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클래식의 대명사 회중시계, 그 안에 담겨진 이야기
- 입력 2013. 04.29. 13:28:44
- [매경닷컴 MK패션 남자영 기자] 회중시계는 주머니나 가방에 넣고 다니는 소형 휴대용 시계를 말하며 포켓워치라고도 한다. 최초의 회중시계는 16세기 독일 뉘른베르크의 기술자였던 페터 헨라인에 의해 만들어져 ‘뉘른베르크의 달걀’이라고 불리며 유럽에서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회중시계에 들어가는 부품은 매우 작아 제작이 쉽지 않았을뿐 아니라 가격이 비싸 대체로 상류층의 지위를 상징하는 물건이었다. 이 때문인지 목걸이처럼 걸고 다니는 풍습도 생겨났다.이후 시계 기술이 영국에 전해지면서 18세기에는 런던이 휴대시계 제작의 중심지가 되었다. 영국의 시계 기술자는 균형바퀴와 태엽을 사용했고, 18세기 중엽에는 휴대시계가 목걸이시계에서 회중시계로 변했다.
‘이상한 나라 엘리스’에서 잃어버린 시간을 되돌리려는 듯 바쁘게 뛰어가는 토끼가 지녔던 클래식하고 고풍스러운 아이템. 경험하지 못했던 그 무엇에 대한 향수를 느끼게 하는 회중시계에는 어떠한 이야기가 숨어 있을까.
1912년 4월 15일 새벽 2시 20분에서 멈춰버린 회중시계가 있다. 이 시계는 1895년에서 1900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타이타닉호의 한 승객이 탈출보트를 타는 과정에서 바닷물에 떨어뜨린 금장 회중시계이다. 타이타닉호의 공식 침몰 시각이 기록된 이 시계는 침몰 당시 급박했던 상황과 오랜 시간 차가운 바다 속에 잠들어 있었던 비극의 역사를 긴 시간이 흐른 지금에도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1850년대에 한 회중시계를 일리노이주 스프링필드의 보석상인 조지 차텔톤에게서 구매했다. 당시 금으로 만든 회중시계는 성공한 일리노이주 법률가의 상징이었고 19세기에 남자들은 호주머니에 이런 회중시계를 넣고 다녔다. 지금과 같은 손목시계가 널리 사용된 것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일이었다.
그의 회중시계에는 자신도 몰랐던 비밀이 숨어있었다. 그의 회중시계를 수리하던 딜론은 남북 전쟁이 시작된 소식을 듣고 시계 안쪽에 ‘조나단 딜론, 1861년 4월 13일, 섬터 요새가 반란군에 의해 공격을 당했다. 1861년 4월 13일 워싱턴, 우리는 이런 정부를 가진 것을 신에게 감사한다. 존스 딜론’이라는 문구를 새겨 넣었다. 링컨 대통령의 시계에 남북전쟁에 관한 이야기가 새겨져 있다는 것이 소문으로만 떠돌다가 150여 년이 지난 후에야 이러한 이야기가 사실로 확인됐다.
1932년 4월 29일에는 중국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윤봉길 의사의 역사적인 의거가 있었다. 의거 당일 아침 백범 김구와 아침을 같이 한 그는 작별 직전에 전날에 6원을 주고 산 회중시계를 김구 선생의 2원짜리 낡은 시계와 바꿨고, 김구는 훗날 지하에서 보자는 말밖에 그에게 전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중국 국민당 총통이었던 장제스의 표현대로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일을 조선의 한 청년이 투철한 애국심과 독립정신으로 담담하게 해냈고, 그는 1932년 12월 19일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윤봉길 의사가 죽기 직전까지 가지고 있던 이 시계는 순국 전날 그의 고향인 충남 예산군에 살던 가족에게로 보내져 후손들에 의해 보관됐다. 또한 윤봉길 의사의 정신이 담겼던 시계는 백범 김구 선생이 평생을 간직했으며, 안두희의 총탄으로 순국한 후 시계는 그의 둘째 아들 김신이 보관해왔다. 이후 2006년 ‘백범 탄신 130주년 기념식’에서 두 시계는 74년 만에 같은 장소에서 함께하게 됐으며 훗날 지하에서 만나자는 둘의 약속은 결국 지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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