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옷을 통해 그린 삶. 화가 강민정의 ‘두고 온 시간’ [인터뷰]
- 입력 2013. 04.10. 17:23:14
- [매경닷컴 MK패션 차평철 기자] 지난 9일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동덕아트갤러리에서 강민정 작가의 ‘두고 온 시간’ 전시가 막을 내렸다. 지하에 있지만 넓은 공간을 가진 전시장에는 코트와 셔츠, 바지와 원피스 등 다양한 옷을 그린 큰 그림들이 고루 걸려 있었다.
“옷 그림은 학부 때부터 연결됐던 것 같아요. 옷이랑 제 원피스와 자화상 그린 걸 연작으로 그렸거든요. 이 작업이 대학원에 와서도 계속되더라고요. 특별히 다른 친구들에 비해서 옷을 좋아한 것은 아니에요. 우연히 작업을 고민하던 밤에, 걸어놓은 옷을 보면서 어쩌면 저 옷이 나 자신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옷의 구겨진 형태라든지 또 어느 날 입었던 기억이나 흔적이 있잖아요. 그렇게 일상에서 겪거나 느낀 것들이 옷에 다 담겨 있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그걸 표현하기 시작했죠”옷이라는 소재를 선택했지만 그는 분명 옷보다 옷 뒤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듯 보였다. 심지어 분명 옷만 그려져 있는 몇몇 작품들은 마치 사람을 그린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편 ‘두고 온 꿈’이라는 연작 중 아래로 늘어진 코트나, 탈환이라는 이름으로 서로 끌어안는 듯 보이는 그림은 마치 우리의 삶을 캔버스에 담고 있는 듯 보였다. 그래서 각각 그림이 가진 의미와 감정이 궁금했다. “조금씩 차이가 있어요. 똑같은 일상 같지만 매일 다르잖아요. 그날 하루 뭘 했는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따라 어떤 날은 기분이 좋거나 또 힘들 때가 있으니까요. 그런 것들이 제 작업에 자연스럽게 연결이 됐던 것 같아요. 저는 어쩌면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감정적인 작업을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날들이 겹치면서 다음이 있고요. 다만 저는 그 안에서 정성을 다할 뿐이죠”
그의 전시에는 여성의 옷뿐 아닌 남자 옷과 또 기성세대의 것으로 보이는 의상도 종종 눈에 띄었다. 한편 전체적으로 이게 과연 누구의 옷인지 한눈에 드러나지 않는 중성적인 느낌도 들었다. 전체적인 톤 또한 단색에 가까워 화려한 색채나 장식을 통해 나이나 성별을 강조하는 것이 아닌, 옷 너머의 인생을 말하려 한다는 느낌이었다.
“처음에는 제 옷만 그렸어요. 하지만 제가 혼자 사는 게 아니고. 결국 주위 사람들과 같이 사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주변 사람들 옷도 그리게 되더라고요. 가령 어떤 옷이 그 친구를 닮았다. 혹은 그 옷이 어떤 느낌을 표현하는데 적절하다고 하면 그걸 빌렸어요. 그래서 그림에는 친구들 옷도 있고 가족들 옷, 또 제가 어릴 때 입던 옷도 있어요. 그 안에는 어떤 특정한 날의 추억과 또 현재도 함께 있다고 생각해요. 작업을 시작했을 때 의사나 경찰 같은 직업이 분명한 옷이나, 노숙자 혹은 여자 속옷을 그리는 것은 어떠냐는 조언도 많았어요. 하지만 결국 제가 표현하고 싶은 주제를 먼저 반영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장지 위에 대부분 옅은 채색이 칠해진 그의 작품은 어쩌면 사진작가나 촬영기사가 찍은 흑백사진이나 흑백영화 같았다. 이에 대해 그는 밤에서 새벽을 향하는 시간대의 느낌을 많이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작가 본인의 생각을 가장 정리하기 좋았던 푸르스름한 새벽빛은 그렇게 고스란히 화폭 위로 노출됐다. 한편 2010년부터 젊은 작가들의 미술축제로 불리는 아시아프(Asian Students and Young Artists Art Festival)에 참가해온 그는 이를 통해 어떤 점을 느꼈을까.
“아시아프는 연령제한이 서른 살 까지지만, 그전까지는 계속 참여하고 싶어요. 더욱이 저는 일반 관람객을 통해서, 내 그림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살필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 교수님들이 말씀해 주시는 것도 좋았지만, 오히려 일반 관람객들이 그림에 대해 더 냉철하고 주관이 뚜렷하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보통은 마음에 드는 그림이 아니면 1, 2초도 잘 안 보세요. 하지만 지나가면서 툭 던지는 말들이 참 의미심장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말을 듣게 되면 여운이 많이 남아요. 그냥 옷이네 하는 분도 있고 잘 그렸다고 말하는 분도 있지만, 가장 인상 깊은 건 아무 말 없이 잠깐 그림 앞에 머무는 모습이었어요” 작은 목소리로 차분히 말을 하는 그의 이야기를 듣다 전시장을 둘러보니, 문득 조선 시대 안국방 근처에서 우연히 어느 서간첩을 펼쳐 본 듯한 기분이 들었다. 평소 말수는 적지만 붓을 들면 자신의 감정을 벼루 가득 풀어놓았던 어느 양반집 규수처럼.
“작업하면서 제 마음이 어디로 가 있는지. 그게 제일 중요한 것 같더라고요. 그걸 잊어버리면 저도 없는 거니까요. 분명히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건 다른 것 같아요. 최근에는 이 둘을 어느 정도 시간을 배분해 끌고 가는지에 따라서, 10년 후 제 모습이 결정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는 앞으로 옷 작업을 통해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싶다고 밝혔다. 또한 폭넓은 경험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의 그림에 공감하기를 바란다는 그에게서, 두고 온 시간이 아닌 앞으로 맞이할 인생을 작업에 담길 기대하는 작가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매경닷컴 MK패션 차평철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 진연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