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류 화장품업계도 술렁 “당신 ‘갑’이야?” [갑을 대격돌 ①]
- 입력 2013. 05.08. 17:31:31
- [매경닷컴 MK패션 한숙인 기자] 최근 유통가는 갑을 논쟁으로 뜨겁다. ‘갑’이 훈장처럼 여겨지던 때가 불과 하루 이틀 전인데 어느새 ‘갑’의 명예가 퇴색되고 온갖 더러운 거래와 강압으로 점철된 불명예의 상징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백화점의 부당 수수료 부가, 가맹점거리 제한 관련 규제 방안에 이어 가맹사업법 개정 등 ‘을’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법안을 내놓으며 을의 처절한 복수극의 강력한 조력자 역할을 하고 있다.소비시장에서 유통업체는 전통적으로 갑의 위치에 있다. 최상위 거대권력층으로 거론되는 백화점은 패션이나 뷰티업체와의 관계에서 항상 ‘갑’의 위치에 있다. 물론 지역백화점 등 중소형백화점은 갑과 을의 위치가 뒤바뀔 수 있지만, 장기 불황으로 상당수 지역백화점들이 대기업 계열 백화점으로 흡수돼 사실상 백화점과 마트를 포함해 ‘을’의 위치에 있는 유통전문점은 찾아보기 힘들다.
백화점에 이어 최근 편집매장이 새로운 ‘갑’으로 등극했다. 중대형 매장 규모를 갖춘 편집매장은 소규모 수입업체와 디자이너 브랜드들 사이에서 백화점보다 더 무서운 ‘갑’으로 군림하고 있다. 백화점은 다소 관행상 익숙해진 것이 이유일 수 있으나 어느 정도 납득할만한 합리적 거래 규정으로 인식되고 있는 반면, 편집매장업체들은 백화점의 높은 수수료와 재고부담을 떠넘기는 재래시장 관행을 병행한 전혀 새로운 거래 방식으로 입점 업체들에게는 ‘공포의 갑’으로 군림하고 있다.
제3유통인 홈쇼핑과 인터넷쇼핑몰 또한 만만치 않는 ‘갑’으로 부상했다. 편의성, 가격정책 등에서 대중을 위한 유통이라는 그럴듯한 타이틀을 걸고 있지만, 이 같은 홈쇼핑과 인터넷쇼핑몰 특유의 강점을 충족시키기 위한 모든 중간 비용 감소가 결국 거래업체에게 떠넘겨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 동안 수면위로 드러나지 않았던 갑은 한동안 유통전문업체들의 횡포 뒤에 숨어온 제조업체 즉 패션 및 화장품업체들이다. 백화점과의 거래에서 항상 ‘을’의 위치에 서있던 제조업체들이 실은 백화점보다 더 ‘잔혹한 갑’이었다는 사실이 최근 여타 사건들을 통해 드러나면서 여론은 이들에게 냉혹한 윤리적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여기에서 강력한 먹이사슬 관계가 형성된다. ‘백화점>제조업체>대리점’.
한 패션브랜드 대리점주는 “백화점은 수수료 36~37% 외에 매장 운영에 필요한 비용전반을 입점업체에게 떠넘긴다. 이러한 비용을 모두 포함하면 실제 입점업체들은 백화점 매장 운영을 위한 기본 비용만 산정해도 전체 매출에서 50% 많게는 60% 수준이 소요된다. 나머지 남은 판매실적 분으로는 매장 재고 및 전시된 상품 생산비도 안 된다”면서 “문제는 이들 업체가 여기서 나는 손해를 대리점과의 거래로 메우려 하는 것”이라며 울분을 토했다.
편집매장 역시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편집매장에 입점해있는 한 수입신발업체의 경우 편집매장의 요구조건의 부당성을 떠나 전체 매출규모에 비해 너무 과한 거래조건이 문제임을 지적했다. 그 정도 판매분으로는 수수료와 재고부담을 떠안으면서까지 편집매장에 들어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의 유통 대안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요구조건을 수용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어느 상황이든 예외조항이 있듯이, 갑을 관계에서도 드라마틱한 예외사례가 있다.
절대권력 갑인 백화점은 명품브랜드와 높은 매출을 올리는 로컬브랜드들에게는 상대적 ‘을’이다. 패션업계에서 백화점보다 더한 ‘슈퍼 갑’으로 군림한 한섬이 있다. 현대홈쇼핑 매각 이후 ‘슈퍼 갑’으로서 의미가 다소 퇴색돼가는 듯 보여 패션업체들을 다소 우울하게는 하지만, 한섬은 아직까지 ‘슈퍼 갑’으로서 위용을 잃지 않고 있다.
제조업체와 대리점 관계에서도 슈퍼 갑이 있다. 명동을 비롯한 지역 중심 가두상권의 몇몇 대리점은 제조업체들에게 백화점과 동등한 대우를 받고 있으며, 심지어는 최소매출 보장까지 받는 등 ‘울트라 슈퍼 갑’으로 절대 권력을 누리고 있기도 하다. 이들 대리점주들은 인근 지역에 3~4개 매장을 소유하거나 지역 최고 인맥을 기반으로 거래 조건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사례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한 대리점주는 “어찌됐건 갑은 갑이고 을은 을이다. 을이 갑이 된 경우는 생명력이 그리 길지 않다”면서 “최근 나오는 법 개정안이 실상 현실적으로 와 닿지 않는다. 마치 오바마가 총기거래금지법을 통과시키려 하지만 총기업체들의 탄탄한 인맥에 밀리는 것처럼 백화점 부당 수수료 부과에 대한 제재조치 및 가맹사업법 개정안 역시 패션업계의 현실과는 다소 동떨어져 있는 것 같다”고 견해를 전했다.
전문가들은 갑과 을을 가해자와 피해자로 시각을 고정화 해서 접근하는 방식이 문제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보다는 진정한 공정거래 확립 차원에서 부문별 업체들의 의견을 수렴해 보다 현실적인 거래 규정을 확립시켜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계속>
[매경닷컴 MK패션 한숙인 기자 news@fashionmk.co.kr/사진=MK패션, photopar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