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가 정미정이 본, 표류하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대인의 자아 [헬레나의 그림이야기 ⑦]
- 입력 2013. 02.19. 10:35:21
- 삶은 그것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연극 무대이며, 그 연극의 연출자는 그 삶을 살아가는 개인이라는 이야기가 있죠.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 속에 공존하는 우리는, 때로는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무대와 각본 속에 살아가기도 하고, 때로는 우리가 각자 만든 무대 위에 오르기도 합니다.이렇듯 시간과 공간의 변화에 따라 물 흐르듯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 그 속에서 누군가에게 보이는 모습을 가리켜 ‘표류하는 연극적 자아(Drifting theatrical self)’라고 지칭할 수 있는데요. 우리는 각자의 삶 속에서 끊임없이 어딘가로 표류하는 가운데, 우리가 마주하는 무수한 존재들과 결합되고 또 변이됩니다. 이로 인해 ‘이종 교배’라는 것이 일어나지요.
때로는 고통스럽고, 때로는 유쾌하기도 할 그러한 ‘표류하는 연극적 자아와 이종 교배의 현실’을 그림으로 보여주는 화가가 있습니다. 바로 우리의 이러한 ‘변이’의 복잡한 과정을 식물의 색감을 토대로 나타낸 정미정(30) 작가인데요. 그녀가 표현하는 우리의 모습, 그림을 통해 같이 살펴볼까요?
[표류하는 연극적 자아, 그리고 이종 교배의 현실을 말하다]
우리는 늘 어딘가로 이동합니다. 집 안에만 있고 밖에 나가지 않더라도, 내부에서 동선을 형성하며 몸을 움직이죠. 누군가와 상호 작용이 일어날 때에는, 그 상대방에 맞는 모습의 가면을 쓰기도 해요. 그 가면은 본인의 본래 모습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죠? 한 개인이 가진 수많은 모습들 중 한 면을 꺼낸 것일 수도 있습니다. 굳이 최근 회자되고 있는 드라마 ‘야왕’의 남자 주인공처럼 가짜 결혼을 위해 가짜 연인 행세를 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렇듯 마주하는 대상과 상황에 따라 우리 스스로의 모습을 변화시킵니다.
정미정 작가는 이러한 우리의 ‘표류하는 연극적 자아’ 속에 ‘이종 교배’가 일어남을 보고, 우리가 삶 속에서 이동하는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그림에 자동차를 등장시켰다고 해요. 그리고 ‘식물’은 정미정 작가 작품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주 소재라고 할 수 있는데요, 변화하는 우리의 모습, 즉 인간의 모습을 식물에 비유해 나타내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의 존재이지만 늘 여러 가지 역할을 해야 하고, 각기 다른 상황 속에 수많은 자아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의 모습을 식물에 빗대어 그려낸 거죠.
이 작품에서는 배경에 사막이 등장하는데, 정미정 작가는 황량한 사막의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가로로 길게 작업을 하게 되었다고 해요. 사막은 현대인이 살아가는 메마른 현실을 비유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이 사막 속에 세워져 있는 다소 화려한 색상의 식물은, 실제 모습을 어느 정도는 무언가로 위장하고 있는 존재들을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사막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식물처럼, 우리는 삶 속에서 강인한 생명력을 가져야 하고, 끊임없이 달리고 무언가를 하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어요. 하지만 쳇바퀴가 돌듯 힘겹게 살아가는 현대인의 현실은, 이 작품의 색상처럼 밝고 화려하기 보다는 차갑고 메마른 것에 가깝습니다. 보이는 모습과 그렇지 않은 모습의 괴리를, 알록달록한 색채를 통해 나타내고 있는 것 같기도 하죠?
[변화가 주는 긍정과 부정의 영향, 그리고 그 결과를 표현하다]
마주하는 환경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우리의 모습이 어떠한 방향성을 갖느냐에 따라, 그 변화는 긍정적인 것일 수도 있고 부정적인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떠한 시기를 거침에 따라, 혹은 상황에 따른 욕망이 변화함에 따라 변화하게 되지요. 적절한 시기와 적절한 욕망이 만났을 때는 긍정적인 발전이 있겠지만, 그것이 과하거나 잘못된 곳에서 만났다면 변화라는 것이 파멸을 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는 그러한 모습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는데요. 그림 아래 있는 것은 하얀 가루인데, 정미정 작가에 따르면 이는 식물이 가루로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라고 합니다. 언뜻 보기엔 밝은 색상들로 조화된 듯 보이지만, 그 속에는 다른 함의를 가지고 있는 것이 정미정 작가 작품의 매력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그림 그리는 것은 결국 나를 찾아가는 작업]
정미정 작가에 따르면, 결국 작품에서 표현하고자하는 것을 찾아가는 것은 자아에 대한 탐구에서 시작하고 끝난다고 해요. 스스로에 대한 고민을 그림으로 풀어나가며 아이디어를 얻고, 또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더욱 구체화하기도 하지요. 글을 쓰는 많은 이들이 그렇듯, 그림 그리는 것 역시 본인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과 관찰에서 시작됩니다.
처음에는 인간의 모습을 브로컬리에 빗대어 표현했다고 하는 그녀는, 브로컬리 말고 다른 식물을 등장시켜 ‘연극적 자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요. 그녀의 연극적 자아 시리즈 중 하나인 이 작품은, 여러 가지 식물이 하나의 사람처럼 서 있는 모습을 표현한 것인데요. 서로 다른 식물들이 조합되어 하나의 작품을 탄생시키듯, 우리 삶 속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모습들이 결합되어 각자의 존재를 만들어가는 것을 보여줍니다.
어렸을 때부터 고모의 작업실에서 자연스럽게 그림을 접하게 되었고, 작업실을 놀이터처럼 드나들며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는 정미정 작가. 그녀 역시 성장하며 마주하는 환경 속에서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그 변화에 따른 결과를 자기 자신의 일부로 만든 사람인데요. 식물의 색감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유화를 그릴 때 보다 아크릴 작업을 할 때 본인이 원하는 색감을 보다 잘 나타낼 수 있기에 아크릴 작업을 주로 한다고 하는 그녀는, 우리의 모습이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에 가장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작가입니다.
여행을 다니며 낯선 곳에서 많은 영감을 얻는다고 하는 그녀가, 앞으로 어떠한 방식으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보여줄 지 많은 기대가 됩니다. 그녀의 그림 속에서 우리 속의 감춰진 또 다른 모습들을 발견하는 것. 그것 역시 우리가 일상 속에서 접할 수 있는 색다른 즐거움이 아닐까 싶습니다.
[헬레나의 그림이야기] 안녕하세요? 저는 본명은 유수연이라고 하고, 헬레나라는 필명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미디어에서 접하는 수많은 정보들 속에서, 아름다운 그림과 이야기를 찾고자 하는 분들을 위해 기고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특히 한국 화가들이 본인들의 작품을 통해 대중과 원활한 소통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헬레나의 그림이야기’를 연재하게 되었어요. 어느 대학을 나왔고, 어느 공모전에서 입상을 하였는지 등의 대외적인 이력보다는, 마음의 눈으로 보고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을 보다 많은 분들에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작품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고 싶은 분들께서는 연락 주세요. 제 그림이야기는 늘 열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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