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맑고 총명한 눈빛을 가진 사람이 좋아요” 낸시랭의 패션 철학[인터뷰]
- 입력 2013. 04.07. 19:28:01
- [매경닷컴 MK패션 차평철 기자] 지난 4월 3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있는 ‘TV12 갤러리’에서 낸시랭을 만났다. 3월 14일 저녁 6시에 열린 그의 개인전 ‘낸시랭과 강남친구들’에는 지인이나 미술계 관계자보다 더 많은 취재진이 몰려 최근 그에 대한 높은 사회적인 관심을 느낄 수 있었다. 한편 다시 찾은 갤러리에는 개그맨 김영철과 그가 진행하는 라디오 팀들이 함께해 1년 넘게 출연했던 그와 친분을 과시했다.낸시랭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다. 아니 불과 얼마 전 정치적인 퍼포먼스나 발언을 시작하기 전까지, 엄밀히 말해 일반적인 안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그런 흉흉한 분위기 속에서도, 그는 다양한 활동과 함께 ‘비키니 입은 현대미술’과 자서전 ‘난 시랭할거야’를 썼고, 또 최근에는 소설가 소재원과 함께 ‘아름다운 청춘’을 펴냈다. 이처럼 그가 벌인 많은 일과 최근의 논란을 살펴보던 중, 문득 그의 화장이나 머리 모양에 따라 활동 시기가 나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대중들에게는 낸시랭은 팝 아티스트로서 화장기 없는 단발머리 여인과 최근 화려한 패션으로 늘 뉴스에 오르내리는 두 모습으로 인식될지 모르겠다.
“예전에는 민낯에 단발머리였어요. 한 8~10년 정도 오래 했죠. 그러다 최근 변희재 씨와 논란일 때는, 눈도 진하게 또 빨란 립스틱으로 화장하고 또 머리도 길러서 웨이브를 하고 있어요. 어릴 때는 단발머리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고 편했어요. 미용실에 안 가도 말리기도 편하고요. 또 앳돼 보이고요. 그리고 제가 쌍꺼풀이 있거나 입체적인 얼굴이 아니라, 동양적인 스타일이라서, 특별히 메이크업이 쉽지는 않았어요. 눈이 부어 보인다든지. 속 쌍꺼풀도 없고 그러니까요. 머리를 기르기 전까지 종종 가발도 쓰고 붙임 머리도 해 봤어요. 퍼포먼스 작업 때문에도 그렇고 다른 머리를 추구하고 싶어서. 그런데 가발은 역시 티가 너무 나더라고요. 또 방송 녹화를 하면, '강심장'이나 '스타킹'은 거의 12시간을 하는데, 머리가 조여서 힘들더라고요. 원래 머리띠를 오래 해도 머리가 아프니까요. 긴 생머리를 오랫동안 고수했어요. 필리핀 마닐라에서 국제학교 다닐 때까지. 그러다 대학 들어와서 샤기컷으로 조금씩 자르다 보니 단발이 된 거에요. 그러다 30대가 되면서 머리를 길러보자고 생각했어요. 앞으로 제가 하고 싶은 머리는 뒤는 긴데 앞은 단발인 그렇게 다양하게 연출할 수 있는 모양을 하고 싶어요”
옷 구두 백, 화장과 헤어스타일 등 그는 패션을 좋아한다. 2005년 갤러리 쌈지에서 기획초대전을 열었던 그는, 당시 쌈지 천호균 대표에게 발탁돼 쌈지 광고모델과 아트디렉터 등을 맡아, 옷, 구두, 가방 등을 협업해 내놓았다. 2006년 청담동 트라이베카에서 연 그의 패션쇼는 싸이와 SES 유진 그리고 디자이너 이상봉 등이 참석해 뜨거운 앙코르를 받았다고 한다. 예전 국민일보 전면에 지금은 친구로 지내는 동갑내기 이효리와 패셔니스타로 소개됐음을 밝히는 그는, 란제리 마니아라고 밝힐 만큼 패션 이곳저곳에 신경을 많이 쓴다.
“제가 가슴 발달이 중학교 때부터 좀 빨라서요. 그때는 막 창피해서 수그리고 다녔어요. 그런데 엄마는 제 등을 팍팍 치면서 굉장히 혼내셨어요. 애가 이상해 보인다고. 사람이 당당해야지 바보같이 자신감 없어 보인다고요. 하지만 남자애들이 우 하는 게 창피했던 제게 그 말이 귀에 들어오나요. 이후에 필리핀 마닐라로 가게 됐는데, 거기는 더 큰 애들도 있고 해서 엄마 말처럼 허리를 펴고 다녔어요. 오히려 자랑이더라고요. 외국 애들이라고 다 가슴이 큰 게 아니더라고요. 그러니 란제리도 더 관심을 두게 됐고요. 패션도 처음에는 겉모습에 치중하지만, 나중에는 안도 생각하게 되거든요. 보이지 않는 곳이지만 저만의 자부심인 거죠. 그래서 지금도 신경을 많이 쓰고, 또 자기만족인 것 같아요”
한편 대학 시절부터 줄곧 하이힐을 신었던 그는, 어린 시절 사업으로 바쁜 부모 밑에서 독학으로 패션에 눈을 떴다.
“초등학교 때는 부모님께서 바쁘셔서, 혼자 가까운 압구정 현대백화점에 가서 아동복을 사곤 했어요. 당시 베베프랑스와즈는 애들이 입는 분위기가 아니었지만, 검은색이나 반짝이 또 금색 장식 등 아동복으로 보이지 않는 디자인과 색깔을 계절별로 내놓았어요. 또 가격도 어른 기성복과 거의 같았고요. 또 김민제 아동복 같은 경우는 그나마 모범적이면서 고급스러운 느낌이었죠. 또 초등학교 때부터 외국에 혼자 나가서 많이 사왔어요. 부모님께서 바쁘셔서 함께 가시지는 못하고 카드나 현찰을 주셨으니까요”
대학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정장을 입기 시작한 그는, 국내 제품으로 ‘타임’을 많이 입었다고 한다. 아니면 아르마니와 같은 이탈리아 제품을 찾았다고. 한편 전시 시작 첫날 은색 장식이 인상적인 검은색 돌체앤가바나 재킷을 입었던 그는, 화려한 금색 장식이 인상적인 검은색 재킷을 입고 있었다.
“지난번 재킷이나 제가 오늘 입은 이브 생로랑은 다 수공이기 때문에 가격이 많이 나가요. 랑방은 너무 비싸죠. 거의 700~900만 원 정도 하니까. 하지만 이런 스타일은 작년과 올 시즌 디자이너들의 유행이에요. 가방도 그렇고 포인트가 되는 게 많아서, 조심조심 입어야 하고 대신 손질이 힘들죠”
한쪽 다리를 들고 있는 그의 대표적인 자세에서 늘 빠지지 않는 것은 바로 하이힐이다. 심지어 몇 년 전 한 미술관에서 테니스를 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인 그는 굽 높은 하이힐을 신고 있었다. 그는 하이힐을 설명하며 직접 좋은 걸음걸이의 시범까지 보였다.
“하이힐은 고등학교 때부터 저와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다리도 예뻐 보이고요. 2006년 삼청동 금호미술관에서 여러 작가가 참여한 한국팝아트전을 열었어요. 그때 제가 평면 ‘터부 요기니’ 작품을 선보이면서, ‘Swinger’란 이름의 퍼포먼스도 함께 했어요. 저는 하이힐과 특히 킬힐을 사랑해요. 15cm짜리 킬힐도 있는데 그건 너무 힘들고요. 저는 12~13cm 힐을 제일 많이 신어요. 특히 자세가 중요한 것 같아요. 어깨를 펴면 척추와 허리는 자연히 곧아져요. 또 걸을 때 자신감 있게 걸어줘야 해요. 또 힐이 발에 맞아서 아프지 않아야 하고요. 전 마놀로 블라닉은 없어요. 이유는 바닥은 얇은데 신발이 너무 높고요, 발은 관능적이지만 대체로 감당하기가 어렵죠. 그래서 누구나 고통을 참고 신을 거예요. 멋지게 보이기 위해서. 저는 이브 생로랑의 구두를 좋아해요. 일단 힐이 굉장히 높고요. 다리를 예쁘게 하고, 많은 할리우드 유명인들이 이용하고 있어요. 저는 검은색 빨간색 또 호피도 있고요. 또 이브 생로랑에서 못 구한 건 제가 똑같이 만들어 달라고 주문제작을 하는 데가 있어요” 얼마 전 종영한 '청담동 앨리스'에서는, "럭셔리란 단지 명품으로 휘감는 게 아니라 자기만의 취향과 또 철학이다"라는 대사가 등장했다. 그의 책을 읽다 보면 마릴린 맨슨의 전 부인인 ‘디타 본 티즈’를 인터뷰하며, 루이뷔통 가방 밑에다 사인해달라고 하자 상대방이 놀랐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20대 시절 대나무로 손잡이 등이 장식된 구찌 가방이 있었는데. 제가 메이크업 제품 중 스틱 펄 제품으로 낸시랭이라고 쓰고 하트를 그리고 다녔어요. 다들 놀라워했죠. 많은 분이 명품을 비싸니까, 조심히 들고 싶어하지만 저는 그렇게까지 아끼면서 쓰고 싶지는 않아요. 대신 제가 좋아하면 다른 걸 줄이는 거죠. 요즘은 중고 가게들이 많아져서 시즌 지나면 창피하다고 팔고 하는데, 대신 저는 그런 건 없어요.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보다 제가 마음에 들어서 사서 드는 거거든요. 그럼 거기다 작업도 하는 거죠. 사인이나 액세서리를 달 수도 있고요. 또 보세도 좋아해서 인터넷 쇼핑몰도 이용하고요. 압구정동 로데오거리에 가게들이 많잖아요. 다들 잘 구매해서 개성 있게 꾸며놨어요. 그런 곳 중 제 취향이 맞는 곳에 가서 여러 가지를 사죠”
2012년 팔레드 서울에서 당시 안철수와 박근혜 후보 등을 그린 ‘내정간섭’ 전시가 열렸다. 그리고 세계적인 독재자와 기업의 총수 그리고 예수와 부처가 있는 이번 전시는 그의 ‘외정간섭’이라 불릴 만했다. 미술계 내에서 팝아티스트 혹은 정치적 영역을 건드리는 퍼포먼스 작가로 불리는 그는, 지난 3월 26일 전두환 풍자화를 붙여 재판을 받는 이하 작가를 위해 게릴라 퍼포먼스를 벌였다.
“이하 작가라는 팝 아티스트는 개인적으로는 모르는데, 단지 범칙금으로 10만 원을 내는 건 어렵지 않지만 이런 퍼포먼스를 통해서 예술의 정의와 민주주의의 패러다임이 바뀐다고 생각했어요. 한편 사회 정화도 되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죠. 얼마 전 흥행한 '26년'이란 웹툰과 영화처럼, 전두환 씨는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는 분이잖아요. 사소한 부분일 수 있지만, 정의 실현을 위해서 지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한 거에요”
정치성향을 묻는 말에 스스로 어느 쪽도 아니라고 말하는 그는, 일반 대중들처럼 잘하는 쪽을 지지하는 것뿐이라고 설명했다. 어느 편이든 지질한 게 싫다고 말하는 그는, 정치가 자신의 밥그릇을 챙기고, 권력을 잡는 것에 혈안이 되는게 문제 아니냐고 말했다. 한편 미술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대중들에게 그는 여전히 작가인지 혹은 연예인인지 불명확한 위치에 놓여있다.
“제가 뭐하는 사람이냐는 질문은 거의 10년째 듣고 있어요. 저는 한 문장으로 국내 최초로 선보이는 연예인형 아티스트에요. 소방차가 활동하던 시절만 해도, 가수는 노래만 하고 배우는 연기만 해야 했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다양한 활동을 하지 않으면, 대중들이 봐주지도 않는 상황이에요. 최근 우리나라 연예산업이 발전하고, 또 이 때문에 국위 선양을 하고 있잖아요. 또 미디어가 반복해서 보여주고요. 하지만 미술이나 음악 무용 같은 문화예술은 여전히 거리감이 있다 보니, 대중들이 받아들이는 다양성의 인식이 부족한 것 같아요. 저에 대한 논란은 거기서 나는 오류라고 봐요”
하지만 그의 정체가 모호하다는 논란은 어쩌면 부드러운 표현일 것이다. 심하게는 뜨기 위해서 예술을 이용한다는 날 선 지적도 접할 수 있다. 더욱이 그가 그린 평면 작업보다 최근 등장한 여러 퍼포먼스는, 작품을 위해서라기보다 단지 대중에게 더 노출되려는 화제성 행동이라는 평가가 있다. 그냥 유명해지기 위해서 예술을 이용한다는 혐의가 그것이다.
“현대미술은 정답이 없어요. 뒤샹이 변기를 샘이라 칭하면서 더 어려워졌죠. 유명해지고 싶어서 작품을 한다고 인식하든, 또 작품이 좋아서 유명해졌든 결론은 같아요. 제가 여러 자리나 또 강연 때마다 항상 이야기해온 것은, ‘자기 자신이 되세요’와 ‘꿈을 향해 나아가세요’란 거에요. 우리나라가 여전히 유교사상이나 보수적인 분위기 탓인지, 내 삶이 아닌 남들의 삶을 사는 경우가 많잖아요. 내 부모가 바라는 삶. 잘 나가는 친구나 직장동료처럼 스펙 좋은 삶. 또는 친구 남편 또는 친구 부인의 삶 등이 그렇죠. 내가 사실 화려한 돌체앤가바나가 좋은데, 에르메스는 조금 노티 나서 안 좋아하는데, 이걸 들어야 사람들이 대우해 줘서 든다고나 할까요. 남들에게 비치는 모습이 자기라고 하는, 온전한 자기 자신을 못 펼치는 것 같아요. 저는 항상 낸시랭이었을 뿐이에요. 또 범람하는 인터넷과 각종 매체에서 자극적인 제목과 캡처된 사진으로 도배된 글. 또 앞뒤 가 다 잘린 오류가 있는 것을 대강 클릭 수를 올리기 위해서 올린달지. 그렇게 대중들이 잘못된 사실을 받아들이기 쉬우니까 저를 욕할 수 있겠죠. 그러니 네티즌보다 인터넷 시대 달라진 미디어의 영향이 크다고 봐요”
2012년 그는 랭샵의 대표이사로 머리카락보호 사업을 시작했다. 외국 제품 중 우리나라 여성들도 써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공식 수입 업체로서 판매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이렇듯 작업과 방송 외에도 다양한 일을 벌여온 그의 책에는 늘 “사랑은 어렵다”는 표현이 등장한다. 그런 그에게 사랑과 우리 여성들이 자주 꼽는 남자에 대한 ‘존경’에 대해 물었다.
“제 이상형은 뇌가 매력적인 위트와 유머가 넘치는 남자예요. 또 인류애적인 마음을 가졌으면 해요. 또 제가 존경할 수 있어야 해요. 또 근래 남자들에게 마초적인 맥락이 없어졌잖아요. 요즘 젊은 남자들도 일 안 하는 여자와는 결혼 안 한다고 하고, 또 초식남도 나오고, 비비크림을 바르는 사람도 많고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클라크 게이블 만큼은 바라지도 않지만, 전반적으로 여자에게 의지하려는 분위기가 높으면 존경심이 사라질 수 있겠죠. 여자는 애도 낳고 육아도 해야 하는데, 남자는 일만 하면 되잖아요. 남편이란 여자가 자식을 낳아도 존경할 수 있는, 마음속으로 막대하지 않고 무시하지 않는다는 뜻이 제일 가까운 것 같아요. 돈 많은 분 중에 제게 사귀자는 분도 있었고 또 결혼까지 갈 뻔한 적도 있었어요. 예전에 사귄 오빠는 부모님 빌딩이 몇 개나 있었죠. 상견례까지 했는데 저희 어머니가 말리셨어요. 마마보이라서 안 된다는 거였죠. 그때 집이 망하고 엄마가 아픈 와중인데도 그러셨어요. 말아먹는 건 얼마든지 쉽잖아요? 대신 그 사람 능력이 있어서 일군 거라면 존경스럽죠. 하지만 자기 게 아닌 어디 아들이라면 어렵겠죠”
그는 음흉함이 섞여도 상관없지만 맑고 총명한 눈빛을 가진 사람이 좋다고 말했다. 24시간 총총한 눈빛을 유지하는 것은 어렵지만, 아무 느낌 없는 건조한 눈빛은 싫다는 것. 그가 생각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표정도 별로 없지만, 그런 눈동자를 지닌 이 역시 만나기 쉽지 않다고 했다. 더욱이 동성 간에도 차림새를 훑어보며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는 건 반대한다는 그에게, 인터뷰가 끝날 무렵 멋지게 차려입은 한 남자배우가 응원을 보내기 위해 갤러리로 들어섰다.
[매경닷컴 MK패션 차평철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 송선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