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시록적인 기록 여정, 박진영의 사진전 ‘방랑기’
입력 2013. 03.03. 13:44:13

[매경닷컴 MK패션 차평철 기자] 진위 논란 이후 방치된 이승복 동상, 또 불안하게 부유하는 새터민 청소년들, 그리고 불발탄들이 꽂힌 매향리의 미사일폭격 현장 등. 부산에 위치한 고은사진미술관에서는 3월 2일부터 5월 9일까지 지난 20여 년 간 박진영의 주요 작업을 포괄하는 중간회고전 ‘방랑기’가 열린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고향인 부산에서부터 지난 세월 그가 사진가로서 한국, 일본, 베트남 등 여러 곳의 여정을 돌아본다는 의미일지 모른다. 하지만 “설명할 수 없거나 관여할 수 없는 일에 대해 할 수 있는 일은 기록뿐이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그의 작업은 균형 잡기라는 꾸준한 작가적 노력으로 볼 수 있다.
작업 초기 그는 군부정권의 몰락 이후 변모하는 한국 사회의 모습을 담아냈다. ‘386세대’는 시민사회의 투쟁 속 진통의 순간을 잡아냈으며, ‘서울에서 버티기’는 노동계층의 고단한 일상과 서민들의 현실을 포착했다.
또 컬러사진을 이용한 ‘아르바이트’에서는 그들의 이름과 하루 임금 등을 제목에 밝혔다. 사회문제를 심층적으로 다루는 이 연작에서 그는 처음으로 파노라마 형식을 도입했다.
역시 파노라마 형식을 취하는 ‘도시소년’ 연작에서 그는 상이한 이미지를 나란히 놓음으로써 사회적 다큐멘터리로의 확장을 시도했다. 이 작업들은 꿈꾸는 청소년과 그들이 처한 열악한 현실, 그리고 그들에게는 버거운 사회 구조에 둘러싸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후 일본으로 옮겨간 그는 사진 본연의 요소와 기본조건에 천착했다. ‘히다마리’ 연작에서는 현재 난무하는 디지털 조작 없이 빛과 공간과 시간을 이용, 고전적인 방법으로 최대한 아름다운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2011년 3월 동부 일본의 대지진을 맞아 그는 경쟁적인 사진가 무리에 합류하지 않고, 쓰나미가 지난 이후의 흔적들을 엄정히 잡아냈다. ‘사진의 길’은 이런 기록과 더불어 작가 개인적인 개입이 시도된 작업이다. 예를 들면 나무에 걸어놓은 마이클 잭슨의 이미지, 나 폐허에서 나뒹구는 유품들을 배열한 사진 등이다.
또 최근 ‘방랑기’ 연작에서는 동일본 대지진 이후 후쿠시마와 미야기현에서 습득한 사물들과 도쿄의 벼룩시장과 고물상 등에서 구한 것들을 포함했다. 그가 선택한 사물들의 공통점은 쓰나미라는 혹독한 시련을 견디어 낸 것, 버려졌음에도 선택받은 것들에 대한 존재론적 성찰로 볼 수 있다.
이처럼 다큐멘터리 사진의 한계와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그가 천착해온 실험은 한편으론 사진의 근원적 문제로 다가가는 여정이었다. 또 사건의 현장에서 결정적 순간을 취하는 뜨거운 다큐멘터리 사진으로부터, 사건 이후 시간과 거리를 두고 엄정히 관조하는 방식을 취해온 작가의 발자취를 관람객 역시 즐겁게 좇아보길 바란다.
[매경닷컴 MK패션 차평철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 네오룩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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