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래머 스타의 교과서 ‘애마부인’ 안소영의 주홍글씨 [사진작가 김상근의 시간여행 (20)]
- 입력 2013. 04.09. 13:51:27
[매경닷컴 MK패션 김지은 기자] 어릴 적 갖고 놀던 ‘미미인형’을 빼닮았다. 빚어놓은 듯한 이목구비, 풍만한 몸매 그리고 핫한 패션까지. 러블리 페이스를 가진 이 배우는 ‘애마 부인’ 안소영이다.
동화 속에 살 것 같은 귀여운 인상과 달리 안소영은 그렇게 에로물의 상징이 된다. 안개 낀 초원, 지금으로 말하면 시스루 패션을 선보이는 한 여성이 말을 타고 거침없이 달린다. 바람에 휘감기는 옷자락은 육감적인 몸매를 들추고, 거침없이 달리는 말의 동력에 풍만한 가슴이 흔들린다. 신인 배우 안소영을 스타로 만들어준 영화 ‘애마부인’에서의 모습이다.이 영화는 1980년대 ‘3S 정책’의 하나로 문화적 잠금장치가 풀리며 탄생했다. 1982년 2월 6일 개봉 당일에는 극장의 유리창이 깨질 정도로 관객이 몰린다. 당대 최고의 육체파 여배우로 안소영은 그 해에만 7편의 영화에 출연하는 전성기를 구가한다. 그가 성에 폐쇄적이었던 한국사회에 에로 영화의 붐을 일으킨 것.
사실 안소영은 에로 배우가 아닌 평범한 연기자를 꿈꿨다. 그는 줄곧 임권택 감독과 함께한 데뷔작 ‘내일 또 내일’(1979)을 내세우며 성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기를 원했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를 잃었던 1980년대 사회는 계속 그를 통해 갈증을 해결하려 들었고, 끝내 첫 이미지를 씻을 수 없게 된다. '애마부인'으로 제18회 백상예술대상 여자 신인연기상을 받은 그는 사회성이 짙은 영화에서도 정사 장면을 찍어야 했고, 세트장 구석에 앉아 대성통곡하는 어린 배우를 모두는 방관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주홍글씨’를 안고 안소영은 미국으로 떠났다. 그는 1990년대 후반 모든 활동을 중단한 채 미국행을 택한 것. 8년 뒤 한국에 온 그는 본연의 꿈을 다시 찾기로 결심, 편안한 주름과 조금 후덕해진 모습으로 연극 무대에 섰다. 최근 한 방송에서 그는 “나는 좋은 출발이 아니었던 것 같다. 아직도 ‘애마부인’이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라며 노출연기를 감행했던 과거를 다시 한번 후회했다.
17세기 보스턴의 청교도 사회에서 간음한 여자에게 새기는 주홍글씨 ‘A’를 새겼다. 이는 수치의 상징이자 인간의 솜씨가 아름답게 발휘된 명품이기도 했다. ‘애마부인’은 말과 함께 있는 여자 연예인에게 붙는 단골 수식어. 배우 안소영에게 이 단어는 주홍글씨지만, 성인 영화계에는 그가 명품을 남긴 셈. 그의 수식어가 지금까지도 마우스 왼쪽 버튼을 누르게 하는 힘이 있듯, 못다 펼친 연기자의 꿈에 뒷심을 발휘하길 기대해 본다.
[매경닷컴 MK패션 김지은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 사진작가 김상근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