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다노출 범칙금’, 그러한 통제를 표현하는 이국현의 그림이야기 [헬레나의 그림이야기 ⑫]
입력 2013. 03.12. 11:10:46
새 정부가 첫 국무회의에서 ‘과다 노출’을 한 경우 앞으로는 범칙금 5만원을 내야 한다는 경범죄 처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고 합니다. 이를 두고 ‘유신 시대의 부활’이라는 의견도 있고, 성 범죄를 줄이기 위한 정부의 강력한 대응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어떠한 생각이든 절대적으로 옳은 것이 없기에, 해당 법안 개정안을 두고 여러 사람들이 각자 의견을 개진하며 토론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안타까운 것은, ‘과다 노출’이라는 것도 그 규제의 대상이 남성보다는 여성이 대부분을 차지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사법 당국에서는 규제 대상이 여성보다는 남성이 될 것이고, 특히 이른바 ‘바바리맨’들을 타깃으로 했다고 설명하고는 있습니다.
여성은 많은 경우 성 상품화의 대상이 되고, 특히 방송에서는 여자 출연자들에게 노출을 유도함으로 인해 시청률을 높이거나, 방송 자체의 내용 보다는 ‘야하게 옷을 입어 성적 매력을 발산하는’ 여자 출연자들에게 시선을 집중시키는 경우가 많은 것이 안타까운데요. 그러한 부분에서 안타까움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여성의 육체적 매력을 의상을 통해 발산하는 것이 이제는 법으로 제지당해야 한다는 점이 다소 아이러니하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이렇듯 ‘억압받거나 통제 당하는 것, 혹은 차별받는 것’을 본인 작업의 공통된 주제로 설정하여 설득력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한국의 신진 작가가 있습니다. 2010년 월간 ‘아트 인 컬쳐’의 선정 작가로 두산 갤러리에서 데뷔전을 가진 이국현 작가(30)인데요. 이국현 작가는 척 클로스처럼 극사실주의를 지향하는 듯 보이면서도 달리나 마그리트로 대변되는 초현실주의적인 화풍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통제당하는 대상, 그것의 표현을 접함으로 얻는 심리적 긴장을 꾀하다]

이국현 작가의 연작 중 ‘패키지(package)’시리즈는 가면 혹은 선글라스를 쓴 여성들이 주로 등장하며, 무엇인가로 스스로를 가리고 있는 모습이 많이 보이는데요. 해당 연작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작품의 주인공인 듯 보이는 여성들이 아닌 그 주변의 것들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작품에 등장한 여자들이 쓰고 있는 가면이라든지, 입고 있는 의상, 번져 있는 화장 등을 말할 수 있는데요.
패키지 시리즈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결국 ‘자본화 된 성’이라고 합니다. ‘패키지’라는 말의 의미를 생각해 보면 ‘무엇인가로 포장된 상태’임을 알 수 있는데요. 재단된 것, 꾸며진 것, 재생산되어 유통되고 소비되는 것들이 모두 이에 해당 되죠. ‘성의 상품화’라는 말과도 묘하게 들어맞는 제목입니다.
가면을 통해 엿볼 수 있는 여자들의 얼굴은 무표정하여 따뜻한 감정을 느낄 수가 없는데요. 본인들에게 시선을 주는 사람들에게 다소 차갑게 대하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바로 성적으로 상품화 된 여성들이, 자신들을 보며 소비의 한 대상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시선처럼 느껴지기도 하죠? 이렇듯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여인들은 매력적인 모습을 하고 있기도 하지만, 동시에 차가운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국현 작가는 이처럼 본인이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의, 감춰진 시선 너머의 무엇과 마주하는 당혹감과, 그 속에서 느껴지는 심리적인 긴장감을 작품을 접하는 이들이 느끼게끔 하였는데요. 작품에 등장하는 의상도 메시지 전달력에 도움 되는 의상을 선택할 만큼, 어느 것 하나 본인이 나타내고자 하는 상징적인 오브제가 아닌 것이 없다고 해요.
[감춰진 것과 드러난 것 사이의 간극에서 생성되는 에로티시즘을 그리다]

마스크를 쓴 여인이 눈을 감고 있네요. 옷을 입고 있지는 않지만 천으로 몸을 덮고 있죠? 이국현 작가의 이 작품을 보면, 작품에 등장하는 여인은 스스로를 드러내려 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또 무엇인가로 감추려고 하는 듯 보입니다. 이처럼 감추는 것과 드러내는 것 사이의 간극에서 느껴지는 에로티시즘은, 예술사를 통틀어 가장 오래도록 사용된 소재였죠.
그러한 에로티시즘은 각 국가의 사회, 문화적 배경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었지만 공통적인 것은 대부분 여성이 성적 대상화 되었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러한 성적 이데올로기는 이국현 작가의 작업을 설명하는 주요한 키워드라고 합니다.
[억압된 상황의 극적인 표현, 그리고 그것의 탈출을 희망하다]

그림의 상단에는 확성기가 보이고, 그것에서 들리는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괴로워하는 듯한 두 여인이 양 쪽에서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데요. 마치 고개를 좌우로 재빨리 흔들면서 “이제 제발, 그만해!” 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는 것 같죠? 확성기와 두 여인은, 억압된 상황을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장치라고 해요.
공산주의 국가들의 포스터들을 보면, 확성기가 자주 등장하죠. ‘통제와 억압’의 상징물이기 때문일 텐데요. 작품에서는 무엇인가를 모두가 알아들을 수 있게끔 큰 소리로 통보하고, 그것을 인식하게 하여 복종하게 만드는 과정이 체계적으로 작동함을 보여주는 오브제로서 기능하기도 합니다.
시그널 에러(Signal Error)라는 제목이 붙은 이 작품에서는, 이러한 억압과 통제 속에 있는 상황을 탈출하고 싶은 작가의 열망도 보이는데요. 이국현 작가는 이 작품을 작업할 당시, ‘우주여행을 하다 어느 행성에 불시착하게 된다면?’이라는 상상을 했다고 해요.
우리도 가끔 본래 살고 있던 곳을 벗어나 전혀 다른 곳을 여행하고 싶다거나, 그 곳에서 생활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죠? 특히 ‘우주의 어느 행성’이라는 공간은, 우리가 늘 접할 수 있는 것들과는 전혀 다른 무언가가 있는 곳일 텐데요. 작가는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할 수 없는 ‘제 3의 성(性)’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고, 그것을 작품에 등장시킨 우주인으로 표현했다고 합니다.
[어느 것 하나로 규정하기 힘든, 현대 미술의 새로운 한 조류를 표방하다]
누구나 어딘가로 훌 쩍 떠나고 싶다거나, 스스로를 억압하고 있는 모든 것들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텐데요. 이국현 작가의 작품을 보면 이렇듯 무언가에 통제당하고 억압받는 대상들을 자유롭게 하면서도 스스로 그러한 자유로움을 추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본인의 작품에 등장하는, 억압받고 통제 당하는 것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어 하는 여성들처럼, 이국현 작가 역시 사진적인 재현 방법을 하이퍼리얼리즘(Hyper Realism, 극사실주의)으로만 귀결시키려는 국내의 획일적인 미학적 정의에도 회의감을 나타낸다고 해요. 이국현 작가는 본인의 작풍을 그러한 획일성에서 벗어나 여러 가지 사조들이 복합적으로 나타난 현대 미술의 한 부류로 보아야 한다고 하는데요. 이국현 작가의 작품들을 자세히 보고 있으면, 작가의 그러한 의견에도 사뭇 동의하게 됩니다.
굳이 화가로서가 아니라 하더라도, 누구든 본인이 하는 일을 기존의 틀에 박힌 범주에 국한시키지 않고 창조적인 한 분야로 장착시킬 수 있다면, 단순히 맡은 바 주어진 일을 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의미 있는 활동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제법 따뜻해져 봄의 기운이 완연히 느껴지는 요즘, 겨울을 뒤로하고 새롭게 다가오는 봄을 느끼며, 지금껏 우리를 억압하고 있었던 추위에서 벗어나 보다 자유로운 것들을 만들어 나가는 것, 혹은 우리를 짓누르고 있는 무언가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열망을 느껴보는 것. 이러한 것들 모두 이국현 작가의 작품을 감상하며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글: 헬레나 (문화예술칼럼니스트) faithmyth@hanmail.net blog.daum.net/faithmy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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