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vs 디자이너 브랜드 "패션 코리아는 골병든다!" [갑을 대격돌 ②]
입력 2013. 05.09. 11:42:44
[매경닷컴 MK패션 차평철 기자] 미국행 라면에 이어, 3년 묵은 우유가 대한민국을 흔들고 있다. 이에 덩달아 대한민국 갑돌이 갑순이 들도 대대적인 집안 단속에 나섰다. 이는 제조업과 서비스업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해당한다. 더욱이 소비자들의 불매운동으로 큰 손실을 볼 수 있는 대기업들은 팀장급 이하 직원들에게, 향후 벌어질 수 있는 시나리오와 예방책을 마련해 오라며 고민거리를 안겨줬다는 소식이다.
오늘 9일 현대백화점이 ‘갑’과 ‘을’의 명칭을 당장 내일인 10일부터 사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약 3,500여 개 협력사와 체결하는 모든 거래 계약서에 ‘갑’을 백화점 ‘을’은 협력사로 바꾸기로 한 것이다. 또 모든 임직원이 아예 ‘갑’과 ‘을’이라는 표현을 안 쓰기로 했으며, 매월 ‘올바른 비즈니스 예절’ 등의 교육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갑’과 ‘을’이라 표현을 쓰지 않는다고 해서 업계의 일방적인 관행이 쉽사리 바뀌지는 않을 것 같다. 홍길동전이 단순히 호칭이 아닌 신분제 사회의 차별과 제도에 따른 문제에서 탄생한 것처럼, 롯데와 신세계 그리고 현대로 일컬어지는 빅3 백화점의 이런 뜨끔한 마음도 그들이 유지해 온 초월적 지위에 있기 때문이다.
국내 대형 백화점의 전체 매장 중 입점업체는 약 70%를 차지한다. 이런 기형적 구조 속에 디자이너들이 패션쇼를 통해 국내에서는 구매자를 찾을 수 없다. 수주형식을 포기하고 대형 백화점에 입점한 디자이너들 역시, 최근 40%까지 근접해가고 있는 수수료와 인테리어 비용 그리고 판매직원 월급마저 책임지고 나면 남는 것이 거의 없다고 토로한다.
한국패션디자이너연합회 유재부 대변인은 요즘 젊은 디자이너들은 국내 백화점에서 빠지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1980~1990년대만 하더라도 백화점에 들어갔다는 게 일종의 훈장이었지만, 심지어 단독 매장이 아닌 편집 매장에 들어가도 수익이 없기에 외국으로 눈을 돌리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또 인터넷쇼핑몰이나 티브이 홈쇼핑 등을 통해, 이런 대형 백화점들의 불공정한 유통 관행을 깨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고 전했다.
IMF 이후 백화점에서 철수했던 한 중견 디자이너는 1990년대 중반 당시 백화점 수수료가 28~32% 내외였다고 회상했다. 그래도 결국 남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점점 올라가는 가격을 소비자들이 부담하는 악순환이 계속됐고, 결국 90년대 후반 수수료가 35%에 이를 즈음 그는 백화점 입점이라는 명예를 스스로 반납했다.
따라서 이런 상황 속에 많은 디자이너가 알게 모르게 백화점이 아닌 동대문에서 주 수입을 얻는 일도 있다고 귀띔했다. 신진과 중견을 가리지 않고, 대신 절대 매장에 나오지 않고 상호와 업체를 다르게 해 운영하고 있다는 것.
그러나 이제 막 이름을 알리는 신진 디자이너에게 ‘백화점 입점’은 먹지도 버리지도 못하는 계륵처럼 골치 아픈 존재다. 최근 서울패션위크에 참가한 모 디자이너는 상대적으로 대형 백화점보다 수수료가 싸고 매출도 좋은 지방 단독 백화점에 들어가려 해도, 빅3 어디에 있는지 묻는 경우가 많다고 털어놨다. 따라서 영업차원에서라도 대형 백화점 한두 군데에 시범매장을 열어야 할지 고민 중이라는 것이다.
대형 백화점 1, 2층을 잠식한 대부분의 외국 명품 브랜드는, 열광하는 우리 소비자들에게 거의 없다시피 한 사회 환원과 높은 광고비를 책정하고 있다. 또 FTA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점점 가격을 올리며 매년 큰 이익을 얻어 간다. 그곳에 겨우 자리를 잡은 몇 개의 국내 브랜드 역시 모두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매장뿐, 작지만 경쟁력 있는 디자이너의 모습은 찾을 길 없다. 지금도 분명 감각 있는 디자이너는 어디선가 꿈을 키우고 있겠지만, 수익만을 우선하는 대형 백화점의 이런 ‘갑갑한’ 행태가 계속된다면 결국 ‘패션 코리아’라는 허울뿐인 구호는 사라질 것이다.
[매경닷컴 MK패션 차평철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MK패션, photo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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