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염이 소 자라도 길러야 남자? [패션다큐 ④]
- 입력 2013. 03.19. 09:31:28
[매경닷컴 MK패션 차평철 기자] 얼마 전 배우 배수빈은 한 프로그램에 풍성한 수염을 기르고 나와 시청자들을 놀라게 했다. ‘소’자 모양의 수염으로 유명한 가수 박상민과, 김흥국과 노홍철 등이 브라운관을 통해 익숙한 수염남들이었다면, 말끔한 얼굴을 자랑했던 젊은 남자 탤런트의 털털한 모습은 새로웠다. 오토바이와 가죽 옷차림을 즐기는 최민수 정도가 미남 배우 중 얼굴을 덮는 수염을 길렀을 뿐, 우리 연예계에서 젊은 배우가 기른 덥수룩한 수염은 눈길을 사로잡았다.구한말 단발령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던 수염은, 군사정부가 들어선 후 장발단속 등과 맞물리며 점점 멀어졌다. 하지만 몇몇 연예인을 비롯해, 홈런왕 김봉연과 투수 계형철 또 사상가 함석헌과 작가 이외수 등이 수염을 기르는 유명인이었다. 그러나 박찬호에 이어 타자 이용규 그리고 배우 김윤석과 하정우 등이 멋진 수염을 기르자 온라인에서는 ‘인조수염’이 판매되고, 여성들도 적당한 수염을 좋아할 만큼 대접은 달라졌다.
이런 수염은 고대로부터 관습, 종교, 취향 등에 따라 많은 영향을 받아왔고 여전히 그 의미가 다양하다. 우선 권위나 권력의 상징으로서 수염을 살펴보면, 고대 이집트인은 턱수염을 기르고 염색을 했으며 금실을 넣어 땋기도 했다. 당시 수염은 귀족들에게만 허용됐으며, 또 왕이나 왕비들은 금속으로 만든 모조 수염을 달고 다녔다.
‘구약성서’에 보면 암몬족의 왕 하눈은 다비드 왕의 사신들의 수염을 깎아 모욕을 줌으로써 이스라엘족과 전쟁이 일어나게 했다. 고려시대 문신 김부식의 아들 김돈중은 무신 정중부의 수염을 촛불로 태웠고, 이는 무신의 난 때 김돈중이 동생과 함께 잡혀죽는 비극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또 최악의 학살자로 유명한 아돌프 히틀러는 특유의 짧은 콧수염으로 유명했다. 찰리 채플린은 영화 ‘위대한 독재자’에서 이런 그를 패러디했다. 실제 둘은 나이가 동갑인 것은 물론 콧수염을 단 외모 또한 비슷했다. 해방이후 국무총리를 역임한 장택상 역시 이 짧은 콧수염으로 유명했다.
한편 수염은 오랜기간 남성다움과 용기를 의미했다. 삼국지에서 독화살을 맞은 팔을 수술하면서도 바둑을 두는 관우는 2자(약 60㎝)의 아름다운 수염으로 미염공이라는 호칭을 얻었다. 또 그와 도연결의를 맺은 아우 장비 역시 돼지털 같은 뻣뻣한 수염을 날리며, 홀로 장판교에서 조조 군사를 돌려세우는 용맹함을 떨쳤다. “네 자유와 권리는 딱 네가 저항한 만큼만 주어진다”라고 했던 혁명가 체게바라는 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채 게릴라 활동을 했다.
이런 수염이 상징하는 권력과 용기의 의미는, 전 세계 남성들이 멋을 내는 방식으로 수염에 열중하게 만들었다. 중앙아시아 유목민이나 중동권 남성들은 지금도 수염을 남성성의 상징으로 여긴다. 따라서 수염이 없는 남성은 종종 어린아이나 게이로 취급받는 일도 있다고 한다. 커다란 체구로 유명한 인도 시크교 남성 역시 평생 머리카락과 수염을 자르지 않는다.
1860년 공화당 대선후보였던 링컨은 “모든 여자들은 수염을 좋아하며, 여자들은 당신에게 투표하도록 남편을 닦달할 것이다”라는 11살 소녀의 편지를 받았다. 그때까지 평생 수염을 길러본 적이 없던 링컨은 소녀의 조언을 받아 들였고 결국 16대 대선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미국 여성의 참정권은 60년 후에야 실현 돼 수염이 상징하는 권력이 여성에게 허용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1차 대전 막바지 네덜란드로 망명했던 독일제국의 빌헬름 2세는 위로 꼬여 올라간 카이젤 수염으로 유명했다. 이 수염은 1차 대전 당시 독일군 연락병으로 복무한 히틀러도 한때 유지했던 스타일로, 우리 근현대사에서는 독립운동가 이동휘, 안창호, 여운형 선생 등이 이 카이젤 수염을 길렀다.
더욱이 우리 패션, 뷰티계에서 수염은 분명한 자신의 성정체성을 드러내는 상징이었다. 패션 디자이너 이상봉과 또 유명한 몇몇 남성 헤어디자이너는 그 이름만큼 수염으로 유명하다. 아름다운 의상이나 탐스러운 머리카락이 그들의 주된 관심사라면, 수염을 기른 그들의 얼굴은 분명한 남성성의 표현이었다.
이처럼 오랜 기간 수염은 남자들에게 많은 의미를 담은 신체의 일부였다. 하지만 수염을 기르는 남자들은 화장을 하는 여성만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서울에 사는 한 30대 남성은 얼굴전체가 푸르스름할 정도로 수염이 많지만 “하루만 둬도 덥수룩한 모습이 험악해서 늘 면도를 한다”며, 제모를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선택받은 자의 수염만을 부러워하라”는 말처럼 수염은 모양보다도 그 사람에게 어울리는 것이 중요하며, 또 부지런한 관리를 통해서만 멋진 모습을 연출할 수 있다.
[매경닷컴 MK패션 차평철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 SBS '화신' 방송화면 캡처, 위키디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