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싯그룹(Tacit Group), 일상의 행위를 예술로 승화시키다 [헬레나의 그림이야기 ⑭]
입력 2013. 03.19. 08:14:02
우리는 누구나 예술가로 태어난다는 이야기가 있죠. 소설가 김영하에 따르면, 일상생활 속에서 하는 낙서, 노래, 춤, 소꿉장난, 고무줄놀이처럼 아이가 하루 종일 지칠 줄 모르고 하는 모든 행위가 곧 예술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아이가 그런 행위를 할 때는, 꼭 어떠한 작품을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을 갖고 무언가를 하기 보다는 그것 자체가 목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컴퓨터 자판을 그저 두드리거나 게임을 하는 것 등도, 스스로를 즐겁게 하는 일종의 예술 행위라고 할 수 있는데요. 오늘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어린 아이’와 같은 예술가를 일깨우듯, 일상생활 속에서 하는 행위 자체를 음악과 미술과 승화시킨 오디오 비주얼 퍼포먼스 그룹인 태싯그룹(Tacit Group)과 그들의 작품 세계를 소개하려 합니다.
태싯그룹은 2008년 테크노 뮤지션 가재발(본명 이진원)과 전자음악가 장재호가 만든 미디어 아트 퍼포먼스 그룹인데요. 특히 가재발은 2003년 대외적인 가수활동 없이 음악만으로 디지털 음원 시장에서 벨소리와 컬러링 챠트의 1위를 차지했던 <바나나걸>의 프로듀서로도 알려져 있죠.
[훈민정악]

‘작품을 공연한다’는 태싯그룹의 컨셉에 걸맞게, 태싯그룹은 공연 전까지 시스템을 만들고 그 시스템이 최종 결과를 만드는 ‘알고리즘 음악’이라는 형태를 취하여 오디오 비주얼 아트를 선보이고 있는데요.
태싯그룹 멤버인 장재호에 따르면, 처마 밑에 매달린 풍경은 바람이 어떻게 부느냐에 따라 다른 소리를 내는데, 그러한 환경적인 요소들이 만들어내는 각기 다른 결과에 착안하여 만든 것이 바로 태싯그룹의 알고리즘인 태시트롤로지(Tacitrology)라고 합니다.
태싯그룹의 히트작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훈민정악’은 한글의 창제원리를 응용한 작품인데요. 연주자들이 관객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를 채팅창을 통해 보여주는 동시에, 한글의 자음과 모음에 따라 매핑된 사운드가 음악으로 발전해 나간다고 합니다.
비메오(Vimeo)에서 동영상을 통해 접한 훈민정악은, 연주자들과 관객들이 함께 어우러져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고, 1:1로 대화를 하고 있지는 않지만 음악과 영상을 통해 교감을 한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퍼즐(Puzzle)]

태싯그룹은 작품을 공연하기 전까지 리허설을 하지 않고 계속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작업을 한다고 하는데요.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공연을 할 때 마다 결과물이 달라진다고 합니다.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놓고 그것을 ‘반복 재생’하는 개념이 아닌, 매 공연마다 새로운 형태의 작품을 관객에게 선보인다는 점이 매우 신선한데요.
퍼즐 맞추기 게임을 두 사람이 하고 있는 듯한 모습인 ‘퍼즐(Puzzle)’이라는 작품은, 단순히 컴퓨터 게임을 하는 듯 보이는 두 사람의 행위 자체도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창의적인 작품입니다.
[스트럭처럴(Structural)]

태싯그룹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스트럭처럴(Structural)’은, 누구나 한 번 쯤은 해 봤을 테트리스 게임을 재해석한 작품인데요. 대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테트리스의 친근한 논리구조를 음악과 영상에 대입 시켰다는 점이 주목할 만합니다.
연주자들이 무대에 보이는 대형 스크린을 통해 테트리스 게임을 하면, 각자의 테트리스 블록이 쌓이는 모습에 따라 실시간으로 음악이 만들어지는데요. 시각적으로는 마치 작곡가와 프로듀서의 작업실을 연보는 듯한 느낌을 주고, 청각적으로는 같이 게임을 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어, 관객이 간접적으로 작품 활동에 참여한다는 생각을 갖게끔 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태싯그룹은 실험적이고 혁신적인 20세기 예술을 대중이 쉽고 재미있게 접하게끔 만드는 것이 목적이라고 하는데요. 일반 대중은 다소 어렵게 느낄 수 있는 ‘미디어 아트’라는 분야를, 작품을 보는 사람과 만드는 사람 사이의 경계를 허물게끔 하는 시도가 독창적이면서도 의미 있어 보입니다.
2011년에는 덴마크 아르후스 페스티벌에 헤드라이너로 참여해 해외에서도 성공적으로 데뷔했고, 2012년에는 미국 뉴욕의 링컨 센터, 시카고 현대미술관 등에서 초청 공연을 벌이기도 한 태싯그룹. 한글, 게임 등 친숙한 소재를 음악과 미술로 승화시킨 태싯그룹이 본인들이 만든 작품을 통해 보다 많은 대중과 소통을 하며, 21세기의 한 획을 긋는 예술가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글: 헬레나 (문화예술 칼럼니스트) faithmyth@hanmail.net/ blog.daum.net/faithmy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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