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찐 아줌마는 가라? ‘사이즈 마케팅’의 진실
- 입력 2013. 05.22. 15:15:00
- [매경닷컴 MK패션 김희선 기자] 미국 캐주얼 의류브랜드 아베크롬비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뚱뚱한 고객은 매장 물을 흐린다”는 마이클 제프리스 사장의 주장에 따라 여성의류에서 엑스라지 이상의 제품을 만들지 않음이 밝혀지면서 전 세계 소비자의 거센 항의를 받고 있는 것.
통계청에서 발표한 비만인구조사비율에 따르면 2010년 15세 이상 비만여성비율은 미국 36.3%, 한국 4.7%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비만 인구가 상대적으로 적은 국내에서 특히 다이어트에 민감한 젊은 여성을 타깃으로 한 브랜드가 큰 사이즈 의류를 만들지 않는다고 화를 낼 소비자는 많지 않다. 오히려 기성품이 맞지 않는 몸을 탓할 뿐.하지만 국내에서도 아베크롬비 사장처럼 드러내놓고 말을 하지 않을 뿐, 사이즈를 통해 고객의 물(?)을 관리한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의류업계에서 사이즈는 매우 민감한 주제다. 같은 치수의 옷이라 해도 브랜드마다 사이즈가 다르다. 의류매장에서 “저희 브랜드는 옷이 작게 나와요” 또는 “저희 옷이 원래 좀 커요” 등의 설명을 자주 듣는다. 옷이 작게 또는 크게 나온다니. 이는 곧 일반적 사이즈 체계를 따르지 않음을 브랜드 스스로 인식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이를 알면서도 왜 다르게 만들까?
한 여성복 브랜드 피팅 모델의 신체 치수는 기본이 되는 55사이즈보다는 44사이즈에 가깝다. 자연히 이 브랜드에서 만드는 55사이즈 옷은 다른 브랜드의 옷보다 작다. 브랜드 게시판에는 팔뚝과 허벅지가 꽉 껴서 들어가지 않으니 옷 좀 크게 만들어달라는 소비자의 항의가 넘쳐나지만, 브랜드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여기엔 브랜드에서 내세우는 타깃층과 실제 구매고객 연령대의 차이에서 비롯한 딜레마가 숨어있다. 일반적으로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대학 신입생은 나이보다 노숙해 보이는 옷을 찾다가, 20대와 30대를 거치면서 본인의 옷 스타일을 잡아나간다. 물론 나이가 들면서 자신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을 제대로 찾기도 하나, ‘나이 먹음’을 부정하며 점점 캐주얼브랜드를 기웃거리는 3040 여성들도 부지기수다. 한때 “20대엔 타임, 30대엔 마인, 40대엔 시스템”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유행하는가 하면, 엄마와 딸이 같은 캐주얼브랜드에서 쇼핑하거나 20대를 겨냥한 SPA 매장이 경제력 있는 40대 여성들로 붐비는 현상이 이를 증명한다.
브랜드 입장에서 이들은 매출을 올려주는 고마운 손님이지만, 2030 커리어우먼을 겨냥한 브랜드가 40대 중년여성 사이에서 인기를 얻는 사실이 마냥 고맙지만은 않다. 그렇다고 물 좋다고 소문난 클럽처럼 매장 입구에서 물 관리를 할 수도 없는 노릇.
이때 사이즈를 통해 어느 정도 필터링이 가능하다. 옷을 약간 작게 만들면 군살이 붙은 중년 고객은 자연스럽게 걸러지는 것. 매출도 중요하지만 브랜드의 이미지도 유지해야 하는 브랜드 측의 고도의 전략인 셈이다.
하지만 소비자가 그리 녹록하지만은 않다. 나이가 들었다고 배가 나오고 몸이 불긴커녕, 꾸준한 운동과 관리로 처녀 시절 버금가는 몸매를 유지하는 4050세대가 넘쳐나는 것. 뒷모습만 보고는 도저히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요즘, 연예계에서도 차화연과 박준금처럼 아름다운 얼굴에 호리호리한 몸매까지 갖춘 중년스타가 인기다.
한편 브랜드에서 의도적으로 옷을 크게 만들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66사이즈를 입는 여성이 한 브랜드에서는 55사이즈 옷이 맞을 경우, 본인의 살이 빠졌다고 착각하며 이 브랜드에 대한 기분 좋은 경험을 갖게 되고 이때의 경험이 브랜드 충성도로 연결될 수 있다는 논리다. 44사이즈 열풍이 불던 시절, 대부분의 44사이즈 의상이 사실은 55사이즈임이 밝혀져 많은 여성들을 실망시키기도 했다.
이처럼 브랜드마다 제각각인 사이즈 때문에 소비자는 본인의 정확한 치수를 모른 채 매번 옷을 입어보고 거울을 살펴야만 하는 불편을 감수한다. 또한 사이즈와는 별개로, 나이보다는 ‘군살 없이 날씬한 몸’이란 규격화된 미의 기준이 전 연령대에 걸쳐 점점 강력해지고 있다.
[매경닷컴 MK패션 김희선 기자 news@fashionmk.co.kr/사진= MK패션, photopar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