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3 트러블메이커 ; “책, 당신을 고발합니다!”
- 입력 2013. 03.27. 00:01:11
- [매경닷컴 MK패션 한숙인 기자] "책, 당신은 당신의 죄를 인정합니까? 21세기 디지털 비쥬얼 시대에 적합하지 않는 종이라는 도구를 몸체로 한 당신은 현대인들에게 극심한 불안과 혼란을 야기하며, 현대인 전체를 몰지각한 행동을 하는 파렴치한으로 만들었습니다. 이에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언도합니다."책이 사라진 세상은 무지와 폭력, 독재와 독선만이 난무하게 될까? 책을 멀리하는 대중들에게 지식인들은 순수문학과 인문학의 중요성을 설파하며 책 읽기를 독려한다. 설득으로, 포용으로 때로는 강압으로 독려해온 책 읽기는 자의적 의사를 끌어내는데 실패함으로써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게 됐다.
이 때문인지 최근 유명인들의 책 관련 발언이 사회의 물의를 일으키며 논란의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연세대학교 국문학과 마광수 교수는 교양수업 '문학과 성' 강의계획서에 "'별 것도 아닌 인생', '문학과 성' 책 2권을 구입한 영수증을 붙일 것. 안 붙이면 리포트가 무효"라고 써, 학생들의 강한 반발을 샀다.
유명 강연자 김미경은 자신의 이름을 내건 tvn ‘김미경 쇼'에서 ‘드림워커가 되기 위한 가장 빠른 길'이라는 제목의 강연 도중 자기계발서를 읽지 않는다는 한 청중을 향해 내뱉은 독설로 ‘인문학 비하' 논란에 휘말렸다.
지식인들은 책을 대중을 공격하는 무기로 사용하고, 대중은 이들을 지적 허영에 찌든 인간 취급을 하며 책과 의도적으로라도 거리를 두려 하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책은 피의자와 피해자라는 신분을 동시에 얻게 됐다.
책의 관점에서 보면, 읽는 자와 읽지 않는 자 두 종류의 인간이 존재한다.
마광수 교수의 발언은 읽지 않는 자를 향해 분노하는 책의 ‘대변인' 역할을 하고 있다.
마 교수는 "학생들의 뻔뻔한 수강태도에 분노한다"라는 제목으로 교내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지난 학기 수강생 600여명 중 교재를 구입한 학생은 50여명에 불과해 소신으로 반드시 책을 구입하라고 유도한 것"이라며, "교재는 전쟁터의 총과 마찬가지인데 교재를 사라고 한 걸 항의하는 학생들에게 분노가 치민다"고 말했다.
마 교수는 책 구입 후 영수증 첨부에 대한 부당성을 제기한 학생들을 향해 "책 검사를 해서라도 가짜 영수증을 낸 학생들을 고발하겠다"며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이 같은 마 교수의 강도 높은 발언은 '외면과 소외'라는 보이지 않는 폭력을 행하는 대중을 향한 책의 처절한 외침처럼 들린다.
반면, 김미경의 인문학 비하 논란은 읽는 자의 편협성을 향한 책의 질타와 책망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김미경은 "인문학은 지혜를 만들기 위해 읽는 것이다. 그 사람의 지혜가 300페이지 서적으로 쓰이면 자기계발을 해왔다는 거고, 그게 자기계발 서적이다. 근데 안 읽는다고? 웃기고 있어. 시건방 떨고..."
김미경의 발언은 타인뿐 아니라 김미경 자신에게도 책에 대한 편협이 얼마나 깊게 뿌리내리고 있는지 말해주고 있다.
이런 논란의 와중에 대림미술관이 내달 'How to make a book with Steidl : 슈타이들 전'을 연다. 책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세계적인 출판계의 거장 게르하트 슈타이들의 책 제작 과정을 보여준다고 하는 이 전시가 책에 대한 존경과 애착을 심어주게 될까?
"책, 당신에게 발언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저 역시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해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의도한 바는 아니나, 인간들을 향해 무조건적 수용을 강요해왔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책이 사라진 미래는 없을 것이다. 또한 인간 개개인에게 책이 주는 아픔과 기쁨, 고통과 희열은 논란 속에서 역시 항상 존재할 것이다.
[매경닷컴 MK패션 한숙인 기자 news@fashionmk.co.kr/사진=대림미술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