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엣뮤 서영수’에서 ‘서영수.씨’로 디자이너 서영수의 변신 ① [인터뷰]
- 입력 2013. 05.05. 12:29:35
- [매경닷컴 MK패션 차평철 기자] 지난 3월 29일 디자이너 서영수의 ‘서영수.씨’(SEOYOUNGSOO.C) 2013 가을/겨울 패션쇼가 서울시 용산구 한남동 블루스퀘어홀에서 끝났다. 동대문 두타에서 세컨드 브랜드 ‘엣뮤 서영수’(At-Mue SEOYOUNGSOO)를 전개해 왔던 그는, 작년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2013 봄/여름 서울패션위크부터 컬렉션 라인 ‘서영수.씨’로 2년째 참가했다.“사실 작년 봄/여름 쇼는 평상시 하던 쇼였어요. 원래 ‘앳뮤’는 옷 하나하나가 질이나 가격이 아주 높지는 않기에, 판매를 위해서도 겹쳐 입을 수밖에 없거든요. 물론 ‘서영수.씨’는 질을 올렸지만, 전체적인 라인은 ‘앳뮤 서영수’에서 벗어나지 않았죠. 하지만 이번 쇼는 끝나고 보름을 앓아누울 정도로 고생했어요. 전과 달리 단품으로 끝내보자 그래서 재킷 하나, 코트 하나만 갖고 착장을 끝낼 거라는 생각으로 달려들었죠. 하지만 한 5년간 해 왔던 덧입히기가 익숙해서 그런지, 자꾸 뭘 걸쳐야 할 것 같고 또 안에 뭘 입혀야 할 것 같아서 준비기간 내내 불안했어요”
이번 가을/겨울 컬렉션은 1986년 첫 연재를 시작했던 신일숙의 만화 ‘아르미안의 네딸들’ 중 맏딸 ‘마누아’를 염두에 두고 기획됐다. 고등학교 3년 내내 이 만화책을 사 모았다는 그는, 예쁜 그림과 왕녀의 카리스마가 인상 깊었다고 했다. 그래서 쇼를 앞두고 강인한 엄마면서 전사 같은 여성상의 실루엣을 잡을 때 ‘마누아’가 떠올랐다고. 더욱이 전위적인 니트로 주목받아 온 그는 어떻게 옷과 인연을 맺었을까.
“저는 어렸을 때 니트가 세상에서 제일 싫었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엄마한테 옷을 사달라고 하면 다 손뜨개로 짜서 주셨거든요. 그래서 의상학과를 가서 디자이너가 되더라도 니트와 담을 쌓고 살겠다고 결심했죠. 그러다 대학원에 가서 우연히 이연희 교수님 섬유작품전을 봤는데, 실을 늘여놓고 그러데이션을 시킨 게 너무 멋있는 거예요. 그래서 실을 염색하게 됐어요. 또 실 자체를 큰 바늘로 한 번 짜면 어떤 느낌이 날까 싶어서 졸업작품전과 논문을 그걸로 하게 됐어요. 그러다 지도교수님이 업체 취직도 그쪽으로 시켜 주셨고, 또 강의도 니트웨어에 대해서 내 주셨고요. 그렇게 10년을 지내다 보니, 서영수 하면 어느새 니트 디자이너가 돼 있더라고요”
그에게는 한국 니트계의 대모(?)라는 과한 표현도 종종 등장한다. 하지만 그에게 니트는 처음엔 싫어했지만 결국 사랑에 빠진 남자처럼, 어쩌면 애증의 관계처럼 보였다. 더욱이 미술학도를 꿈꾸다 의상학과에 갔지만 대학 시절은 너무 재밌었다고 했다. 요지 야마모토 쇼를 잡지로 접하며 환희를 느꼈기에, 미대에 갔어도 결국 의상을 전공했을 것 같다고 했다. “대학생활은 굉장히 농땡이였어요. 그래서 지금도 우리 막내 디자이너를 뽑을 때 공부만 열심히 한 친구는 뽑지 않아요. 저는 좀 날라리들이 좋아요. 당시 제 놀이터가 대구에 있는 동화백화점과 대구백화점이었어요. 그래서 두 백화점에 입점하는 브랜드는 제가 다 알았죠. 매일 출근하다시피 했으니까요. 그런데 그게 지금 시장조사 하는 데 도움이 많이 돼요”
이후 니트 프로모션 회사에 취직한 그는 네 군데의 업체를 거치며 디자인을 계속했다. 하지만 자신의 분명한 취향에 대한 고민 끝에, 결국 2002년 ‘수 디자인’(SOO DESIGN)을 열었다. 20대 중반에는 업체 대표들의 요구를 잘 몰랐다는그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오히려 당당한 ‘마누아’를 좋아했다는 그가 바로 독립하지 않은 이유가 궁금했다.
“제가 2002년 월드컵 즈음에 ‘수 디자인’이란 프로모션 회사를 시작했어요. 그런데 당시는 오브제, 도호, 텔레그라프 등 캐릭터 브랜드들의 춘추전국 시대였죠. 그래서 ODM으로 납품을 하다 보니 생각보다 돈이 잘 벌리는 거예요. 또 당시는 저처럼 니트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업체와 일방적인 갑을 관계도 아니었고요. 그러다가 불현듯 난 뭘 하고 살고 있지 나도 내 이름을 걸고 혼자 할 수 있는데 싶어서 2007년에 ‘카이자이 서영수’를 같이 시작했어요. 그런데 제 브랜드를 하니까 납품하는 회사에 좋은 디자인을 주기 싫더라고요. 그래서 한 시즌 정도 진행하고는, 제 길을 가야겠다 싶어서 ‘카이자이’만 했죠”
2007년 가을에 열린 롯데백화점 2008 봄/여름 품평회에서 ‘카이자이’는 1등으로 입점을 했다. 자본력도 경력도 없었지만, 가격 대비 아주 예쁘다고 평가한 임원진들이 입점을 확정한 것이다. 하지만 2008년 3월 부산 본점과 미아점 등 세 군데를 열었지만, 옷이 좋다는 여론과 달리 매출은 그리 신통치 않았다. 그는 당시 소비자들이 입을 옷보다는 자신의 디자인을 보여주겠다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자평했다.
“제가 시작한 첫 브랜드였고요. 또 프로모션을 하면서 돈은 벌었지만, 나름 당한 설움도 있었어요. 그래서 단박에 보여준다는 욕심이 강하다 보니, 옷에 힘이 들어가면서 디테일이 많아지고 또 옷이 무거워 보였던 것 같아요. 그렇게 백화점 수수료와 직원 월급을 주면서 한 1년 반 정도 하다가 접었어요. 그렇게 재고정리하고, 부채를 추슬러서 집에 있는데 두타에서 바로 오라는 연락이 왔죠”
[매경닷컴 MK패션 차평철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 송선미 기자, SEOYOUNGSOO.C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