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근대 미술의 거장 이인성, 그를 통해 고흐와 고갱을 보다 [헬레나의 그림이야기 ③]
- 입력 2013. 02.01. 08:48:10
- 지난해 5월, 덕수궁 미술관에서 ‘이인성 탄생 100주년 기념전’이 열렸다. ‘한국 근대 미술의 거장, 한국의 고갱, 요절한 천재 화가’ 등의 수식어가 붙는 이인성. 비슷한 연배의 이중섭과 박수근이 한국의 대표적인 화가로 부상한 반면, 그의 명성은 아쉽게도 아직까지 그에 미치지 못한다.대구의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나 독학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이인성은, 대구 화단의 선구자 서동진의 눈에 띄어 본격적으로 그림 공부를 하게 되었다. 워낙 뛰어난 재능에 노력이 더해져, 1929년 17세 때 ‘촌락의 풍경’으로 세계 아동 미술 전람회에서 특선을 차지한 그는, 20대 초반에 연속 4회의 특선을 차지하며 조선 화단에 그의 이름을 알리게 된다.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림을 포기하지 않았던 이인성은, 조선 미전을 통해 차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며 자신의 인생에 일종의 터닝 포인트를 만들어 줄 후원자를 만나게 된다. 지금으로 비추어 보면 작품 콜렉터라고 할 수 있는, 고미술 수집가 시라가 주키치가 1931년 ‘세모가경’으로 특선을 차지한 이인성을 동경의 한 미술용구 제조회사 사장에게 소개하여 본격적으로 미술 수업을 받게끔 해 준 것이다.
이로 인해 그는 일본에서도 일본 제국 미술 전람회 입상, 일본 수채화 회전 최고상 등을 기록하며 일본 현지에서도 조선 화단의 귀재라는 찬사와 열광을 받게 되고, 이로 인해 그는 일제 강점기 시절 최고의 서양화가로 활동하게 된다.
[인상주의에 한국적 토속성을 덧입혀 새롭게 정착시키다]
수채와 유채를 넘나들며 고갱, 고흐의 인상주의에 영향을 받아 작업한 이인성은 수채화이지만 유화인 듯 보이는 작품을 만들거나, 유화이지만 수채화인 듯 보이는 자기만의 작품 세계를 정립하며 한국 화단에 서구의 인상주의를 도입했다. 1934년 작인 ‘어느 가을날’을 보면 고갱의 화풍을 닮은 듯한 모습이 보인다.
또한 1944년 작인 ‘해당화’는 5월에서 8월 경 피는 꽃인 해당화와 함께 있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이 겨울의 그것을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고, 보는 이에 따라서는 현실적이지 않은 구성에서 식민 통치하 해방의 염원을 그림에 담아냈다는 해석을 하기도 한다.
또한 ‘해당화’는 유화이면서도 수채화 같다는 느낌을 주기도 하는데, 이렇듯 형식과 표현의 소재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만의 독특한 화풍을 정립했다는 점에서 그는 한국을 대표할 만한 화가라는 평을 받기에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이인성을 ‘한국의 고갱’이라고 평하는 의견이 많은 가운데, 그의 작품들 중에서 고흐의 화풍을 닮은 것들을 찾아보는 것도 색다른 감상의 즐거움을 안겨 준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1930년대 중반의 ‘계산동 성당’인데, 유화인 이 작품은 고갱의 작품들과 같은 느낌을 준다기 보다는 고흐의 후기 작품인 ‘노란 집’과 같은 인상주의를 연상시킨다.
일제 식민 통치 하에서 한국과 일본을 넘나들며 뛰어난 재주와 기량을 발휘했던 이인성. 그는 안타깝게도 1950년 경찰과의 실랑이 중에 세상을 떠나고 만다. 다음은 그의 죽음을 다룬 최인호의 글, ‘누가 천재를 쏘았는가’ (한국일보 1974. 6. 5.)의 일부이다.
『누구냐.』
『지나가던 취객이요.
『뭐라구. 지금이 무슨 시간인데 장난하려 들어. 누구야.』
『취객이요. 술취한 취객이요.』
사내는 껄껄 웃어제낀다.
『웃지마라. 누구야.』
『나말이요.』
손전지 불 밑에 드러난 사내의 얼굴은 생각 보다는
곱게 생겼다.
악의없는 참하게 생긴 얼굴이라는 것이 한눈에 드러난다.
치안대원은 울컥 화가 치밀어 오른다.
『뭐라 따지지 말라.』
『정지. 정지. 누구야.』
『나말요. 나. 천하의 나를 모르오.』
『이 대한민국에서 제일 가는 나를 모르오.
난 이인성(李仁星)이요. 천하의 천재 이인성이요.』
『뭐라구.』
치안대원은 어이가 없었지만 사내의 기세가 너무나
등등하여 혹시 고위층의 인물인가 행여 겁도 나서
일단은 치밀던 화를 자제하고 집으로 보내 준다.
그러나 그 치안대원은 좀체로 치밀던 화가 풀리지 아니한다. 그래서 경비소로 돌아온다.
『누구 저기 위에 사는 이인성이라는 사람알어.』
『알지.』
앉아서 사무근무를 하던 사내가 시큰둥하게 대답한다.
『그 사람 뭐하는 사람이야.』
『뭐하긴 뭐해. 환쟁이지.』
『환쟁이. 아니 그 자식이 환쟁이야.』
사내는 뛰쳐 나간다.
그리하여 씩씩거리며 좀전의 사내가 들어간 집 대문을 발길로 걷어찬다.
『누, 누구요.』
술취해 자리에 누워있던 이인성은 옷도 채
입기전에 문을 열고 나서려는 순간 사내의 입에서는
한마디의 욕설이 튀어나온다.
『더러운 쌕끼.』
가슴에 품었던 치안대원의 총이 잠결에 튀쳐나온 이인성의 이마를 향한다. 방아쇠를 잡아당긴다.
『타앙.』
한발의 총성이 정막을 찢는다. 이인성은 쓰러진다.
이상은 우리나라가 낳은 천재화가 이인성이 죽는 순간을
나 나름대로 소설체로 표현해 본 것이다
이인성은 그렇게 죽었다.
해방된 조국에서 기쁨에 술취해 돌아오던
이인성은 같은 동포의 총에 맞아 죽었다.
이인성은 그렇게 죽었다.
그렇게 죽었다.
그 손끝이, 그 손끝에서 나온 그림이
일본인의 눈을 놀라게 했던 이인성의 마술적 재능이
총한방에 죽고 말았다.
자신을 서슴지않고 천재라고 표현하던 이인성이
통행금지에 걸려 죽었다.
환쟁이 이인성은 그렇게 죽었다.
소설가 최인호가 본인의 글에서 언급했듯, 안타깝게도 이인성의 재능은 총알 한 방에 사라지고 말았지만,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도 그의 그림은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고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을 안겨 준다.
이인성이 살던 당대에 비해서 현재는 예술인들에 대한 대우가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예체능 계열 전공자들은 불확실한 미래를 두려워하며 자기 전공 분야를 살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의 많은 미대생들이 그러할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보다 많은 한국 화가들이 활발한 활동을 하려면 공모전, 갤러리 등이 더욱 활성화 되는 것도 필요하지만 한국 화가들의 작품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지속적으로 높아지는 것이 우선이라고 본다.
예술가는 신의 선택을 받은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일반인들이 표현하지 못하는 초월적인 아름다움의 세계를 보여주고 신이 내린 재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삶에서의 크나큰 고통을 직면하게 된다. 누군가는 끝없이 계속되는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그림을 그리고, 현실에서의 고통을 잊기 위해 음악을 만든다. 이러한 괴로움을 달래기 위해 그들이 선택한 것이 예술이라면, 그들의 작품을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져야만 그들도 자기 나름의 삶을 향유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무언가에 관심을 갖게끔 하는 것이 억지로 되는 것은 아니기에, 그들의 작품에 관심을 갖게끔 만들 만한 역할을 하는 이들도 필요하다. 필자는 그러한 한국 미술가들이 활발히 활동을 할 수 있는 초석이 되는 역할을 하고 싶다. 필자와 같은 사람들의 작은 노력이 일종의 나비 효과를 만들어, 보다 많은 이들이 한국 화가들과 그들의 작품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면 한다. 이인성과 같은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화가들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하지 않게끔 말이다.
글 : 헬레나 (문화예술 칼럼니스트), faithmyth@hanmail.net/ blog.daum.net/faithmyth
이인성 생애 관련 내용은 대구미술관 언론 보도자료 일부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