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산, 입체로 만난 근대의 보물
- 입력 2013. 03.03. 18: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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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닷컴 MK패션 차평철 기자] 코미디언 박명수와 배우 송새벽. 그리고 해태 타이거즈 출범의 주축을 이룬 역전의 명수 군산상고까지. 군산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가까운 기억들이다. 그리고 혹시 맛집을 좋아하는 이들은, 간장게장과 우리나라 최초의 빵집으로 알려진 이성당으로 군침을 흘릴지 모르겠다.하지만 경술국치 이후 군산은 조선 최대의 곡창지대로 일컬어진 김제평야와 인근의 쌀을 수탈하던 일제 침약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었다. 1910년 통계에 의하면 조선에 일본인이 차지한 토지가 86,951정보였는데 그 중 전라도는 절반을 이루는 42,000여 정보였다고 한다.
또 채만식이 있다. 그는 전라북도 임피군 군내면 동상리의 부농 가정에서 출생, 이후 기자로 근무하며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1934년 발표한 단편 ‘레디메이드 인생’은 지식인 실직자의 모습을 풍자적으로 그리고 있는 그의 대표작 중 하나다.
이처럼 여러 생각들을 떠올리며, 서울에서 약 2시간 반 가량 걸려 군산에 도착했다. 다른 지방 소도시와 마찬가지로 무척 허름한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군산 내항이 위치했고, 그 주변으로 옛 군산 풍경이 펼쳐졌다.
우선 장미동 지역은 이미 2012년 근대문화벨트화 지역으로 조성된 곳이다. 특히 그 곳에는 1908년 순종 2년인 대한제국 시기에 건립된 옛 군산세관이 있다. 벨기에에서 수입한 붉은 벽돌로 지어진 이 건물은 크지 않은 규모에도 불구하고, 강렬한 색과 우아한 외관을 뽐내며 오히려 거대한 느낌을 주었다.
한편 세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채만식의 탁류에 등장한 옛 조선은행 군산지점이 위치한다. 이곳은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된 곳으로 높고 웅장하게 뻗은 입구 장식이 인상적이었으나 수리 중이었다.
또 횡단보도를 건너 부드러운 모서리를 이루는 제3청사를 지나자, 건너편 중앙로에 건물이 나왔다. 작지만 개성 있는 외관을 보이는 이곳은, 현재에도 유리가게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특유의 생명력을 느낄 수 있었다.
빵을 사기 위해 길게 줄을 지은 이성당을 지나자 골목 구석구석 본격적인 옛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특히 낯선 지붕과 처마양식을 볼 때 일제시대 집으로 보이는 이름 없는 가옥들이 거리에 즐비했다. 또 굳이 그 시절 건물이 아니더라도 그 이후 지어진 오랜 건물들이 쇠락한 풍경 속에 여전히 모습을 간직하며, 소박한 개성을 보인다.
특히 인상 깊은 것은 북촌 원서동에 있는 박인환 작업실과 같은 일본식 2층 오까베 집이었다. 이누도 잇신의 영화 황색눈물에서 그 독특한 매력을 뽐낸 이 작은 가옥들은 현재에도 목조로 이루어진 덧창과 쇠로 된 독특한 난간장식으로 치장돼 있었다. 이처럼 어떤 골목에 접어들어도 시간을 거슬러간 옛 건물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경험은, 마치 입체로 된 역사책을 아무렇게나 펼친 것만 같았다.
얼마 후 영화 타짜에서 화투를 배우기 위해 고니(조승우)가 찾는 평경장(백윤식)의 집인 히로쓰 가옥에 이르렀다. 이곳 신흥동은 일제시대 군산시내 유지들이 거주하던 부유층 지역으로 역시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된 곳이다. 미곡유통업을 하던 히로쓰 게쯔샤브로의 거대한 저택은 인공적인 일본식 정원과 2층으로 된 집으로 현재에도 그 원형이 잘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많은 관람객의 발걸음으로 쿵쿵 울리는 목조 바닥에 올라서니 보존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일본식 사찰인 동국사에 방문했다. 이곳역시 국가등록문화재로 1909년 내전이 개창하고, 1913년에는 대웅전이 창건된 곳이다. 문득 높고 경사가 급격한 대웅전 지붕을 보고 있으니 심우장에 은거했던 만해 한용운이 떠올랐다. 또 절 뒤편에는 대나무를 무성히 심어 조용히 운치를 더했다.
그때 종루 앞에 놓인 참회와 사죄의 글이 눈에 들어왔다. 1992년 11월 일본 조동종 종무총장인 쓴 글은, 일제의 지배 야욕에 영합해 인권을 침해하고 또 조선 불교를 훼손한 것에 대한 사죄문으로 2012년 9월 큰 비석에 새겨놓은 것이었다. 비록 종교적인 차원이지만 두 번 다시 잘못을 범하지 않겠다며 맹세를 밝히는 글을 보며, 조선에 이식된 근대와 짭조름한 바닷바람이 함께 풍겨오는 듯 했다.
1947년 해방후 채만식은 자전적 성격의 단편 ‘민족의 죄인’을 통해 작가중에 최초로 친일 행위를 고백했다. 하지만 한일관계는 여전히 국가적 차원의 반성도 용서도 없다. 특히 최근 흉흉해지는 양국 관계를 생각할 때. 그래서 군산은 어렴풋하게나마 근대를 체험할 수 있는 우리가, 미래와 조우할 수 있는 보물 같은 곳은 아닐까.
[매경닷컴 MK패션 차평철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 차평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