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빛황혼’ 염색전문가 이병찬 선생, “우리의 색은 어떤 색일까?” [인터뷰]
입력 2013. 05.03. 18:36:11

[매경닷컴 MK패션 김지은 기자] 당신은 ‘한국의 색’을 알고 있는가.
‘청출어람(靑出於藍)’에 그 답이 있다. ‘푸른색은 쪽에서 나왔다’는 사자성어에서 보듯 푸른색의 스승격인 쪽빛은 ‘해가 뜨는 동방의 색’이다. 예부터 중국에서 우리나라를 ‘청구’(靑丘)라고 부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의 색을 찾아 19세기 이전으로 30년 넘게 여행 중인 염색전문가 이병찬(82) 선생을 만났다. 약속 장소인 국립민속박물관은 5월 20일까지 특별전 ‘자연을 물들이다’를 통해 198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의 이병찬 선생의 기증자료 221점을 소개하고 있다. 1990년 ‘제15회전승공예대전’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보답으로 자식 같은 작품들을 선뜻 내놓은 것.
중국 톈진에서 태어난 이병찬 선생은 외국계 회사에서 근무하며 역으로 우리 것에 대해 눈을 돌린 경우다. 서른 즈음부터 국립 박물관에 수시로 드나든 선생은 정년 퇴임 이후 우리 색을 재현해 보겠다는 마음으로 1982년 염색에 입문했다.
“제가 자라면서 외국에 나가보면 일본에는 일본의 색, 프랑스는 프랑스의 색, 독일에 가면 독일의 색 등 나름대로 고유의 색을 갖고 있는데 그러면 한국의 색은 어떤 색일까. 그렇죠? 이것을 찾기 위해서는 합성염료가 발견되기 이전의 식물염료를 찾는 작업부터 해야 하지 않겠어요?”
1985년 6월 이병찬 선생은 식물학자 故 이창복 선생의 도움으로 둥근 잎의 쪽을 찾았다. 선생은 발견 첫해 생쪽잎으로 파랗게 물들이고, 그 다음해에는 앙금을 만드는 실험에 착수했다. 그의 날카로운 눈빛, 다부진 말투도 쪽잎 앞에선 방어벽 없이 친근하다.
“규합총서에 ‘둥근 잎이 좋다’고 적혀 있고 6·25 전쟁 직전까지도 있다가 사라졌어요. 제가 자랑스럽고 뿌듯한 것은 쪽을 찾았다는 거죠. 잃어버린 우리 색을 찾아서 조금이나마 이바지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병찬 선생이 쉰이 넘은 나이에 산으로 들로 다니며 채취한 색은 사람의 안과 밖을 두루 치유한다. 적, 청, 황, 백, 흑으로 구성되는 오방정색부터 민트, 핫핑크 등 트렌디한 컬러까지 온화하기 그지없다. 작품 ‘천연염색 실’은 오십여 색이 어우러졌지만 서로 밀어내지 않고 한데 어우러진다.
우리 색의 아름다움을 화두로 던지자 선생의 목소리가 갑자기 커진다. “그렇죠. 천연염색은 우리가 해야 하는 거에요. 제가 마음대로 하는 게 아니라 우리 문헌에 다 기록이 있는 거에요. 가까운 조선시대에는 ‘생명과 더불어 뭘 가지고 어떻게 했다’는 기록이 있거든요”
19세기 화학염료가 만들어지기 전 천연색은 온화한 우리의 심성을 담고 있다. 현 세태의 개인주의 풍조에 잃어버린 우리의 공동체적인 삶을 그대로 간직한 채. 그래서 이병찬 선생의 작품을 보면 오랜만에 ‘고향’을 찾아간 듯 편안하다.
‘색의 고향’을 뒤로 하고 타지에서 눈시림을 겪는 이들이 여전히 많을 터. ‘내 인생은 염색’이라고 담담히 말하는 이병찬 선생은 30년 동안 연구, 교육, 집필을 통해 우리의 빛을 되살리고 있다. 오색찬란한 천연염색 작품에 둘러싸인 그에게 애착 있는 색을 묻자, 선생은 뽀얀 피부에 곱게 주름진 입가를 모으며 주저 없이 “쪽”이라고 내뱉는다.
82살의 나이가 무색하게 그는 푸르기에 젊고, 고집 있기에 푸르다.

[매경닷컴 MK패션 김지은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 진연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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