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아니스트 신지호 ‘패션, 내 음악을 표현하는 도구’ [인터뷰]
- 입력 2013. 04.15. 10:23:21
- [매경닷컴 MK패션 송혜리 기자] "나는 이스마엘이라고 한다"
종이 위 새하얀 정적을 깨트리는 첫 마디.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딕’에 나오는 이슈마엘은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처럼 무리로부터 추방된 ‘유목민’을 상징한다. 게다가 이 소설을 바탕으로 한 액터 뮤지션 뮤지컬 ‘모비딕’ 속 이스마엘 또한 혼자 살아남음이 ‘추방’과도 같은 존재다.“부모도 잃고, 친구도 잃은, 자신의 모든 사람을 잃은 소년의 성장기예요. 이스마엘의 성장을 따라 저도 많이 성장한 작품이었죠. 지금까지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피아니스트 신지호는 2011년부터 흰 고래 ‘모비딕’을 찾아 떠나는 배 위에서 노래하고 피아노를 연주했다. 연극과 뮤지컬의 형식을 완전히 무너트린 ‘액터 뮤지션 뮤지컬’이라는 장르의 성공적인 항해에 그는 혁혁한 공을 세웠다. 매진과 박수갈채가 쏟아졌고, 언론들을 앞 다퉈 이를 소개했다.
공연이 끝나고 꼭 일 년이 된 어느날, 피아니스트, 영화, 연극, 드라마 음악감독, 배우로 창작분야의 경계를 허물며 종횡무진 활동 중인 신지호를 만났다.
피아니스트.
손을 많이 쓰는 직업이라 유독 그의 손에 눈길이 간다. 열손가락 전부에 반지를 끼기도 할 정도로 팔찌와 반지에 유독 애착이 있다는 신지호는 오늘 눈알모양 반지를 중지에 얹고 왔다. 무수한 실핏줄이 눈동자를 무자비하게 당기고 있어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은. ‘개성 있다’고 소문을 듣기는 했었지만 ‘피아니스트’라는 직업이 주는 ‘클래식’한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다 싶다. 그가 멘토로 여기는 사람 역시 형식을 파괴하는 ‘눈알의 대가’였다.
“제게 늘 영감을 주는 사람은 영화감독 팀 버튼이예요. 1집 ‘스페셜 땡스 투’에 고맙다고 쓸 만큼요. 그의 기묘하고, 신비한 분위기의 작품들을 모티프로 그린 그림은 대회에서 상을 받기도 했죠”
사물을 정형화된 형식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관점에서 비틀어 보는 팀 버튼의 작품세계에 반했다고 말하는 그의 눈이 윤기 나게 ‘반짝’했다. ‘팀 버튼 감독의 작품에 음악감독을 맡게 되면 좋아서 기절할 것’이라며 말을 이어갔다.
“사람은 누구나 양면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것을 저는 ‘블랙스완’이라고 부르는데요. 제가 흥미롭게 생각하는 부분은 그 양면성이예요. 팀 버튼은 기분의 좋고 나쁜 높낮이의 편차가 굉장히 큰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 양면성이 그의 창작활동의 기반이 될 거라 생각도 하고요. 저 또한 그 양면성이 예술적 영감이 되기도 해요. 특히 저는 저의 양면성과 예술적 끼를 피아노를 치는 방식이나 공연 때 입는 독특한 옷들로 표면적으로 드러내기도 하죠”
양면성, 그러고 보니 ‘닉쿤 닮은 피아니스트’로 불렸을 정도로 소년처럼 여린 외모와 달리, 건반이 부서질 듯 두드리는 연주법으로 ‘짐승 피아니스트’라는 별명을 얻었다. 게다가 심플한 블랙 수트가 연상되는 피아니스트라는 직업이지만, 신지호는 술이 많이 달린 옷을 입거나 소녀시대의 무대의상을 연상시키는 경찰모자를 쓰고 무대에 오른다. 서로 상반된 것들이 하나가 됐을 때의 ‘부조화 속 참신한 조화의 탄생’을 아는 이 아티스트는 ‘반전과 언밸런스가’ 뒤섞인 대답을 연신 뱉어냈다.
“제 음악을 표현하는 데 패션은 큰 조력자가 돼요. 특히 연주할 때 옷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죠”
다양한 퍼포먼스로 좌중을 압도하는 그이지만 ‘신지호스러운’ 음악을 표현하는 도구로 단연 ‘패션’을 높게 생각한다. 그와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패션으로 이어졌다.
“저 쇼핑 엄청 좋아해서요. 하루 종일 할 수도 있어요(웃음). 패션과 문화에 관심이 유독 많아서 잡지도 많이 보는 편이죠. 빨강색, 워커, 스팽글 진, 셔츠, 원색의 아이템을 즐겨 착용하고요, 특히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옷들을 좋아해요” 팀 버튼과 비비안 웨스트우드라니. 소년 같은 천진난만함과 예술가 특유의 괴짜스런 기질이 공존하는 그의 취향이 100% 전해져 왔다.
“늦은 여름 쯤이면 제 새 앨범을 들으실 수 있을 거예요. 보다 대중적이지만 ‘신지호스러운’ 음악, 패션을 기대해 주세요. 참 올해는 웨이트도 해서 몸짱 피아니스트로 거듭나 볼 계획이에요”
짜여진 틀이 아닌 자신이 쌓아가는 무대에 서 있는 신지호의 모습은 신나 보였다. 경계에 사로잡히기 보다는 스스로가 경계가 되는, 그의 다음 행보가 기대된다.
[매경닷컴 MK패션 송혜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 송선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