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운서 이숙영이 제안하는 ‘셀프 힐링법’ [인터뷰]
입력 2013. 03.25. 16:00:16
[매경닷컴 MK패션 차평철 기자] 쌀쌀한 꽃샘추위가 뺨을 스치는 22일(금) 오후, 이숙영 아나운서를 만나기 위해 서울 강남구 도산공원에 도착했다. 분홍빛 재킷과 머리띠, 하얀 치마와 구두 그리고 가방을 들고 나타난 그는, 꽃망울을 조금 틔운 산수유 가지 아래 봄처럼 환한 웃음을 지었다.
“문학을 좋아하고. 어려서 책을 많이 읽었어요. 또 글을 잘 써서 선생님이 초등학교 때부터 작가가 됐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문예반에도 많이 들었고요. 대학(이화여대) 때 전공도 영문학이니까 문학에 대한 감수성이 있고 ‘광기로 혹은 향기로’라는 소설도 한 권 썼어요. 문학에 대한 짝사랑이 있죠. 또 제가 하는 라디오 프로가 종합구성이니까. 연극도 보고 영화도 많이 보죠. 제일 좋아하는 문학작품은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에요. 오는 5월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으로 개봉한다고 하던데. 소설에 나오는 1920년대 미국 풍속과 데이지라는 여인을 사랑하는 순정파 개츠비를 좋아해요”
통통 튀는 발랄한 목소리로 유명한 그는 최근 TV 프로에서 간혹 만날 수 있다. 실제로 만난 그는, 분명한 목소리만큼이나 패션과 개성이 뚜렷했다. 심지어 말간 핑크빛 성대보다도 훨씬 밝았다. 최근 농담처럼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다’라는 말이 있지만, 그가 쓴 다양한 책을 읽다보면 결국 ‘매력’에 중점을 두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매력은 결국 자기 철학인 것 같아요. 어떤 걸 보고 있는가. 인생에 무엇을 중시하는가 하는 것이죠. 저는 복잡한 눈빛을 좋아해요. 합리적인 눈빛. 우수어린 눈빛. 너무 밝으면 사실 커튼 없는 창문 같잖아요. 저도 아침에 방송을 하니까 늘 밝게 시작하려고 하지만, 사실 제가 좋아하는 노래는, 윤종신의 ‘오래전 그날’, 동물원의 ‘시청 앞 지하철역에서’, 최근에는 알리의 ‘365일’ 등 쓸쓸한 노래들이에요”
환한 목소리가 인상적인 그의 애잔한 취향을 듣고 있으니, 문득 쓸쓸함이나 우수를 좋아하는 것이 공감이 아닌 부재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싶었다. 마치 젊은 친구들이 자신의 싱그러움이 버거워, 어두침침한 색의 옷을 선호하는 것처럼.
“저는 공존하는 것 같아요. 굉장히 어둡고 감정적인 것이나, 낙천적이거나 밝은 면이요. 제가 AB형인데 이상하게 DJ는 AB형이 많아요. 박소현, 김창렬 등. A형의 소심함이나 꼼꼼함도 있지만 B형의 자유를 갈구하는 면도 섞여 있어요. 그래서 저와 실제로 만나보신 분들은, 대화를 나눠보니 예상보다 차분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세요”
선천적으로 잠이 없어 하루에 4시간이면 충분하다는 그는, 건강하고 밝은 에너지를 매일 아침 쏟아낸다. 또 방송을 위해 섭생에 신경을 쓰며, 몸에 좋은 것도 많이 챙겨먹는 편이라고 했다. 더욱이 긍정적이고 밝은 면은 아버지를 많이 닮은 것 같다는 말을 들으니 부모님과의 관계가 궁금했다.
“전 엄마 편이었어요. 아버지는 당구, 마작, 댄스 등 잡기에 능하시고,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으셨어요. 그러다보니까 나는 커서 아버지와 다른 사람과 결혼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제 수필에도 썼는데, 부성 콤플렉스가 있는 것 같아요. 예전에 황진이도 그랬다는데, 항상 나한테 포근하고 감싸주는 남자를 그리워했어요. 아버지와 반대 타입을 좋아했죠. 그래서 연애도 그런 남자와 하고 결혼도 그랬고요. 엄마는 희생적이고 신앙심도 깊으셨고. 어머니가 췌장암으로 돌아가신지 10년 됐는데, 그 후에 아버지를 이해하기 시작했고, 또 좋아하려고 노력했죠. 지금은 아버지가 이렇게 장점이 많구나 하고 느껴요. 아버지는 합리적이고 자식에게 폐를 안 끼치시니까. 이런 아버지를 둔 게 축복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가 쓴 ‘연애학 개론’을 보면, 귀스타브 플로베르가 쓴 ‘마담 보바리’에 대해 그는 두 남자에게 버림 받아 목숨을 끊은 비극적인 엠마라고 평했다. 하지만 소설 속 엠마는 진정한 사랑을 찾는 여인이 아니라, 어린 시절 읽은 온갖 유치한 소설과 시골 의사 부인으로 분에 넘치는 소비 끝에, 결국 파멸하는 여인으로 등장한다. 책이 출간된지 근 20년이 지난 요즘, 사랑에 대한 입장을 물어봤다.
“사랑은 같이 있어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아무리 사랑해도 쉽게 변하고. 맘에 안 든다고 헤어지는 건 사랑이 아닌 것 같아요. 사랑 못지않게 중요한 게 신의고, 그래서 차마 못 버리는 게 사랑이겠죠. 그만큼 저도 헤어지지가 힘든 사람이고. 얼마나 남녀 사이에 갈등이 많겠어요. 결혼여부를 떠나서. 그럴 때마다 헤어지자고 하는 건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결론적으로 말하면 오래가는 게 사랑이지 잠깐 만고 헤어지는 건 그냥 혹하는 열정이겠죠”
헤어지는 게 힘들어 옷도 사람도 정들었던 것에 애착이 많다는 그에게, 안 입는 옷도 잘 정리하는지 또 어떤 패션 브랜드를 좋아하는지 궁금했다.
“이번에 이사 오면서 정리를 했어요. 옷을 마치 컬렉션 하는 정도는 아니고요. 단지 옷을 재밌어 해요. 동대문도 가고. 거리에 싼 옷도 제 컨셉에 맞는 것. 저는 블링블링 하고 핑크, 여성스럽고 섹시한 것을 좋아하거든요. 그런 건 브랜드 상관없이 가다가 눈에 띄면 사요. 또 쇼핑은 많이 걸으니까 운동이라고 생각해요. 신촌도 갔다가 명동도 갔다가 압구정동도 골목골목 다니고 가로수 길도 다니고요. 국내 브랜드 중에는 ‘에고이스트’를 좋아하고요. 가격도 합리적이고 디테일도 있어서 좋아요. 저는 아침에 눈뜨면 어떤 컨셉을 할까. 하와이 여자, 타이티 여자, 캔디 등. 그날그날 다르고 그래서 늘 즐거워요. 오늘 컨셉은 큐트와 핑크에요” 학창시절 요즘 SBS ‘짝’에서 더빙을 담당하는 김세원이 진행하던 ‘김세원의 영화음악실’은 그에게 고상하고 지적인인 방송인으로서 롤 모델이었다고 한다.
“어린 시절에는 공부밖에 몰랐어요. 아침에 도서실가고 학원 다니고 과외 받고 그랬죠. 경쟁형 인간이었어요. 초등학교 중학교 때 1등 뺐기면 잠을 못자고. 5학년 때 6학년 공부 미리하고 그랬어요. 또 어려서 톨스토이 등을 읽어보면 세상이 험난하고, 홉스의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나 성악설을 믿고 그랬어요. 그게 이북에서 내려온 엄마 영향이 큰 것 같아요. 믿을 건 네 실력 밖에 없고 세상은 무섭고. 그래서 그게 세뇌가 돼서. 하지만 대학졸업하고 경쟁형 인간을 포기했어요. 뭐든지 경쟁 경쟁 그렇게 되니까 피폐해지고. 또 결정적으로 아나운서가 되고나서, 인기프로에 캐스팅이 못되다보니까. 나만의 세계나 재미를 구축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지금도 돈이나 명예에 정점에 있는 사람보다는, 소수자들 또 상처 받은 이들에게 관심이 있어요. 그래서 누구에게나 ‘깊은 산 속 옹달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어떤 사람에게는 자기만의 취미나 연인이 될 수 있겠죠”
문득 ‘내려놓기’를 통한 이런 마음가짐이, 늘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그가 경쾌한 아침을 여는 가장 큰 원동력이 아닐까 싶었다.
“저는 하루하루가 보물찾기 같은 마음이 들어요. ‘어제 왔고 오늘을 살고 내일 가리라’. 내일이 없을 수도 있잖아요. 그러니 축제 같죠. 성공은 제 인생의 화두는 아니고요. 매일 재미를 찾고 낚는 것, 하루를 충만하게 사는 게 목표에요. 만약 여건이 안 되면, 욕망을 구조조정 하면 되고요. 항상 방송을 그만두면 산에 가서 자족하거나 또 지하철타고 다니겠다. 그런 생활로 전환해야겠다고 생각하죠. 요즘 힘든 사람들 많잖아요. Have 동사적인 삶에서, 이제는 Be 동사적인 삶과 사유에 눈을 떠야겠죠. 소유 때문에 괴로워하지 말고요”
도둑이 재물을 뺏어도 머릿속 지식을 빼 갈 수 없다는 교육을 어머니에게 받았던 그는, 학창 시절 결석 한 번 없이 높은 성적을 유지하며 대학교 4학년 2학기 때 동아방송 아나운서가 됐다. 억눌린 현실과 청춘에 대한 위로가 넘쳐나는 요즘. 실제 자녀들에 대한 그녀의 교육법이 궁금했다.
“애들 성적과 학력에 관여안하고. 행복할 수 있는 긍정적인 마음을 많이 얘기했어요. 특히 둘째 같은 경우는 중학교 때 유학을 보냈는데. 잘한 것 같아요. 입시뒷바라지에 자신이 없어서 코스모폴리탄이라도 만들자고 결정한 거죠. 대신 업보는 제가 자녀들한테 희생적인 엄마가 아니었기 때문에 심리학적으로 말하면 ‘애착형성’이 다른 모녀보다 약해요. 내가 관여하고 고민을 들어주고 했던 것이 아니고, 같이 있던 시간도 적었으니까 끈끈한 정은 없고요. 그냥 친구 같을 뿐이죠. 제 일도 바쁘고 또 제가 좋아하는 걸 하면서, 애들에게 결핍도 도움이 된다고 합리화 했어요. 작가들에게도 콤플렉스와 결핍이 힘이 된다고 하니까”
부모자식 간의 ‘희생’은 우리 사회에서 영원히 끊기지 않는 뫼비우스 띠와 같다. 건전하거나 정상적인 관계가 아닌, 현재의 자신은 없고 미래의 자식으로 유전되는 인생.
“전 제가 중요하더라고요. 엄마한테 고맙지만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어요. 대신 엄마가 너무 희생을 한 걸 잘 아니까,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착한 딸이었죠. 반항도 없고. 공부도 열심히 잘하고. 학부모 회의에서도 딸 칭찬 너무하지 말라고 코치까지 하고 그랬어요. 제가 열심히 공부하고 아나운서가 된 것도, 엄마 희생과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게 컸어요”
스스로 유명인도 아니고, 그렇게 잘 나 간 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그는, 사람들 말을 잘 들어주고. 정리를 잘해 한 길만 판 MC형이라고 했다. 하지만 주로 게스트로 섭외가 들어오는 것에, 심리적으로 위축 되고 실망도 컸다고. 하지만 실패와 불행은 예고도 없이 찾아오기에, 늘 겸허한 마음으로 살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교만한 사람을 싫어한다고 밝힌 그에게 마지막으로 젊은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셀프가 중요하죠. 셀프 힐링, 셀프 건강법. 말하자면 혼자서도 잘 살고, 잘 먹고, 잘 놀 수 있어야, 둘이서도 설 수 있는 거예요. 너무 타인의존적인 삶은 그게 안 됐을 때 비참해지니까요. 지금 누가 없더라도 자족하고 건강하고 나를 키울 때, 진정한 사랑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또 짝사랑을 해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깊은 눈빛을 가진 사람. 그래서 저는 ‘상처도 진주다’라도 말해요. 특히 사랑의 상처는 짝사랑이든 외사랑이든 눈빛을 깊게 만들죠. 상처받기 싫어서 사랑을 안 하겠다는 건, 소설책 끝을 모르기 때문에 책을 안 읽겠다는 것과 같아요. 그래서 마이너스 스펙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마이너스도 재산이에요. 오프라윈프리도 그래서 사람들이 좋아하잖아요. 전 그런 면에서 순탄하고 별로 고생도 안했기 때문에, 강연을 해보면 오히려 콤플렉스를 느껴요. 실패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고 싶어요. 그것도 결국 재산이니까”
[매경닷컴 MK패션 차평철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 진연수 기자]



더셀럽 주요뉴스

인기기사

더셀럽 패션

더셀럽 뷰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