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지연의 그림을 통해 느끼는 반전의 미학 [헬레나의 그림이야기 ⑩]
입력 2013. 03.04. 08:55:19
동전의 양면 혹은 양날의 칼. 하나의 현상이라도 절대적으로 한 가지의 면만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말인데요. 평면을 통해 자신의 작품 세계를 보여주는 화가들 중에서도 하나의 작품이 마치 전혀 다른 두 점의 그림처럼 보이게 하는 작가가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반전의 미학’을 보여주는 한국의 신진 작가 문지연(34)입니다.
[이중적인 작업을 통해 파헤치는 현대인의 그리움과 동경]
최근 살아있는 나비를 전시에 이용해 동물 학대 논란을 빚었던 영국의 설치 미술가 데미안 허스트를 아시죠? 데미안 허스트가 졸업한 골드스미스 대학에서 순수 미술을 전공한 문지연 작가는, 97년도에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 결과보다 과정을 훨씬 중시하는 영국의 미술 교육을 접하고 처음에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해요.
영국에서는 타국에서 온 이방인으로 지내고 한국에서는 해외에서 공부하는 유학생으로 잠시 머무는 시간 동안, 본인 스스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모호한 상태임을 느꼈다고 하는데요. 영국 유학 시절 정체성(identity)에 관한 작업을 많이 하며, 현대인의 외로움에 대해 고찰해 보고 싶었다고 합니다.
고든 마타 클락 (Gordon Matta Clark)을 비롯한 현대 미술가들의 영향을 많이 받으며, 캔버스에 작업을 할 때도 안과 밖 모두를 표현의 수단으로 여기고 이중적인 작업을 많이 하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문지연 작가의 작품에서 보이는 이중성은, 조명을 통해 꾀하는 반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유학 시절 느꼈던 본인의 이중적인 정체성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요, 이러한 ‘반전의 미학’이 그녀의 작품을 더욱 돋보이게 합니다.

카이로스(Kairos)라는 작품을 보면, 왼쪽은 LED 조명을 끈 상태이고 오른쪽은 조명을 켜둔 상태임을 알 수 있는데요. LED 조명을 끈 상태에서는 전봇대만 보이고 조명을 켜둔 상태에서는 전봇대와 나무가 같이 보이는 모습을 통해 작품의 정체성이 확연히 달라집니다.
한 작품 안에 두 가지의 모습이 공존해 있죠? 이렇듯 문지연 작가는 하나의 그림 안에서 전혀 다른 두 개의 풍경을 보여줌으로써,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의 경계 위에 살고 있는 현대인의 그리움과 동경, 혹은 꿈을 담아내고자 했답니다.
그녀가 말하는 현대인의 그리움과 동경은 무엇일까요? 인간적인 접촉의 단절 속에 느끼는 외로움, 그것을 없애고자 하는 갈망이라고 할 수 있겠죠.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삭막한 도시 속에서, 현대인은 어찌 보면 현재 모두가 향유하고 있는 발전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전봇대와 나무가 등장한 이 그림의 제목 카이로스(Kairos)는, 그리스어로 시간을 나타내는 두 가지 단어 중 하나인데요. 그리스어로 시간은 크로노스(Chronos)와 카이로스(Kairos)로 구분되는데, 크로노스는 흘러가는 시간을 가리키고 카이로스는 구체적인 사건이 일어난 의미 있는 시간을 말한다고 합니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 순간들이 존재하고, 그 순간들 마다 모두 각기 다른 의미가 있죠? 특히 노을이 지는 시간을 그림으로 표현하기를 좋아한다는 문지연 작가는, 그 짧은 시간 속에 보이는 환영에 집중해 현실을 뛰어넘는 이상적인 모습을 표현해내고 싶었다고 해요.
[노을 지는 풍경, ‘개와 늑대의 시간’ 그 찰나를 통해 보는 이상과 소망]

2007년 MBC에서 방영된 드라마 ‘개와 늑대의 시간’을 기억하시나요? 해가 질 무렵 모든 사물의 윤곽이 흐려지고, 어떠한 동물의 실루엣을 봤을 때 그것이 자기가 기르던 개인지 자기를 해칠 늑대인지 구분할 수 없는 시간을 가리켜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하죠.
이러한 시간대를 많이 그리는 문지연 작가는, 노을 지는 풍경을 통해 표면적으로는 도시의 삭막함과 외로움을 보여주지만, 그 안에서도 사람들이 붙잡고 싶은 ‘환영’이나 ‘꿈’의 이미지를 나타내고자 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보면, 작품에 등장하는 풍경이 꼭 눈으로 보이는 것이라고만 볼 수 없고 의식과 무의식이 교차하는 시점의 심리적 풍경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이러한 심리적 풍경은 ‘빛’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보이기도 하고 감춰지기도 하는데, 문지연 작가는 물리적인 빛을 넘어선 ‘마음의 빛’을 비춤으로 인해 꿈꾸는 것 이상의 기적을 찾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고 합니다.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라는 말이 있죠? 그래서 많이들,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무언가를 판단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보이지 않아도 보이는 것이 있고, 보이는 것 같아도 또 그 속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드러나는 것과 드러나지 않는 것의 경계 속에서, 본인이 추구하는 이상적인 현실을 그리고자 하는 문지연 작가의 작품을 보면 우리가 잊고 살았던 ‘이상’ 혹은 ‘꿈’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는데요.
여러분이 잊고 있던 꿈은 무엇일까요? 각박하고 외로운 현실 속에서, 우리가 늘 갈망하거나 동경하고 있던, 하지만 잊고 지냈던 마음의 소망들을 돌이켜 보는 것. 다가오는 봄을 맞이하기 전, 보이지 않는 마음속의 그러한 생각들을 한 번쯤 끄집어 내어보기를 권합니다.
글: 헬레나 (문화예술 칼럼니스트) faithmyth@hanmail.net blog.daum.net/faithmy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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