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옥정은 조선의 첫 패션 디자이너로서 자격 있나?
입력 2013. 04.16. 08:59:12
[매경닷컴 MK패션 조혜원 기자] 대하사극 위주였던 과거에 비해 로맨스, 판타지 등 퓨전사극의 인기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그에 따라 줄거리나 의상, 생활 습관도 역사 고증보다는 흥미에 맞춰지는 추세. 초반에는 여배우의 목 디스크까지 유발한다는 가채를 벗거나 좀 더 화려한 장신구를 하는 정도였고, 대중들도 이에 호응했다.
하지만 최근 배우 홍수아가 입은 신라시대의 웨딩드레스나 얼마전 공개된 영화 ‘조선미녀삼총사’ 포스터 속의 왜색이 짙은 의상들은 논란을 일으키며 대중들의 등을 돌리게 했다. 네티즌 사이에서는 요즘 사극 의상을 보며 ‘코스프레 같다’, ‘한복 대여점에서 그대로 가져온 느낌’, ‘시대에 맞지 않는 한복 때문에 세트장에서 연기하는 것이 티가 난다’는 말들이 나올 정도다.
이런 논란 속에 김태희의 첫 사극인 SBS ‘장옥정, 사랑에 살다’가 방영됐다. 한복을 입은 김태희가 궁금할 뿐더러 그녀의 역할은 무려 조선시대 패션 디자이너. 김태희가 어떤 의상을 입는지에 주목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드라마 속 김태희는 역시 예뻤고, 그래서 아쉬움을 남겼다. 김태희의 한복은 고운 빛깔과 아기자기한 장식들로 더없이 예뻤지만 우아하고 차분한 옛 궁중 여인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머리 위에는 조선시대에 13세 이하 어린이들만 했던 배씨댕기를 올렸고, 쪽진 머리에는 좌우로 봉잠과 꽃 비녀를 여러개 꽃아 화려하게 장식했다. 왕비만이 봉잠을 할 수 있고 그 외에는 뒤쪽에만 비녀 하나를 단정하게 꽂았던 사실과는 매우 다르다.
당의에도 앞뒤로 수를 놓거나 비대칭으로 커다란 꽃을 그려 넣었다. 조선시대에는 신분에 따라 옷의 색과 문양이 정해져 있을 정도로 의복 예절이 엄격했다. 왕비도 행사 때 외에는 대체로 차분했던 것에 비교하면 서출 출신의 장옥정 한복은 매우 파격적이다. 저고리 없이 치마 위에 당의만 걸친 장면도 있는데, 이는 요즘으로 보면 하의 위에 코트만 걸치는 셈이다.
다른 배우들의 옷도 역사 고증과는 거리가 있다. 왕의 옷에 금실이 아닌 은실 자수가 놓이고, 남자옷들은 화려하면서도 남성성을 강조하는 남성 한복 특유의 무게감을 잃고 단순히 알록달록하고 화려했다. 한국의상협회의 강태경 이사장은 “한복에는 우리만의 문화와 아름다움이 담겨있다. 전통 한복에서도 예쁜 색과 무늬를 다양하게 찾을 수 있는데, 너무 현대적 미에만 맞춰 변형할 필요가 있을까”라며 안타까워했다.
의상 고증을 섬세하게 한 사극을 살펴보면 요즘 사극 속 한복들이 얼마나 역사에서 벗어났는지 한눈에 비교된다. 의상 준비 과정에서 고증에만 3개월을 투자했다는 KBS 드라마 ‘대왕세종’은 의상 고증이 가장 잘 된 사극 중 하나다.
‘대왕세종’은 지금의 짧은 저고리와는 다른 조선 초기의 길고 넓은 저고리를 잘 재현했다. 당의를 입으면서 점차 없어진 장삼의 경우 왕비는 홍색을, 공주와 옹주는 녹색을 입었는데 이런 부분도 세심하게 표현했다. 몽골 의상 분위기가 나서 궁금증을 자아내는 대삼과 칠적관 또한 충실히 재현해 조선초기 명나라의 영향을 많이 받은 시대상을 잘 말해주고 있다.
KBS 드라마 ‘명성황후’도 의상 고증에 힘썼다. 조선시대 왕가 여인들이 예복으로 입던 적의는 왕비, 대왕대비, 세자빈의 옷에 문양의 개수와 색에 차이를 두는데 이를 잘 보여줬다. 또 왕후가 특별한 행사 때 입었던 원삼은 국경일에는 가슴에 두는 자수를 용으로, 보통 경사일 때는 봉황으로 하는 등 섬세한 부분까지 역사에 바탕을 두고 있다. 후궁, 세자빈, 당상관 부인들은 자주색의 자적 원삼을 입었는데, SBS 드라마 ‘여인천하’의 강수연이 신분에 맞지 않게 입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문정왕후의 총애를 받아 높은 귀부인처럼 지냈기 때문이다.
이처럼 옛 사극 중에는 의상 고증에 세세하게 신경을 쓴 예들도 많고 이는 시대적 배경은 물론 역사적 사실, 시대 분위기까지 전달한다. 퓨전 사극에서 역사 고증만을 앞세우는 것은 무리가 있다. 하지만 사람들의 의식에 자연스럽게 다가가는 ‘대중매체’의 영향력을 생각해볼 때 한복을 따로 접할 기회가 없는 요즘 사극 속 한복의 역할이 매우 크다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특히 ‘장옥정, 사랑에 살다’와 같이 실존 인물을 내세운 사극은 그 이름의 무게에 더욱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기모노, 치파오보다 화려하지 않지만 절제와 우아함이 깃들어, 보면 볼수록 아름다운 한복. 우리 한복을 지키자는 목소리는 높아지는데 사극 속 한복들은 날로 화려해지기만 하고 있다. 패션 디자이너 장옥정이 전통과 역사를 끌어안은 한복쇼를 했다면 드라마 속 한복의 역할을 잃어가는 지금 얼마나 큰 의미가 됐을지 아쉬움이 남는다.
[매경닷컴 MK패션 조혜원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 드라마 스틸컷, KBS, SBS 방송화면 캡처, 티브이데일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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