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폭은 술을 사랑하지 않아서 생기는 일이에요" 농촌진흥청 전통주홍보대사 이현주 [인터뷰]
입력 2013. 04.05. 12:09:58
[매경닷컴 MK패션 차평철 기자] 우리 술의 역사는 언제 시작됐을까? 굳이 성경을 들춰보지 않더라도 인류가 탄생한 이래 술은 음식과 함께 우리와 늘 함께했다. 더욱이 우리나라의 경우, 고구려 건국신화에 이런 술과 관련한 이야기가 얽혀있다. 강을 다스리는 신 하백의 세 딸 유화, 훤화, 위화가 더위를 피해 청하(압록강)의 웅심연에서 놀고 있었다. 이때 하늘의 아들 해모수가 연못 안 세 처녀의 아름다운 모습에 취해 이들을 유인해 술을 마셨고, 집에 가지 못한 유화에게 주몽이 태어나 훗날 고구려가 건국됐다.
지난 4월 2일 이태원에서 열린 조선 3대 명주(名酒)인 감홍로, 이강주, 죽력고 행사는 비록 규모는 작지만 우리 전통주에 대한 친밀감을 높이는 의미 있는 자리였다. 그리고 그 가운데 전통주 소믈리에이자 농촌진흥청 전통주 홍보대사인 이현주를 만날 수 있었다.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 놀’이라는 박목월의 시처럼 조선은 팔도강산 방방곡곡 빚어지는 가양주(家釀酒)로 가득 찬 곳이었다. 하지만 1919년 일제시대에 술을 만들려면 자가면허를 신청해야 하는 ‘주세법’이 생겨 타격을 받았다. 1933년에는 이런 자가면허 제조도 없어지고,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던 우리 가양주 문화는 큰 위기에 빠졌다. 이후 1960년대 쌀로 술을 못 빚게 된 양곡정책으로 우리 전통주와 술 문화는 사실상 초토화됐다. 그리고 50년 뒤, 희석식 소주와 아스팜탄이 들어간 막걸리만이 50년 넘게 ‘우리 술’로 자리 잡았다.
이현주 전통주 소믈리에가 말하는 우리나라 술은 주세법상 세 가지다. 첫째 양조주(釀造酒)는 곡류나 과실류를 가지고 효모나 누룩을 섞어 발효나 살균을 시킨 술로, 포도주나 맥주 막걸리나 백세주 같은 약주가 대표적이다. 둘째 증류주(蒸溜酒)는 일단 발효주를 만든 다음 현대 증류기나 옛 소줏고리로 1~3번 정도 증류시킨 것을 말한다. 셋째 혼성주(混成酒)는 양조주나 증류주에 각종 부재료를 넣은 것으로 흔히 리큐르(Liqueur)로 불린다.
와인의 가격과 품질을 결정하는 것이 떼루아(Terroir), 즉 포도밭의 토양이나 포도 품종인 것처럼. 그는 우리나라 술의 성격은 ‘누룩’과 물 그리고 장인정신으로 결정된다고 한다. 더욱이 누룩은 술의 뼈이자 혼이라며 강조했다. 누룩 안에는 곰팡이가 있고 이를 통해, 전분을 당으로 만들어 분해한 뒤, 효모를 통해 알코올이 발효된다. 흔히 일본의 입국(粒麴)과 비교되는 누룩은 입국과 달리, 효소와 효모를 동시에 다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또 집집이 사는 곰팡이가 다르기에, 소위 그 집에 어떤 곰팡이가 사느냐에 따라 술맛이 결정된다고 한다. 따라서 같은 재료로 각자 술을 빚어도, 심지어 똑같은 누룩으로 함께 빚어도 술맛이 다르다고. 이는 술을 만드는 사람이 얼마나 힘을 주며, 또 몸에 어떤 기운이 있는지 그리고 어떤 생각으로 빚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조선 시대 3대 명주 외에도, 그는 국가에서 지정한 국가지정무형문화재인 문배주, 면천 두견주, 경주 교동법주를 소개했다. 더욱이 1990년대 초반 남북교류 당시 연형묵 북한 정무원 총리가 마시고 취한 것으로 유명한 문배주는 작고한 이경찬 명인이 조와 찰수수를 이용해 만든 뒤 1번 증류해서 탄생한 술로, 당분이 많고 차진 술에 야생 토종 배인 ‘문배’ 향이 나기에 ‘문배주’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편 우리나라 전통 증류주의 기원인 소주가 전래한 것은, 고려 중종 때 몽고인의 침입을 통해서다. 따라서 그들이 주둔하던, 평양과 개성, 안동, 진도 등지에는 각각의 소주가 발전했다. 평양에서 많이 만들어진 감홍로의 경우, 초원에서 온 몽고인들이 견디지 못한 우리 풍토병 때문에 8가지 한약재를 넣은 것이 아닐까 하고 추측한다.
더욱이 그는 최근 불고 있는 주폭(酒暴)의 단속 원인이 엉뚱하게 술로 지목되는 것에 문제를 제기했다. 주폭은 술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술의 소중함과 제대로 된 음주 문화를 즐기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다는 것이다. 게다가 싸고 쉽게 접할 수 있는 희석식 소주가 아닌, 우리 전통 증류주는 벌컥벌컥 들이키려 해도 값이 비싸 그럴 수 없다고 했다. 또 한 방울의 술을 만들기 위해 들어가는 정성을 안다면, 그렇게 함부로 마실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이를 위해 그는 가양주(家釀酒) 문화가 부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집에서 술을 어떻게 빚는지 봐야 술의 소중함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비만이 문제라는 건 다 알지만 밥을 먹지 말라고 할 수 없듯, 주폭은 단순히 술을 먹지 말라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술을 잘 먹고 문화적으로 즐길 수 있는지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012년 8월 가수 아유미가 사케 소믈리에 자격증 취득이 화제가 됐다. 일찍이 가양주 문화가 협회 차원의 양조장 중심으로 바뀐 일본 역시 한때 자국의 전통주가 큰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초밥 등 일본 음식이 외국에서 인기를 얻으며 현재 일본 사케는 외국소비와 맞물려 자국소비 또한 부활에 성공했다. 새해에 일본에 머물던 그는 양조장 앞에 늘어선 사람들을 보고 놀랐다고 한다. 종이컵 하나에 200엔 정도 하는 새 술을 마시기 위해, 양조장 앞에 최소 30분에서 1시간 동안 서 있던 젊은 연인들의 모습에서 부러움을 느낀 것이다.
따라서 그는 최근 K-POP을 중심으로 하는 우리 문화 역시, 결국 우리 술이 함께 진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외국인들이 궁금해하는 우리 술에 대한 대답이 단지 희석식 소주와 막걸리뿐이라는 것은, 진정한 우리 문화에 대한 이해가 없는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이다. 앞으로 다양한 우리 전통주를 모아서 많은 사람이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그는, 그렇게 우리 술에 대한 열정과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매경닷컴 MK패션 차평철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 진연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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