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 룩? 너희가 진짜 ‘밀덕’을 아느냐” DMZ 윤현진 대표 [인터뷰]
입력 2013. 04.02. 14:17:42
[매경닷컴 MK패션 차평철 기자] ‘밀덕’을 아는가? 기독교 신자라면 오병이어(五餠二魚), 즉 다섯 개의 밀떡과 두 개의 물고기로 예수님이 수천 명의 사람을 먹여 살렸던 기적을 떠올릴지 모른다. 하지만 ‘밀덕’은 ‘밀리터리(군사) 오타쿠’의 줄임말로, 전쟁이나 무기에 관심이 많은 이들을 부르는 신조어다. 하지만 일반인들에게 ‘밀덕’의 대화는 너무 심오하고 전문적이다. 러시아제 탱크 번호나 이스라엘의 총기류보다는, 오히려 홈쇼핑에서 워치콘의 경보발령처럼 밀리터리 점퍼의 제품 모델과 수량을 부르짖는 상품안내자가 친숙하니까.
하지만 예비군복만 입으면 길가에 침을 뱉고 상스러워진다는 남자들에게, 밀리터리는 엄연한 과거이거나 곧 맞닥뜨릴 현실이다. 군복무시절 칼 같은 각을 잡은 군복에 러닝셔츠를 찢어 두건으로 맸다는 구준엽이나, ‘태양을 피하는 방법’으로 월남에 다녀온 삼촌들에게 라이방(Ray Ban)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 비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한편 후배들 사이 군복을 입고 건들거리는 복학생과, ‘할리우드 스타일’로 당당히 밀리터리 재킷을 입고 간절기를 누비는 여대생을 헤치고 이태원 ‘밀덕’의 본고장 DMZ 윤현진 대표를 만났다.
“이곳은 17년 됐어요. 96년부터 이 건물 밑에서 했죠. 그때는 평상복도 하고 군복도 했는데, 2000년 건물 위로 올라오면서 밀리터리만 다뤘죠. 우리 같은 경우는 마니아나 취향에 따라서 찾는 분들이 많아요. 팔십 먹은 노인도 예전 추억에 이끌려 찾는 분이 있고 또 젊은 분들은 취향 때문에 오죠. 이런 옷이나 가방이 흔치 않잖아요. 희귀하고 또 남보다 특이한 걸 갖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이 와요”
벽면 한쪽에는 ‘가게 오신 분’의 명단이 있었다. 비, 데프콘, 차승원, 구준엽, 최민수, 빅뱅, 송일국. 심지어는 산에 가기 위해 장비를 사러 왔다는 나훈아와 전유성 그리고 이무송과 노사연의 이름도 보였다. 밀리터리 룩을 넘어, 연예 사병과 일반병 또 직업과 성별 그리고 나이를 떠나 진짜 군용(軍用) 제품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군용으로 나왔지만 보기에도 탄탄하고 경제성이 있고요 또 이런 견고함은 일반물건과 차원이 달라요. 50~60년 된 일반 물건이 지금까지 견디겠어요? 제가 그런 오래된 물건에 감탄하는 건 요즘 물건보다 훨씬 질이 좋기 때문이에요. 60년대 중반부터는 원단에 나일론이나 아크릴 같은 화학제품을 섞어서 제품을 만들었는데, 그전에는 화학재료를 안 쓰고 완전 면 아니면 울을 섞어 썼어요. 요즘은 그런 소재로는 단가를 못 맞추죠. 자연소재로 만든 그때 옷들은 지금 봐도 너무 색이 자연스럽고 물도 예쁘게 빠졌죠. 제가 지금 입은 바지는 51년도 것인데 느낌이나 감각이 아주 뚜렷하고 좋아요. 또 이 상의는 ‘스모르’라는 것인데 아주 편해요. 100% 순면이니까 촉감도 좋고요. 나일론이 들어가면 아무래도 공기의 소통을 막기 때문에 몸이 꿉꿉하던가 땀이 나면 들러붙죠. 하지만 이건 다 흡수하니까 다른 옷과는 비교가 안 돼요” 밀리터리 룩의 가장 인기 있는 제품은 점퍼류다. 더욱이 최근 젊은 여성들은 흔히 ‘야상’(야전 상의)으로 불리는 길고 품이 넉넉한 점퍼를 호리호리한 몸 위로 즐겨 입는다. 윤 대표에 따르면 미군의 경우 군용 의상을 디자인하는 수석디자이너가 70명에 이른다고. 밀리터리 룩은 이런 군용 제품을 기본으로 해서 평상복을 만든 것이다. 그런 최근의 유행에 대해 그는 ‘얼룩이 흰 바지’와 ‘얼룩이 치마’를 찾는 손님들이 종종 있다고 했다.
“밀리터리 룩은 제한돼 있지 않잖아요. 군용을 베이스로 해서 막 디자인을 창조하는 거예요. 그렇게 점퍼 스타일로 입으면 '와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군용을 입기 부담스러운 사람은 밀리터리 룩이 백번 낫죠. 하지만 탄탄함이나 물건을 봐서는 군용을 따라갈 수 없어요. 밀리터리 이슈(military issue)는 군에 지급되는 물건을 말해요. 디자인뿐만이 아니라 실과 원단 모두 인장(引張) 강도 등의 실험을 거쳐 군에 납품한 제품이에요. 모든 게 전시에 이길 수 있게 대응할 수 있는 물건이죠. 그래서 이런 지급품이 오래가는 거죠”
2000년 초반만 해도 이곳을 찾는 여성손님들은 적었다. 하지만 5~6년 전부터 ‘밀리터리 룩’ 열풍이 불면서 진짜 군용을 찾는 강한 여자 손님들이 많이 늘었다고 한다. 다양한 사람들이 입는 군용 제품은 아주 작은 엑스스몰부터 큰 치수까지 모두 갖추고 있다. 여자 손님들은 미제 워커를 그냥 신거나 또 남자들은 못 입는 작은 치수의 티셔츠나 야전 점퍼를 산다. 더욱이 가방을 찾는 경우가 많다며 이제 여자 고객은 ‘밀덕’ 세계에서 무시할 수 없을 만큼 발전했다고 강조했다.
한편 그는 스위스, 스웨덴, 프랑스 등 유럽산 가방을 최고로 꼽았다. 군용품에 가죽을 별로 사용하지 않는 미군과 달리, 유럽 국가들은 두껍고 질 좋은 가죽으로 안감까지 꼼꼼히 꿰맸다고. 예전 드라마 SBS ‘프라하의 연인’에 김주혁이 메고 있던 가방이 바로 50~60년대 만들어진 스위스제 군용가방이었다.
“이 스웨덴 가방은 제가 손을 본 거에요. 이 윗부분과 어깨에 거는 줄도 직접 꿰맨 거고요. 옛 물건이지만 세월이 흘렀어도 강도가 세서 늘 감탄하죠. 그래서 저는 이런 옛 진품을 좋아해요. 이건 프랑스 가방인데 여기 줄을 보면 가방에 진짜 이중으로 두꺼운 가죽을 꿰매고 그 위에 또 징을 박았어요. 원래는 찌그러져 있었지만 플라스틱 솔로 닦고, 또 가죽은 뜨거운 물로 각을 잡은 거에요. 이런 제품을 다루려면 물건을 딱 보고 어떻게 해야 할지 알아야 해요”
1951년 한국전쟁 중 국민방위군 고위 장교들이 국고와 군수물자를 착복해, 그해 겨울 약 9만에서 12만 명에 이르는 사망자가 발생하는 비극이 일어났다. 한편 한국전쟁 후 하층민이 모여 살던 청계천 근처에는 군복에 검은 물을 들여 동대문에 넘기는, 펄펄 끓는 ‘도라무통’(드럼통)이 즐비했다. 이처럼 미군 꿀꿀이죽을 짬밥 통에 끓여 먹었던 데서 유래한 ‘부대찌개’나 지금도 군과 작업실 등에서 애용되는 ‘깔깔이’는 이런 어려웠던 시절에 대한 우리의 방증이다. “이 미군 군용 내피는 면하고 울을 짜서 만든 거예요. 6·25 끝나고 이런 부대에서 나온 게 까슬까슬하대서 지금의 ‘깔깔이’가 된 거죠. 사실 우리 군대에서 쓰는 깔깔이는 싸구려 재질이에요. 울로 된 건 지금 구할 수도 없고요. 또 옛날 미군 제품에는 모자에 코요테 털을 집어넣은 파카가 있어요. 그런데 코요테가 뭔지도 모르고 다 개털같이 보이니까 사람들이 ‘개 파카’라고 불렸죠. 지금 제가 상의로 입은 ‘스모르’ 같은 것도 한국전쟁 때 우리 워낙 못 먹고 못 살아서 체격이 조그마니까, 스몰(small) 치수가 다 맞았던 거에요. 그런데 왜정 때 해방되고 10년밖에 안 됐으니까 이걸 제품명으로 알고는 모두 ‘스모르’라고 불렀던 거죠. 또 해병대에서 나온 야전 상의는 ‘시오리 잠바’라고 했어요. 지금도 노인들은 그때 ‘시오리 잠바’가 질기고 좋았다고 그러죠”
동족상잔 끝의 가난한 국민에게 검은 물을 들인 미제 군복은 집안 빽이 좋다는 증거이자 부의 상징이었다. 이런 세월을 거쳐 이제 밀리터리 룩은 하나의 패션이 됐다. 한편 그는 강한 느낌의 ‘얼룩이’보다는 단색인 ‘국방색’이 다른 옷과 입기 훨씬 좋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얼룩 군복에 익숙한 요즘 세대에게 예전 군복을 부르던 ‘국방색’은 낯설기만 하다. 그러나 그는 최근 인터넷을 통해 부쩍 가게를 찾는 젊은 층을 보며 사명감을 느낀다고 했다. 좋은 물건을 보면 돈이 없어도 외상으로라도 사고 본다는 그의 밀리터리 사랑은 단단한 팔뚝처럼 끈기와 열정으로 뭉쳐있었다. 80년 된 탄띠부터 1930~40년도 제품까지 갖춰진 이태원 DMZ. 돈을 떠나 진짜 군용을 팔아야 기분이 좋다는 그는, ‘밀리터리 이슈’ 즉 우리 시대의 진정한 ‘밀덕’이었다.
[매경닷컴 MK패션 차평철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 진연수 기자, SBS 방송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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