로 새롭게 풀어가기 시작한 것이 바로 ‘파츠파츠(PartspARTs)’예요.”
임선옥은 시즌마다 모든 의상의 패브릭을 하나로 정해 전체 컬렉션을 풀어낸다. ‘외투는 울, 이너는 실크’와 같은 관행을 깨고 소재를 통일함으로써 로스를 최소화한 동시에 디자인 아이덴티티도 보다 확실해진 것. 그리고 옷이 되기 전 하나의 '부분(parts)'이던 상태에서 출발, 가변적인 디자인 툴을 만들어나갔다. 특히 각 부분을 연결하는 접착방식은 특허까지 출원하면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고, 그 역시도 끊임없이 재미를 느끼고 있다고.
직접 만져본 의상은 독특하단 말로는 부족하다. 하나의 아이템 속에 두세 가지 소재가 봉제와 접착으로 자유롭게 혼합된다. 특히 아우터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얇은데, 특별히 주문한 3, 5밀리미터 스폰지에 프레싱기법으로 양면접착했다는 설명이 이어진다. 패션을 공부하는 젊은이들이 직접 와서 만져보면 좋을 듯하다. 그리고 자연스레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와 질 샌더가 떠오른다. 창의적인 주름작업과 최고급 소재개발로 경쟁력을 갖게 된 그들. 임선옥 역시 꼭 해야만 했던 작업이라며 소재개발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한다.
‘패스트패션’에 대항하며 떠오르는 가치인 ‘슬로우패션’과 ‘그린패션’ 그리고 ‘지속가능성’. 이와 관련한 캠페인과 화보 제안이 몰려들지만 일회성으로 끝날 것 같아 그보다는 ‘파츠파츠’의 철학으로 계속해서 밀고 나갈 예정이다.
“재미있게도 핀란드 대학원생들이 논문을 쓰다가 여기까지 찾아와요. '에코'를 주제로 찾다가 오게 된 건데 정말 반가우면서도 사명감을 느끼게 되죠.”
언제나 일상 속에서 영감을 찾는 그는 건축과 미술, 자동차 등 패션 이외의 분야에서 트렌드의 감을 유지한다. 특히 공간 디자인을 다루는 네덜란드 잡지 ‘프레임’에 담긴 선과 각, 면을 보며 디자인을 떠올린다고.
영화 ‘성냥팔이소녀의 재림’의 의상으로 2003년 대종상도 수상했고, 뮤지컬 ‘대장금’과 ‘자유부인’의 무대의상도 맡았지만 현재는 ‘파츠파츠’ 디자인 작업에 푹 빠져있다.
“진정한 ‘마스터피스’를 만들어내기 위해선 디자이너만큼이나 각 분야의 창의적인 대가들이 주목받아야 된다고 생각해요. 소재, 단추, 스티치 등 각 분야의 스페셜리스트들이요. 그래야 콜라보레이션 작업도 더 수월해질 것 같구요.”
그동안 공간디자인, 테이블웨어, 무용, 록밴드 등 장르를 넘나드는 콜라보레이션을 계속 해 온 그는 오는 4월 10명의 아티스트들과 문화역서울284에서 전시를 열 예정이다. 밀라노에 오픈한 쇼룸의 반응이 좋아 수출을 시작했고, 신세계 'S파트너’로도 선정되어 2월 강남점을 시작으로 팝업스토어와 본 매장을 연이어 오픈한다고.
또한 3월 말에 참가하는 서울컬렉션의 콘셉트는 ‘골든 에이지’. 시즌과 연령을 넘나드는 새로운 스타일링 조합 방식을 선보일 예정이다.
“왜 한국에는 명품이 안 나오느냐고 모두들 얘기하지만 명품이 나올 만큼 열정을 쏟아 붓고 브랜드를 가꾸었는지 묻고 싶어요. 적어도 한 세대 이상의 희생이 있어야 가능한 것 같아요. 지금 작업을 계속 몰두해서 독창적인 노하우가 발전되면 좋은 브랜드로 완성되지 않을까요.”
15년째 디자인을 계속해 오면서 지금처럼 신명나게 일한 적이 없었다는 디자이너 임선옥.
현재 그는 부암동에 '파츠파츠' 매장과 ‘이고디자인스튜디오’를 두고 패션과 아트, 라이프스타일을 아우르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무한한 작업 반경을 가진 그에게는 어쩌면 ‘아티스트’란 호칭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매경닷컴 MK패션 김희선 기자 fnews@mkinternet.com/사진=송선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