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완성의 놀이 ‘해체주의’ 패션
- 입력 2013. 05.21. 13:51:23
- [매경닷컴 MK패션 임소연 기자] 60년대 후반에 논의되기 시작한 해체주의(Deconstruction)는 말 그대로 파괴 또는 해체, 풀어헤침의 행위를 통해 정형화된 질서를 강요하는 일반적인 규칙과 모든 관습을 거부하는 반 문명 양식운동이다. 이는 현재까지 문학, 회화, 건축, 패션 등 여러 분야에 힘을 발휘하고 있다. 1989년 패션에서 해체라는 용어가 처음 언급된 것은 잡지 ‘디테일즈(Details)’를 통해서다. 그리고 최근 패션계에서는 해체주의의 부정적인 이미지보다 그들이 가져오는 긍정적인 영향을 포착하려 하고 있다.
해체주의 패션의 시초 레이 가와쿠보
해체주의 패션은 인간의 몸이 갖고 있는 기본적인 비례와 정형화된 미의 기준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옷의 형태와 구조를 바꿨다. 패션계에 해체주의를 불러온 중심에는 80년대 파리에 진출한 레이 가와쿠보(Rei Kawakubo)가 있다.
컬렉션마다 새로운 소재와 형태를 창조했던 레이 가와쿠보는 일본 전통복에 뿌리를 둔 평면적인 실루엣을 바탕으로 몸에 피트 된 옷이 아름답다는 서구식 미의 기준을 무너뜨리고 파괴적인 이미지의 옷을 만들고자 했다.
그는 형식이란 틀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한 대표 디자이너 중 한명인데, 균일하지 않은 헴라인, 다양한 모양으로 찢어진 옷, 너덜너덜한 실밥, 복잡하게 얽혀 꿰맨 옷, 구겨진 옷감, 비대칭과 비조화의 실루엣, 입는 방법이 정해져 있지 않은 옷 등을 통해 미완성이 가져오는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1982년 가을/겨울 컬렉션에서 그가 선보인 구멍 난 스웨터 일명 ‘레이스 스웨터(Lace Sweater)’는 해체주의 패션의 시작이자, 그의 디자인 인생에도 중대한 획을 그었다. 그는 획일화된 기계 니트의 완벽함에 대항하는 자세로 아무렇게나 구멍 뚫은 니트를 선보인 것이다. 여기서 ‘레이스’는 여리고 섬세한 기존의 레이스 이미지가 아니라 파괴라는 역설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1983년 가을/겨울 컬렉션에서도 그는 어떤 실루엣도 드러나지 않은 사각형의 천으로 체형보다 크게 재단된 코트 드레스를 선보여 해체주의 컬렉션을 이어갔다. 그의 많은 의상들은 비대칭적으로 재단됐으며 라펠과 단추, 소매를 엉뚱한 위치에 장착해 웃음을 유발하기도 했다. 음악 대신 흐르는 금속성 소음 속에서 모델들은 앙상한 몸에 검정과 회색의 무채색 직물로 된 누더기같은 옷들을 감싸 입고 그 위에 너덜너덜한 코트를 걸친 뒤 음산한 표정으로 런웨이를 거닐었다.
그 후에도 1997년 봄/여름 컬렉션에서 과장된 패딩 소재로 부풀리지 않아도 될 여성의 신체 부위를 왜곡하여 옷과 몸의 관계를 해체했다. 2012년 가을/겨울 컬렉션에서는 2차원 종이 인형 같은 거대한 부직포 의상을 선보여 다시 한 번 그가 해체주의 패션의 대가임을 느끼게 했다.
해체주의 패션의 연속성 마틴 마르지엘라
단 한번도 자신의 얼굴을 공개하지 않은 미스테리한 디자이너 마틴 마르지엘라(Martin Margiela) 역시 해체주의 패션 디자이너. 그는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의문을 제시하며 패션계 대내외적으로 파괴를 줄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가 해체주의를 표현하는 방식에는 옷뿐만 아니라 옷에 숨겨진 이야기, 의복 아이템이 구성되는 방식 등 패션의 가장 기초적인 요소들을 무너뜨리고자 했다. 형태, 소재, 구조, 테크닉적인 면에서 생산과정을 노출하거나 옛날 방식의 생산 배후에 있는 기술들을 드러냈다. 그 예로 옷의 내부를 외부로 향하게 해 겉으로는 완벽해 보이던 생산의 비밀인 다트, 시접, 스티치, 테일러 마킹 등을 표면으로 거침없이 나타나게 했다.
주로 벼룩시장이나 스트리트 스타일에서 영감을 받은 마틴 마르지엘라는 일상 속 의복의 형태와 소재를 섞거나 변화시켜 그의 컬렉션에 스며들게 했다. 익숙한 아이템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완성함으로써 정형화된 패션계에 도전해 온 것.
1991년 봄/여름 컬렉션에서는 50년대 중고 연회가운들이 회색으로 염색된 채 조끼로 재탄생했고, 낡은 진과 데님 재킷들도 재작업을 걸쳐 롱 코트로 변신했다. 1993년 가을/겨울 컬렉션에서도 벼룩시장에서 가져온 4벌의 블랙 드레스를 한꺼번에 봉제한 드레스를 선보였으며 재활용된 소재나 오래된 액세서리를 이용해 새로운 디자인을 완성했다. 또 1997년 가을/겨울 컬렉션에서는 미완성된 천을 자유롭게 두르거나 휘감아 옷의 구조를 무너뜨린 새로운 스타일을 제시하면서 여러 시즌 동안 현대 패션 산업에 동요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발전시켜 오고 있다.
개인의 자유를 추구하는 사회적인 분위기 덕분에 최근에는 거리낌 없이 자신의 개성을 살린 해체주의 패션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등장하고 있다. 거리에서는 릭 오웬즈(Rick Owens)와 다미르 도마(Damir Doma)를 연상케 하는 아방가르드한 ‘고딕’룩의 젊은 친구들을 쉽게 찾을 수 있고, 무한도전 출현 당시 정재형이 입고 나왔던 구멍 난 발맹 티셔츠는 고가임에도 없어서 못사는 아이템이 되었다. 오히려 유행을 타지 않고 사용자에게 옷에 대한 애착과 창의력을 제시하는 것이 해체주의 패션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지.
[매경닷컴 MK패션 임소연 기자 news@fashionmk.co.kr/사진= 다미르 도마, 릭 오웬즈,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 홈페이지 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