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태지, 힙합패션을 주류로 끌어올린 90년대 문화대통령
- 입력 2013. 05.15. 16:59:32
- [매경닷컴 MK패션 김희선 기자] 15일 오후, 16살 연하 배우 이은성과 결혼을 발표한 서태지로 온 나라가 뜨겁다. 2011년 이지아와의 비밀결혼과 이혼 소송이 알려지며 세상을 발칵 뒤집어놓았던 그가 또다시 메가톤급 결혼 소식으로 놀라움을 안긴 것이다.
90년대 한국 대중문화에 큰 획을 그은 그가 신세대에게서 얻은 지지와 사회에 미친 영향력은 그야말로 굉장했다. 언론은 그를 ‘문화대통령’이라 불렀고 시사 프로그램은 앞다투어 이 현상을 파헤쳤으며, PC통신을 통해 각종 ‘서태지 담론’이 등장하기에 이른다.특히 서태지는 젊은이들의 패션에도 크게 영향을 끼쳤다. 주류문화로부터 구별되는 하위문화를 만들어내며 특징적 스타일을 탄생시킨 것.
20세기에 등장한 다양한 하위문화는 주류문화에 대한 반 유행의 표시로 그들만의 집단적 정체성을 표현했다. 이들은 의복과 행동에서 독특한 양식, 즉 스타일을 만들어나가며 결속력을 다졌다. 1940년대 미국 흑인 젊은이로부터 시작한 쥬티와 50년대 영국의 테디 보이가 그 시작으로, 모즈, 히피, 펑크, 그런지, 힙합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들 집단은 종종 사회적 일탈 행동으로 문제가 되기도 했지만 그들의 옷차림만은 하나의 ‘스타일’로 정착했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1992년 1집 ‘난 알아요’를 발표하며 경쾌한 랩댄스에 어울리는 원색의 의상을 입고 등장한다. 신파적인 가사와 경쾌한 랩, 파워풀한 회오리춤이 만들어낸 오묘한 끌림만큼이나 특이했던 것은 상표를 떼지 않은 모자와 의상. 협찬받은 제품이라 상표를 붙인 채 무대에 올랐다가 탄생했다는 이 패션을 당시 수많은 어린이와 젊은이들이 따라했다. 서태지는 벙거지 모자와 동그란 안경, 길게 늘어뜨린 목걸이를 찰랑거리며 때론 오버롤즈의 멜빵을 한쪽만 잠근 개구쟁이 스타일을 선보이기도 했다.
2집 ‘하여가’를 들고 나오며 이들은 힙합패션을 유행시킨다. 힙합은 70년대 중반 뉴욕 브롱스가를 중심으로 생겨난 흑인 청소년의 문화다. 헐렁한 티셔츠와 팬츠, 바닥까지 닿는 긴 벨트, 발보다 훨씬 큰 팀버랜드 워커로 대표되는 힙합 스타일. 이 중 헐렁한 팬츠의 유래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옷을 살 돈이 없는 가난한 10대가 아버지의 옷을 입어서, 옷가게에서 입을 만한 사이즈는 이미 팔리고 큰 치수만이 남아서, 혹은 벨트 없이 흘러내리는 죄수복에서 유래해서, 그리고 총기와 마약을 넣기 위해서 넓은 통의 바지를 입기 시작했다는 등 여러 주장이 있다.
시작이 어떻든 서태지와 아이들 또한 헐렁한 팬츠와 티셔츠로 브라운관을 누볐고, 젊은이들은 넓은 통의 바지를 입고 거리를 ‘쓸고’ 다녔다. 밑위가 바닥에 닿을 정도로 줄줄 흘러내리는 ‘똥싼바지’를 입자 자연스럽게 속옷이 드러났고, 이에 유명브랜드의 팬티를 입는 것이 또 다른 유행처럼 번졌다.
힙합바지와 함께 이주노와 양현석이 시도한 헤어스타일은 자메이카 흑인의 종교운동 라스타파리안에서 유래한 레게 풍의 드레드록. 하지만 이 레게머리가 방송불가 판정을 받으면서 오래 노출되지 못했고, 1993년 이들과 같은 시기에 활동하던 닥터 레게가 라스타파리안 스타일을 표방했으나 이 또한 팀이 1년만에 해체하면서 힙합만큼 대중화하진 못했다.
1994년 3집 ‘발해를 꿈꾸며’ 활동 중 서태지는 빨간 체크무늬 스커트를 입어 대중에게 충격을 안긴다. 이듬해 4집 ‘컴백홈’의 의상 콘셉트는 스노우보드 룩. 보드복과 이주노의 마스크, 그리고 S로고가 붙은 서태지의 니트 모자와 단발머리, 선글라스는 큰 인기를 끌며 수많은 패러디를 만들어냈다. 이후 ‘필승’을 부르며 각각 빨강, 보라, 초록으로 머리를 물들인 강렬한 비주얼을 앞세워 공격적으로 록 스피릿을 표현한 이들이, 1996년 1월 돌연 얌전한 정장을 입고 기자회견을 하던 모습은 은퇴 발표만큼이나 충격적이었다.
서태지와 아이들 등장 이후 가요계에는 활동기와 공백기의 구분이 공식처럼 굳어졌고, 본격적인 뮤직비디오의 시대가 열렸으며, 저작권과 초상권의 개념도 확립됐다. 무엇보다 랩과 힙합, 레이브 음악을 대중가요의 주류로 끌어올리며 이후 듀스와 DJ DOC, R.ef로 이어지는 댄스가요 전성기의 포문을 연 서태지.
2000년 컴백을 발표하며 입국하던 순간 그가 입었던 거꾸로 된 ‘Y’ 문양의 구찌 스웨터는 아직 가장 파괴력 있는 공항패션으로 손꼽힌다. 이후 솔로 활동 시에도 그는 빨간 드레드록과 메쉬 야구모자, 레이어드 룩, 재킷과 카고팬츠 스타일링 등 늘 새로운 서태지만의 패션을 선보이며 수많은 추종자를 만들어냈다.
문화대통령 서태지. 이 시대의 지드래곤처럼 영악한 트렌드 감각까지는 갖추지 못했지만 그는 패션에 관한 어떠한 고정관념도 없이 수많은 젊은이의 스타일까지 지배한, 90년대 영 패션의 상징이자 아이콘이다.
[매경닷컴 MK패션 김희선 기자 news@fashionmk.co.kr/사진=서태지 공식 홈페이지, 티브이데일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