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업계는 조선시대? `생계형` 점주의 목줄을 쥔 본사의 왕권 놀이 [갑을 대격돌 ⑩]
입력 2013. 05.30. 14:12:10
[매경닷컴 MK패션 조혜원 백혜진 기자] 남양유업과 백화점 직원의 자살 사건으로 갑을 관계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하지만 누군가의 피 흘리는 희생이 있기 한참 이전부터 이러한 부조리는 우리 삶 곳곳에 늘 있어왔다.
요즘 길을 걷다보면 한 집 건너 하나씩 있는 대기업의 화장품 브랜드도 피해갈 수 없다. 톱스타의 아름다운 비주얼을 내걸고 깜찍한 의상의 직원들이 반기는 그 숍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부조리들을 샅샅이 파헤쳤다.
미샤, 에뛰드 하우스, 토니모리, 스킨푸드, 네이처 리퍼블릭 등. 그 이름을 다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길거리에 화장품 브랜드숍들이 우후죽순 늘어나고 있다. 영등포 지하상가 안에만 10여개의 브랜드숍이 입점해있고, 지하상가와 멀지 않은 타임스퀘어 광장 3층에도 브랜드숍 공간이 형성돼 있다. 심지어 이러한 현상은 유동 인구가 많은 A급 상권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구로구 역세권의 M 브랜드숍 점주는 “역세권이라 하지만 유동 인구가 많은 시내도 아니고 주택가에 가까운 상권인데 벌써 근처에 비슷한 브랜드숍이 3개가 더 들어왔다”며 울상을 지었다.
이 숍들은 또한 너나 할 것없이 50%, 70%, 1+1 등의 행사 판촉물을 걸고 있다. 이런 행사가 없을 때는 들어가기가 꺼려질 정도다. 이런 행사는 점주들의 입장과 상관없이 본사에서 진행한다고 점주들은 말한다. 세일을 찾는 손님이 많기는 하지만 세일 외 기간의 매출이 급감하고 세일 기간마저도 주변 타 브랜드의 행사 기간과 겹치는 등 매출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 한 점주는 매출의 감소와 반복적인 행사를 견디지 못하고 폐점을 결심하며 ‘땡처리’ 세일을 감행했다. 가맹 계약에 위반되는 것이지만 어쩔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하지만 점주들이 계약까지 위반하며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데는 위와 같은 가시적인 현상이 아닌 곪을대로 곪은 본사와의 부당한 갑을 관계가 자리잡고 있다.
전국유통상인연합회에 점주들이 보낸 이야기들을 정리해봤다.
첫째, 권리는 상실하고 의무만 강요하는 본사 평가와 계약 해지에 대한 위협. 계약서 중 중간 관리 매장을 평가해 하위 15% 매장은 계약 해지를 하겠다는 조항이 있다. 평가 항목은 매출부터 교육 가담 여부까지 경영 전반에 대한 것으로, 명목은 평가이지만 속뜻을 해석하면 시키는대로 해라라는 의미다. 평가에서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로 계약 해지를 할 수 있다는 것. 이 조항으로 부담을 떠안고도 항상 본사의 요구에 따르는데도 한 점주는 본사 법무팀 명의로 갑작스럽게 계약 연장을 하지 않겠다는 내용 증명을 받기도 했다. 본사에 물으니 계약은 연장될 것이지만 압박 차원에서 보낸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는 마치 왕권 강화를 위해 신하들의 자리를 놓고 숨통을 조이던 조선 시대를 방불케한다. 심지어 이런 압박은 매출이 좋은 매장을 위주로 해 본사 직영점으로 돌리려는 의도라는 의심까지 사고 있다.
둘째, 과도한 판촉비 요구. 판촉비는 본래 본사 지원분과 점주 부담분이 나누어 진다. 본사 지원 부분은 문제가 없지만 점주 부담분의 과도한 판촉을 일방적으로 요구한다는 것이 문제다. 한 매장은 판촉비가 100만원을 넘기면 운영에 지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본사에서 평균 150만원 혹은 200만원에 가까운 판촉을 강매 당해 곤경에 처했다. 본사측에 아무리 시정을 요구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셋째, 최소 인원 규정. 한 브랜드의 계약서에는 매출 5,000만원 이상 매장은 5인 이상의 사원을 써야한다는 조항이 있다. 실제로 운영을 하다보면 5,000만원 매출이면 직원 5명은 최대 인원 수준이며, 직원 이직율도 높아 직원을 항상 5명을 유지하는 것은 매우 힘들다.
넷째, 행사 제품에 대한 수수료. 할인 행사와 정상 제품 무료 증정 행사시 일정한 비율로 본사에서 매출액의 수수료를 부담한다. 하지만 본사가 강제한 할인 행사에서도 일정 부분을 점주들에게 일방적으로 부담시키고 그 부담시킨 부분도 세금계산서에서 누락시킨 채 수수료를 차감해서 세금계산서를 발행하고 있다. 그 근거를 요구해도 자료를 받을 수 없었다.
위와 같은 부당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생계형’ 점주들은 대기업의 ‘우월한’ 지위에 도전할 수 없다. 당장 불이행시 계약 해지라는 생계가 걸린 문제로 직결되기 때문이며, 점주 중 대다수는 고액의 권리금을 주고 매장을 인수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매장 포기는 삶의 위협이다. 심지어 몇몇 브랜드는 매장의 양수양도조차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본사의 계약 해지 강압으로 매장을 매도하려고 해도 그마저 불가능한 상태다. <계속>
[매경닷컴 MK패션 조혜원 백혜진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 에뛰드하우스, 더페이스샵, 네이처 리퍼블릭, 토니모리 홈페이지]

더셀럽 주요뉴스

인기기사

더셀럽 패션

더셀럽 뷰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