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화 작가 주경숙의 ‘마릴린 먼로와 함께한 3년’ [인터뷰]
입력 2013. 03.29. 20:49:36
[매경닷컴 MK패션 차평철 기자] 소담(素淡) 주경숙의 ‘마릴린 샵’(MARILYN SHOP)이 지난 27일, 종로구 관훈동에 위치한 가나아트스페이스에서 전시됐다. 이화여대 서양화과 졸업 후 같은 대학 교육대학원에서 미술교육학을 전공한 작가는, 대한민국서예술대전 등 각종 문인화(文人畵) 행사에 초대돼왔으며, 이번 전시에서 한지에 수묵채색 기법으로 마릴린 먼로를 쓰고 그렸다.
“문인화와 일반 한국화와 다른 점은 일필휘지(一筆揮之) 즉 붓으로 한 번의 느낌으로 단번에 그리는 거예요. 덧칠을 잘 안해요. 즉 가필(加筆)을 안하는 거죠. 따라서 어떤 실수를 해도 작품이 될 수 있고. 실수를 해서 안 되는 경우는 버려지는 거예요. 순간의 힘이 강하죠. 그래서 크로키와 비슷한 맥락을 잡는 분도 있어요. 전통적으로 문인화는 그림보다 그 뒤에 숨은 뜻에 비중을 두다보니 점점 무거워진 측면이 있어요. 편안하게 감상하려고 해도 사실 어느 정도 이상의 지식을 필요로 하고요. 전 그걸 깨보고 싶었어요”
동양화의 일종인 문인화는 전문 화원들이 아닌 양반 사대부 계급에서 발전한 화풍을 일컫는다. 흔히 매난국죽(梅蘭菊竹)으로 불리는 사군자는 이런 선비의 기상과 정신의 상징이다. 또 여기에 연꽃, 파초, 소나무 등이 더해져 십군자가 되기도 한다. “제 의문은 왜 문인화에 사람이 없냐는 거예요. 늘 계절식물만 있고. 저는 현대에 맞게 사람이 주가 되는 작업을 하고 싶어요. 대부분 도시에 사는 요즘은 온통 보이는 게 사람이잖아요. 일상에서 매난국죽을 찾긴 힘들죠. 인사동이나 나오면 모를까. 문인화를 하는 작가들과 가끔 토론을 하는데, 그들의 주장은 2~30년간 난만 그려야 한다는 거예요. 소위 난 농사만 지어도 힘든데 어떻게 감히 인물을 그리느냐는 거죠. 하지만 그렇게 계속 기술적인 것을 연마하는 것이 반드시 예술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구한말 흥선대원군은 난 그림으로 일세를 풍미했지만, 조선의 몰락과 더불어 문인화의 기반 역시 빠르게 붕괴했다. 하지만 한자를 모르고 또 한문을 모르는 요즘 사람들에게 문인화란 너무 먼 이야기다. 그림을 봐도 그 안의 시나 배경이 되는 고전을 알지 못하기에. 한편 마릴린 먼로가 상징하는 의미는 광대하다. 전시장에서 본 그의 먼로는 한 마디로 “더 이상 섹스심벌을 거부한다”고 할 수 있었다. 철저히 할리우드와 미국 사회에서 성적 이미지로 소비되다, 훗날 자아를 찾아서 나선 여배우에 언제부터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을까.
“2011년부터 그리기 시작했지만, 사실 그 계기는 어린 시절이었어요. 작업을 위해 어린 시절 영향을 받았던 것을 기억 속에 하나씩 끄집어내다 보니. 먼로 사진이 떠오르더군요. 골든 드림(Golden Dream) 누드사진이었죠. 붉은 벨벳 위에 먼로가 누드로 허리를 뒤로 확 꺾고 있는 컷이에요. 중학교 때 친구가 미국으로 이민을 가자마자, 잡지에서 충격을 받고는 제게 보내줬어요. 그걸 굉장히 오래 갖고 있었어요. 유명한 여자가 헐벗은 사진에 놀란 거죠. 그 기억이 문득 들어서 바로 그날 먼로를 그렸거든요. 이후에는 더 연구를 해야지 하고 책을 읽어봤죠. 그런데 찾아보니 제가 알던 먼로가 아닌 거예요. 그 동안 섹스심벌 같은 너무나 피상적인 부분만 봤구나 싶더군요” 1953년 작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에서 먼로는 이른바 “백치 금발미인”의 이미지의 대명사가 된 후, ‘백만장자와 결혼하는 방법’, ‘7년만의 외출’ 등의 영화에 출연하며 세계를 대표하는 섹스심벌이 됐다. 큰 가슴과 하얀 피부를 자랑하는 육감적인 백치의 금발미인. 하지만 먼로의 누드를 그린 그의 작품은 하나도 야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만화가 김성한의 고바우 영감처럼, 그의 먼로는 해학적이면서 동시에 외면이 아닌 내면을 보이려는 의도가 느껴졌다.
“제가 먼로의 본 모습을 대변해준다고는 생각 안 해요. 대신 사람들이 먼로를 통해서 자기가 그리워하고 보고 싶은 인물을 떠올리길 바라죠. 전 이 사람이 상징하는 어마어마하고 무시무시한 영향력에 매료되진 않았어요”
2011년 미셸 윌리엄스가 열연한 영화 ‘마릴린 먼로와 함께한 일주일’을 보면, 독선생까지 따라 붙은 먼로는 진정한 연기자가 되기 위해 애를 쓰지만 주변의 평가는 냉랭하기만 하다. 단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꼭두각시이자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만 같은 연약한 성격으로 그려졌으니까. 하지만 영화가 중반에 접어들며 먼로는 몸에 붙는 검은 반팔 스웨터처럼 그렇게 당당히 자신을 찾아 나선다. “이 여자가 완벽한 인간은 아니죠. 그런데 우리도 그렇잖아요. 더욱이 연기자나 저처럼 작품을 만드는 사람들이 어떻게 관객에 반응에 태연할 수 있겠어요. 그러니까 계속 미치겠는 거죠. 최근 제가 즐겨보는 미국드라마가 있는데, 거기 보면 잘 사는 집이건 못 사는 집이건 그림이 걸려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카페나 와야 그림이 있죠. 요즘 우리 영화 산업도 굉장히 발전했잖아요. 더불어 순수미술도 같이 고무됐으면 좋겠어요. 그게 만연한 명품을 추종하는 분위기 대신 진정한 문화선진국의 지표겠죠”
전시장을 찾는 사람 중에 연세가 지긋한 분들은 종종 작가에게 “색을 더 넣어보라”는 말을 건넨다고 한다. 아마도 이는 그들이 먼로에게 가진 화려한 느낌과 연관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지금 작업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다고 했다. 또 동양인이고 한국인이라는 작가의 정체성이, 국적 없는 화려한 색채 속에 묻히지 않을까 염려가 된다고 했다. 한편 그는 다음 작업으로 그리스 신화를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간결한 그리스 점토의 선에서 문인화의 정신을, 또 인간적인 신화를 빌어 우리의 삶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주경숙은 사람이 주제가 되는 문인화를 꿈꾼다. 화려한 금발이 아닌 원래 갈색머리를 가진 마릴린 먼로처럼.
[매경닷컴 MK패션 차평철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 주경숙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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