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패션업체 vs 협력업체, 양아치보다 더 치졸한 ‘매출 끊기’ 관행 [갑을 대격돌⑧]
- 입력 2013. 05.20. 11:24:38
- [매경닷컴 MK패션 한숙인 기자] 한 만화에서 “갑이 갑다워야 갑이지”라며 매너 넘치는 갑의 응대에 흡족해하는 컷이 실소를 자아냈다. 패션업계에서 갑을 관계를 논할 때 가장 먼저 화두에 오르는 것은 절대 갑 백화점이다. 그러나 백화점만큼이나, 어쩌면 백화점보다 더한 부당한 권력 관계가 형성돼있는 것이 패션기업과 아웃소싱 협력업체이다.백화점에 신규 입점하게 되면 인사치레 차원에서 협력업체들이 해당 백화점에 가서 물건을 구매한다. 여기까지는 상도의상 충분히 이해 갈만한 수준이라는 것이 을의 전언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무언의 압력이 가해지고 할당액이 부과되는 경우가 고착되면서 일명 ‘매출 끊기’가 관행화됐다. 이로 인해 절대 을일 수 밖에 없는 중소 협력업체들의 경영난이 가중된다고 관계자들은 토로한다.
롯데백화점 본점,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등 각 지역 주요 상권에 포진해있는 백화점에 브랜드가 입점해 매장을 오픈하게 되면 패션기업 내 각 부서별로 협력업체를 대상으로 한 할당 금액이 부과되고 각 부서는 이를 협력업체에게 넘긴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알려진 정설이다.
협력업체 입장에서는 주요 백화점에 입성한 데 대한 축하차원에서 매출을 올려줘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나 정도를 넘어서는 요구가 문제라는 것.
백화점 내에서의 자리 이동이나 리뉴얼 오픈 시에도 매출 끊기가 행해지는데 이 역시 어는 정도는 수용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통상적으로 백화점은 매출 실적으로 점포 유지 또는 퇴점의 여부를 결정한다. 따라서 백화점 MD 개편시기를 앞두고 1~2개월 전부터 패션업체들은 매출 실적 관리에 들어가게 되고 이 경우 부담이 고스란히 협력업체로 넘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심지어 지역점에 입점해 있는 브랜드들의 경우 중심상권에 있는 주요 점포로 입성하기 위해 매출 끊기를 요구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고 관계자들은 설명한다.
상대적 약자일 수밖에 없는 협력업체 대부분이 생산, 원부자재, 대행사 같은 규모가 작은 중소업체들이어서 특정 시기와 무관하게 떨어지는 매출 끊기가 회사 운영을 힘들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협력업체 측에게 요구하는 할당액은 그 업체 대금 규모에 준해서 설정된다고 한다. 따라서 원단업체처럼 규모가 큰 업체는 그 만큼 금액적 부담이 커질 수 밖에 없다는 것. 그런데 이 경우도 예외가 있어서 규모가 크거나 대외적인 인지도가 높은 몇몇 협력업체들은 매출 끊기 요구를 과감하게 거절하는 경우도 있다고 관계자들은 설명한다.
매출 할당 요구로 협력업체가 어려움을 호소해오자 구매한 일부 금액을 환불해주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 업체도 있다고 한다. 사실 대기업이나 중견업체 등이 이 같은 요구를 하지는 않으나, 일부 몇몇 패션업체들이 악용하고 있고 그 정도가 점점 심해지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이처럼 패션업체 입장에서도 매출 끊기 요구가 달가운 것만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사정을 뻔히 아는데 요청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을 뿐 아니라, 협력업체 관계자들이 소비자로서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으면 그나마 좀 부담이 없지만 전혀 상관없는 품목의 구매를 요구해야 할 경우 난처해진다고 토로한다.
실제 이런 사례로 인해 협력업체 관계자들은 입을 수도 없는 상품을 구매해놓고 처치곤란인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 모 협력업체의 경우, 개인적으로 입을 수 없는 브랜드로부터 할당액까지 떨어진 경우는 직원들이나 주변 지인들이 입을만한 옷을 구매해 선물로 돌린다고 설명했다.
한 디렉터는 디자이너들의 연봉이 높지만 회사를 그만두게 되면 마이너스 통장만 남아있다면서 소비가 많을 수 밖에 없는 산업 특성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나 이 같은 경우,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만, 소비를 강요당하는 문화 속에서 중소 협력업체들의 경영난은 심각한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을의 처절한 한마디
“경기 상황이 안 좋아지면서 결제 대금이 계속 밀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런데 저희 같은 소규모 협력업체는 생존의 문제이다 보니 무작정 밀리는 대금을 앉아서 기다릴 수만은 없죠. 계속 대금 결제를 요구하니 모 업체에서 대금의 일부를 제품으로 가져가라는 요구를 하기도 하더군요. 백화점을 지정해서 매출을 끊기를 수시로 요구하거나 상도의를 넘어서는 금액을 정해놓는 경우는 정말이지 힘듭니다. 사실 거래를 하면서 어느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때로는 대금 규모와 상관없이 과도하게 할당액을 요구할 때는 어찌해야 할지 난감하더군요. 클라이언트가 떨어지면 금액적인 측면에서 손해도 손해지만 이보다 대외적인 회사 신뢰도가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정말이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요구 조건을 떠안게 되는 것이죠. 저희 같은 협력업체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말을 듣든가 아니면 손들고 나가든가”<계속>
[매경닷컴 MK패션 한숙인 기자 news@fashionmk.co.kr/ 사진=MK패션, photopar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