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 많은 꿈을 꾸세요. 그럼 인생은 풍요로운 축제가 될 거에요” 꿈쟁이 김수영 [인터뷰]
- 입력 2013. 04.18. 08:46:55
- [매경닷컴 MK패션 차평철 기자] 春來不似春, 봄은 왔으나 아직 쌀쌀한 바람이 거리를 훑는 지난 4월 12일 꿈쟁이 김수영을 만났다. 2011년 73개의 꿈을 쓰고 세계에 도전한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멈추지마 다시 꿈부터 써봐’로 유명인이 된 그는, 2012년 전 세계 365명에게 꿈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이를 파노라마처럼 이은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를 출간했다.“최근에는 함께 킵워킹 펀드 5인에 당선된 성태훈 작가에게 그림을 배우고 있어요. 데생부터 시작하고 있죠. 조니워커에서 주최한 킵워킹펀드 선정의 마지막 관문이 자신의 꿈을 전시하는 것이었어요. 또 2012년에 전시를 한 번 더 했는데, 이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배우게 됐고요. 올 9월부터 꿈의 파노라마 2탄을 하거든요. 그때는 여행 다니면서 사진만 찍을 게 아니라 그림도 좀 그려서 같이 삽화를 집어넣으려고 해요. 그리고 올해 들어 보컬과 기타 수업을 받고 있어요. 6월쯤에 꿈을 찾고 이루는 자기 계발 실용서가 나와요. 그때 여는 북콘서트에 직접 참여하려고 준비 중이죠”
2011년 3월 28일 디아지오코리아는 ‘조니워커 킵워킹펀드’를 열어 카레이서와 화가, 골든벨소녀 등 5인에게 각각 1억 원의 상금을 2년간 지원하기로 발표했다. 이 대회에서 김수영은 실업계 고교생 최초 골든벨 우승과 연세대 진학 그리고 20대 중반 암 치료 후 런던으로 유학을 떠나 ‘로열더치셀’에 입사한 치열한 삶을 바탕으로 최종 5인에 선정됐다. 한편 당시 무급휴가를 자처했던 그는 킵워킹펀드의 지원으로 세계를 여행하며 많은 이들의 꿈을 찾는 프로젝트에 계속 도전 중이다.
“마음이 얼마나 열려있느냐에 달린 것 같아요. 저는 많은 부분에서 새로운 걸 늘 보고 또 어느 나라를 가도 현지 음식을 먹고 또 문화를 바로 흡수하거든요. 또 그 나라 말도 바로바로 흉내내고요. 그래서 어느 나라를 가도 살아남을 자신이 있죠. 또 제가 우리나라 최초로 발리우드 영화에 출연했어요. ‘내가 숨을 쉬는 날까지’라는 작품에서 여주인공 회사의 리셉션리스트 역할을 맡았죠. 대사가 있었지만 작은 배역이었고요. 또 다른 영화에서는 파티장면에서 춤추는 역할을 했어요”
영화는 관객에게 행복한 환상을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그의 취향은, 어쩌면 ‘판타지스타’ 같은 그의 지난 삶을 잘 드러낸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0년 개봉한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는 맨해튼에서 성공한 여주인공이 1년간 떠난 여행을 담고 있다. 하지만 즐겁게 영화를 본 이 중 누군가는 살 빼고, 회사동료 욕하고 또 결혼하기도 바쁜 우리 현실에 비교할 때 솔직히 허무한 느낌이 들었다고 평가했다. 한편 지난 10일 방송된 온스타일 ‘겟잇뷰티2013’에서 특별 멘토로 출연한 김수영은, 20대에게 ‘비행기 표를 끊어 당장 떠나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하고 싶은 걸 하라는데 잘못된 건 없다고 생각해요. 팔레스타인을 가보면 국가적인 차원의 상황 때문에 개개인이 꿈꿀 여유조차도 없어요. 꿈 자체가 독립이고 또 생존에 관한 최소한의 권리가 꿈이죠. 또 인도 슬럼가에 가보면 그냥 하루하루의 빵과 우유가 목표거든요. 그래서 자기가 하고 싶을 걸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굉장한 축복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각자 행복해질 때 저는 전체적인 행복도 늘어날 수 있다고 봐요. 당신이 하고 싶은 걸 하라는 말은, 모든 사람이 저처럼 여행 가고 노래하고 춤추라는 게 아니에요. 전국에 도서관 100개를 만드는 게 꿈이면 그걸 하고 또 불쌍한 사람을 돕고 싶으면 돕고요. 그렇게 각자 역할이 있고,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할 때 조화와 전체적인 발전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19세기 이래 영국을 중심으로 벤담과 존 스튜어트 밀이 주장한 공리주의가 떠올랐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Greatest happiness principle)을 목적으로 하는 공리주의는, 근대 시민사회의 윤리적 기준이자 영국 고전경제학과 자본주의 질서의 토대가 됐다. 하지만 개개인의 사익추구가 늘 공익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심지어 특정 세력의 꿈을 대변하는 지도자의 평가도 사후에 극단적으로 나뉘는 것이 일반적이다. 마치 얼마 전 타계한 마거릿 대처 소식에 샴페인을 터뜨린 영국시민의 모습처럼. “저처럼 개인적으로 꿈을 가지라는 사람들은 그렇게 해서 개인들이 자극을 받는 거고. 국가적인 차원에서 그런 역할을 할 사람들은 그런 역할을 하는 거고요. 역할이 다 다르잖아요. 사실 따지고 보면 제가 하는 꿈 이야기도, 어차피 오랫동안 사람들이 똑같은 이야기를 해왔어요. 단지 저의 힘들었던 배경 때문에 좀 더 주목받고 화제가 됐을 뿐이죠. 정치적이고 행정적인 차원에서 일하는 사람도 계속 나오고 있고요. 한편으로 어느 사회나 구조적인 문제점이나 허점은 있죠. 하지만 저 같은 사람이 그것까지 할 수는 없거든요. 그래 우리 사회구조가 이러니까 꿈을 포기하자고 할 수는 없잖아요”
어린 시절 세상을 바꾸고 싶은 꿈을 꾼 적이 있다고 말하는 그는, 자신이 마더 테레사 같은 이가 못 됨을 느꼈다고 한다. 대신 안젤리나 졸리처럼 자신이 하고 싶은 일로 성공을 거둬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을 꿈꾼다고 했다. 가령 졸리가 입양을 하자 인식이 바뀌고 또 난민촌을 가면 후원금이 확 오르는 것처럼, 그는 그런 선한 영향력을 세상에 사용하고 싶다고 밝혔다.
“우리 사회에 꿈을 이룬 사람이 많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런 것도 꿈이야 할 정도의 특이한 꿈이 주목받고, 한계와 편견을 깨뜨리는 사람이 더 등장해야죠. 우리 사회에서 인정받는 꿈이란 유명 대학 나와서 돈 많이 버는 직장 다니고 또 결혼하는 거잖아요. 또 거기서 도태되면 삶이 나락으로 떨어진다고 생각하고요. 그렇게 의사나 변호사 같은 좁은 주류의 길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방식으로 성공한 사람이 등장해서 각자의 방식으로 꿈을 실현했으면 좋겠어요”
‘판사 아들이 판사하고, 의사 아들이 의사 한다’는 말은 이제 우리 사회에서 어느덧 당연시되고 있다. 가난으로 범람하는 실개천에는 조그만 이무기만 떠다니고, 강 아래 용은 모두 남으로 창을 내고 승천을 한다는 것이다. 사실 IMF가 아닌 88올림픽 이전부터 8학군으로 대표되는 경제 자유화는 그렇게 개천에서 났던 용들의 성공신화를 서서히 무너뜨렸다. 얼마 전 OECD ‘성평등지수’에서 꼴찌를 기록한 우리 여성들이 만나면 꿈보다 성형이나 명품 또 결혼 이야기로 해몽에 바쁜 것도 그런 구조적인 문제와 관련 깊다. 하지만 그는 그런 좌절에도 우선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작은 것부터 당장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방울이 모여 바다가 되듯, 그런 개인의 꿈이 모여 더 나은 세상이 된다는 것이다.
“제가 가진 꿈이 앞으로 드림펀드를 만드는 거에요. 장학금이라는 제도도 있지만 대학 학생에게만 주는 거고 또 모든 사람이 꼭 공부로만 꿈을 이루는 게 아니잖아요. 또 나이가 많은 이들에게는 기회도 없고요. 그래서 버킷노트 애플리케이션을 만든 이유도, 사람들이 자기 꿈 계획서를 쓰고 또 수익이 나면 그걸 펀드로 조성하려고 하는 거죠. 남녀노소 꿈의 종류나 직업과 학력을 가리지 않고 사업계획서를 쓰듯 꿈 계획서를 쓰는 거예요. 그래서 어떤 노력을 해서 장벽을 극복했고, 또 앞으로 어떻게 이룰 것이며 이후에는 어떠한 방식으로 환원하겠다는 계획서를 써오면 심사해서 투자하는 거죠. 또 투자를 받는 이의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이런 제도가 있음으로써 역시 안 돼가 아니라 한 번 도전해 볼까, 열심히 준비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그런 변화가 왔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이 자기 꿈에 투자받을 기회가 있다는 건 한편으로는 꿈꾸기에 더 좋다는 거니까요”
꿈도 인생의 행복 중 하나의 요소로 생각한다는 그는, 꿈 없어도 사람은 충분히 살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꿈이 있고 이를 이루면 더 행복하지 않겠냐는 반문도 잊지 않았다. 한편 한 가지 꿈에 모든 것을 걸다 이루지 못했을 때 절망하는 삶을 대비하기 위해서도, 결국 꿈을 많이 가지는 게 좋다는 조언을 했다. 고시합격 같은 꿈을 꾸다 떨어지면 인생이 끝나는 것 같은 좌절감에 휩싸이지만, 그런 큰 꿈만이 아닌 작은 꿈 역시 많이 가질 때 다른 기회가 눈에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이다. 많은 꿈을 꾼다는 것은 인생을 고독한 마라톤이 아닌 즐거운 축제로 만드는 셈이라는 그는, 진정 늘 꿈꾸고 이를 실행하기 바쁜 꿈쟁이 김수영이었다.
[매경닷컴 MK패션 차평철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 진연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