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호 발사 성공과 이동욱의 ‘결정적 순간’ [헬레나의 그림이야기 ②]
입력 2013. 01.31. 09:16:43
2013년 1월 30일, 전남 나로우주센터에서 한국의 첫 우주발사체 나로호가 3차로 발사에 성공하였다. 30일 오후 4시경 우주로 힘차게 날아 오른 나로호는, 대다수의 언론 매체에 따르면 발사 9분 뒤 과학위성이 발사체에서 분리돼 목표궤도에 진입했으며 발사과정 자체는 성공적으로 평가되었다고 한다. 이를 보고 감격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으로 생각되는 가운데, 한국인 최초 오페라 갤러리 전속 작가로 급부상하고 있는 이동욱의 작품 ‘결정적 순간’이 떠올랐다.
‘결정적 순간 시리즈’의 마지막 장면인 이 그림은 우주선인 ‘콜럼버스호’를 발사하는 장면인데, 우주선 끝 부분의 꼬리가 부러져 있는 것은 사고의 순간을 보여준다. 콜럼버스호가 이륙하는 장면은 초고속 카메라로도 촬영되어 마치 새가 날갯짓을 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는데, 이를 두고 많은 사람들은 재빨리 뛰어가며 헐떡거리는 듯한 모습이 인간 삶과도 닮은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하였다.
또한 콜럼버스호는 공중에서 폭발하였고 이로 인해 우주 왕복 프로그램이 중단되었는데, 나사(NASA)의 최첨단 기술의 집결체였던 콜럼버스호가 폭발한 것은 인간이 우주를 정복하고자 했던 스스로의 과욕에 의해 결국은 파멸한 것을 보여준다. 나로호 발사 성공 역시, 여태껏 거듭된 실패 속에서 인간의 교만과 과욕을 없애고 겸손한 자세로 임할 때 주어진 신의 선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풍선 그리는 작가 이동욱]
이동욱은 ‘풍선 그리는 작가’로 유명한, 1981년생으로 올해 서른셋의 청년 작가이다. 그는 고등학교 3학년이라는 남들보다 다소 늦은 나이에 미대 진학이라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고, 대학에서 진학해서는 학교에서 경비로 야간에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벌며 작업을 해야 했다. 대학원에 진학에서는 교과 과정을 제대로 마치지 못하기도 했던 그는, 집중을 하지 못해 멍하니 있다 잠이 들고, 심리적인 불안감이 일종의 강박증으로까지 이어지는 상황이 계속되던 2007년, 그는 재개발 지역의 가건물에 자리 잡았던 본인의 작업실에서 갑자기 주변이 어두워지고 공간 안에서의 어떠한 이미지가 느껴지는 환상을 보게 되었다. 그 환상 속에 등장한 것이 바로 ‘빨간 풍선’이었고, 그 때부터 그는 풍선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또한 빨간 풍선은 그의 작품에서 하나의 시그니처(signature)로 들어가기도 한다.
풍선이라는 것은 ‘양립할 수 없는 것의 공존’을 무엇보다 잘 상징한다. 풍선을 아름다운 형태로 만들기 위해 인간은 그 안에 기체를 집어넣고 계속해서 팽창하게끔 만든다. 팽창하는 동안 풍선은 계속해서 긴장하게 되고, 그러한 긴장은 인간의 ‘불안’을 연상시키며 풍선이라는 존재 자체를 불안하게 만든다. 역설적이게도 풍선은 계속되는 긴장과 불안을 통해 팽창하며 아름다운 형태를 만들어 간다. 그리고 그러한 긴장과 불안이 계속되면 결국은 갈기갈기 찢어져 팽창하기 전의 상태로 돌아간다.
또한 풍선이라는 것은 축제 혹은 파티와 어우러져 밝고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그러한 밝은 외양 속에서 팽창의 최대치에 도달하게 되면 그 존재는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풍선의 본질은 ‘존재하기 때문에 불안한’ 인간 본연의 모습과도 유사하다. 존재할 당시에는 늘 불안감을 가지고 있고, 그 존재가 사라져버리면 불안함 역시 사라져 버린다. 이는 인간의 의식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의식이 없는 존재는 그 자체로서 불안함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식이 있는 존재는 스스로의 소멸을 두려워하고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이는 인간이 살아있는 동안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이동욱은 이러한 ‘존재의 불안’과 ‘모순되는 것들의 공존’을 풍선을 소재로 하여 그림으로 나타낸다. 그는 현실 자체가 그러한 모순의 반영이라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축제 분위기의 풍선들과 함께 기아, 전쟁, 도시의 파괴, 사라져가는 자연 환경 등을 나타낸다. 이와 더불어 작가 스스로 생각하는 세계관 또한 풍선과 다른 이미지들의 조합을 통해 표현한다.
이동욱의 최근 작품인 ‘안식의 풍선2’는, 삶과 죽음의 연관성을 하트 형태로 이어져 있는 풍선들의 집합체로 나타낸다. 삶이라는 것은 영원한 시간인 죽음 속에서 찰나처럼 피어나는 꽃임을, 그는 풍선의 짧은 생명력과 함께 그림 속에서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작가의 메시지와 더불어 그가 나타내고자 하는 ‘풍선’이라는 존재가 가지고 있는 특성과 그림을 같이 파악해 보자면, 죽음이라는 것은 삶의 순간이 모두 소멸되면 찾게 되는 인간의 안식이자 생의 최종 목적지라고 할 수 있다. 어찌 보면 죽음은 삶의 완성인 동시에 소멸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으로, 그것 자체도 풍선이 가지고 ‘아름다움과 불안’의 모순된 속성을 나타내고 있기도 하다.
[존재의 모순이 가져다주는 불안, 그리고 소멸이라는 결말]
이동욱이 풍선을 통해 표현하고자 한 것을 집약하자면, 모순과 역설 속에 존재하는 인간과 우주는 끊임없는 불안요소를 가지고 있고, 종국에는 없어진다는 것이다. 또한 인간의 탐욕에 의해 만들어낸 존재들에 의해 인간이 지배당하는 자승자박(自繩自縛)의 상황을 보여줌으로써 비극적인 현실을 계속해서 가공해 내는 모든 인간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도 들어 있다. 풍선이 그림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비어있는 것들로 가득 차 있는 현 세계를 상징하기도 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결국 없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이 모든 것에는 풍선을 그리며 ‘존재하기 때문에 불안한’ 스스로의 마음을 달래고자 하는 작가 본인의 치유가 근간을 이루고 있다.
생명력이 있는 존재든 그렇지 않은 존재든, 온전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는 것들에는 모두 ‘불안’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어머니의 몸속에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세상 밖으로 나온 태아도, 자라면서 완전한 존재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불안감에 시달리고, 살아있는 인간은 누구나 죽음에 대한 불안감을 갖고 있다. 이는 비단 인간 뿐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존재들에게도 해당된다. 언제 어떠한 경위로 파괴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에도 그러한 불안 요소는 늘 존재한다.
생동감이 넘치는 축제 분위기의 대도시들에는 어디에나 굶주리는 사람들이 있고, 또한 어딘가 에서는 파괴가 자행된다. 이러한 것들이 모두 우리가 살고 있는 현세(現世)의 모순을 나타낸다. 하지만 모든 존재들에게 있어 그 어느 것도 피해갈 수 없는 것이 있다면, 바로 종국에는 공(空), 즉 무(無)의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어떠한 존재든 그 소멸에 이르러서야 모순이 없어지고, 따라서 불안이라는 것이 없어진다. 이동욱은 이렇듯 모든 존재가 가지고 있는 모순과 불안을 풍선으로 상징함으로써 스스로의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만들어왔다고 할 수 있다.
얼핏 보면 알록달록한 가지각색의 풍선들로 가득 채워진 이동욱의 풍선 그림은 동심의 세계를 표현한 것이나 실내 장식을 위한 소품 정도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 담겨 있는 작가 본인의 복합적인 생각을 이해하고 나면, 마냥 밝은 분위기를 느끼거나 단순하게 여길 수만은 없는 것이다. 이동욱 작품의 특성을 꼽자면 단순해 보이는 존재인 풍선으로 복합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역시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양립할 수 없는 것의 공존’과도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존재하기 때문에 불안한’ 풍선, 인간, 그리고 현 세계에 대한 작가의 고찰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고 느낄 수 있었으면 한다.
글: 헬레나 (문화예술 칼럼니스트) faithmyth@hanmail.net blog.daum.net/faithmy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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