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백한 조선여인의 아름다움 찾는 사진작가 최원진 [인터뷰]
입력 2013. 03.27. 16:55:07
[매경닷컴 MK패션 차평철 기자] "이 학생의 사진을 보고 있으면, 꼭 빨려 들어갈 것 같지 않아요?" 최원진의 사진전 ‘正.面.’(정면)이 오늘(27일)부터 4월 2일까지 서울 종로구 관훈동 갤러리 룩스에서 열린다. 2012년 여름방학 기간 그가 대전의 호수돈 여고에서 찍었던 학생들의 얼굴로 전시회를 여는 것이다. 개성여학당으로 출발한 호수돈 여고는 1908년 미국 홀스턴 연회의 지원을 기념해 홀스턴의 한자음을 빌려 호수돈 여숙으로 교명을 바꿨다. 이후 6·25전쟁 중 남하해 1953년 대전에서 재개교했으며, 1999년 개교 100주년 기념식을 가진 유서 깊은 학교다.
이번 작업은 호수돈 여고에서 미술을 가르쳐온 교사 김주태가 미술시간을 감상시간으로 바꾼 뒤, 교내에 위치한 ‘홀스톤 갤러리’에서 작가에게 사진전을 의뢰하면서 출발했다. 여고에 위치한 갤러리에서 어떤 사진으로 전시를 할까 고민하던 그는 문득 학생들을 대상으로 작업을 하자는 생각을 하게 됐고, 이는 미술교사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사진전 ‘正.面.’(정면) 을 탄생하게 했다.
처음에 학생들을 대상으로 어떤 사진을 찍을까 고민했다는 최원진은 문득 순수한 여인의 얼굴을 찍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화장이나 성형을 하지 않은 우리나라의 소녀, 혹은 앳된 여성의 모습을 이목구비에만 집중해보기 위한 것이다. 이는 평소 그가 외국에서 조롱받는 우리 ‘성형미인’에 대한 문제의식을 순수한 학생들의 얼굴을 통해 제기할 수 있는 기회였다.
이를 위해 우선 그는 지원자 중에 성형이나 화장을 하지 않은 학생들을 선별했다. 이후 헤어밴드로 머리를 넘겨 얼굴과 이마가 훤히 드러난 학생들을 대상으로, 위로는 눈썹부터 입술 또 좌우로는 눈꼬리까지 자르는 방법을 택했다. 그는 배경도 치장도 배제된 증명사진 처럼, 생김새에 집중할 수 있도록 중심부분만 남겼다.
“시각적으로 아름답고 세련된 이미지에 대한 한국인의 고정관념은 현재 크게 왜곡돼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 눈에 아름답게 보이는 것의 밑바닥에는 결국 우리의 눈에 익숙한 것이 존재하거든요. 불과 100년 전만 해도 우리 선조들의 미의식은 전혀 달랐죠. 아담한 키와 둥근 코, 도톰한 입술, 가늘고 긴 눈이 조선시대 미인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인 것처럼. 그런데 지금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서구인을 닮으려고 발버둥 치고, 이제는 그런 모습마저 당연시 여기는 우리 모습에 답답함을 느꼈어요”
학생들의 부모세대도 이미 서구적인 의식주 속에 살아왔고, 또 최근 젊은 청소년들의 체형이나 신체적 특징이 급격히 서구화되고 있다는 보도는 이미 익숙하다. 따라서 굳이 북방계와 남방계가 섞인 중간형의 얼굴이 많아졌다는 골상학적 분석이 아니더라도, 대부분 우리 여성들의 이목구비 또한 조선 여인의 얼굴 대신 많이 서구화됐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하지만 학생들은 잡지나 TV 혹은 영화를 통해 어느새 익숙해진 ‘강남 미인도’의 얼굴이 아닌, 책을 통해 보았던 조선시대 여성의 얼굴을 고스란히 갖고 있었다. 사진 속 그들은 말간 피부에, 간혹 청춘의 상징인 여드름이나 뾰루지가 났다. 더욱이 눈썹 정리를 하지 않은 학생들은 여성이 아닌 중성적인 느낌을 준다. 한편 촬영 후 그가 가장 큰 차이점을 느꼈던 부위는 입술이다. 학생들마다 두께나 입매에 따라 크게 다름을 느낀 것. 또 얼굴형은 종종 틀어지거나 좌우대칭이 올바르지 않음이 발견돼, 성형보다 교정이 더욱 필요함을 느꼈다고 한다.
“현재 우리의 미의식은 고대 그리스인의 모습이 로마를 거쳐 유럽으로, 그리고 미국으로 흘러든 것에 사로잡혀 있어요. 근대 이후 유럽과 미국이 상대적으로 강력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문화적인 측면에까지 힘을 떨치면서,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동양 문명이 푸대접 받음으로써 비롯된 일일 겁니다. 어쩌면 오늘날 우리 미의식은 고대 그리스에 속박된 것일지 모르겠어요”
학생들 중에는 쌍꺼풀이나 짙은 눈썹, 또는 크고 동그란 눈을 가진 경우도 있었지만 이는 소수에 불과했다. 역시 근대화를 맞은 지 근 100년 만에, 유전형질은 한두 세대 만에 쉽게 변하지 않았다. 전근대와 근대가 혼재된 우리 사회처럼, 여성들도 조선의 얼굴에 서구적인 헤어스타일과 화장법 그리고 패션만 차용하고 있을 뿐이다.
탈아입구(脫亞入歐)를 부르짖었던 일본이, 세계적인 패션의 메카이자 디자이너들을 탄생시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눈에 눈에 띄는 외모적 특징을 갖고 있는 것처럼, 위로부터의 서구화를 부르짖은 우리사회 역시 외형의 본질인 얼굴자체를 변화시키지는 못했다. 결국 컴퓨터 미인과 강남 미인도는 각종 매체와 병원이 만들어낸 허구일 뿐, 실제 우리 모습은 아닌 것이다. “저는 이번 작업을 통해 잃어버린 우리의 얼굴을 찾아보고 싶었어요. 이번 작업을 통해 우리 본연의 순백한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매경닷컴 MK패션 차평철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 최원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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