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름다운 화장품 업계 속 잔인한 먹이사슬 [갑을 대격돌 ⑩]
- 입력 2013. 05.30. 15:30:28
- [매경닷컴 MK패션 조혜원 백혜진 기자] 너무 많은 가맹점수, 점주들에게 부담을 주는 과도한 행사와 판촉, 압박적인 평가와 계약 해지 위협 등 화장품 매장 점주들이 설 자리가 없어진 데는 대기업의 화장품 시장 점유가 한 몫 했다.
한 점주는 A브랜드가 중소기업이었던 시절에는 점주들을 투자자이자 동행자로 대하며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고 말한다. 2010년 B사가 인수하던 시점을 점주들은 ‘악몽’이라고 표현했다. 처음에 중간 관리 매장들을 직영으로 돌리려고 하다가 점주들의 반발로 중간 관리 계약서를 점주들에게 불리한 내용의 위탁 가맹으로 재계약했다. 중간 관리에서 위탁 가맹으로 바꿀 때는 점주들이 부담했던 인테리어 비용을 본사에서 지불해줘야 하는데 이것에 대한 언급도 없었으며, 2년씩 계약되던 계약서도 1년 단위로 일방적으로 바꿨다. 이것이 본사에게 계약 해지의 정당성을 확보해준다는 것을 알았지만 점주들은 대기업 앞에서 어떠한 대처를 할 수가 없었다.이런 시스템에 '피가 마른다'는 표현을 사용한 점주는 “매장 매니저에게 점주가 교체될지도 모른다는 말을 흘리고, 파트장은 수시로 점주를 불러 재계약 될지 안 될지 모른다는 압박을 한다. 매출 부진의 책임은 수시로 추궁하면서 본사의 지원은 없고 점주들의 생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수익을 다시 매출 향상을 위해서만 사용하라고 하며, 매출 향상이 되더라도 그 혜택은 본사와 그 직원들이 갖는 구조다”고 토로했다.
본사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비슷한 브랜드들이 계속해서 생겨나고 매장이 늘어남에 따라 브랜드 생존 자체를 위협받고 있다는 입장이 있다. 또 점주들에게 무서운 호랑이인 본사를 휘두르는 슈퍼갑인 백화점, 대형 마트, 면세점에게 브랜드 파워를 보여줘야 하는 고통 또한 있다.
예를 들어 백화점에 잘못 보이면 1년에 한 두 번 있는 리뉴얼 공사때마다 브랜드 매장 위치가 점점 좋지 않은 곳으로 밀리는 것. 또 백화점 내 매출이 부진한 매장 직원에 대한 교체 요구 등 계속해서 압박을 받기도 한다. 입점 시 높은 수수료 등 불공정 계약은 백화점과 본사 사이에서도 은밀하게 일어나고 있으며, 심지어 브랜드 본사에서는 백화점 입점 계약은 절대 기밀이라 말할 수 없다는 얘기만 돌아왔을 정도로 눈치를 보고 있는 실정이다.
결과적으로 가맹점은 본사에게, 본사는 백화점 혹은 대형 마트에게 먹히는 먹이 사슬을 이루고 있는 셈. 하지만 자연의 섭리와 같이 먹고 먹히는 관계가 아닌 백화점에서 내려온 압박을 본사에서는 어느 정도 받아들이고 자신들의 입장을 더해 가맹점이나 매장 직원에게 떠안기고 있는 시스템이 더욱 문제를 심화시키고 있다.
갑을 사건이 파문을 일으키며 본 기사를 취재하면서 많은 곳에서 ‘협의 중이라 말할 수 없다’라는 대답을 들었다. 백화점에서도 이번 사태를 통해 브랜드 측에 접촉해 새로운 협약을 바라고 있으며, 한 브랜드 본사에서도 유통 관계자와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정거래위원회에서는 하청 직원들에 대한 가이드 라인을 정해 6월 중 발표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공정거래위원회의 제도는 권고 사항으로 강제성이 없어 그에 따른 다른 압박이 필요할 것이며, 이를 배제한 백화점, 본사, 가맹점 사이의 자율적인 해결 방안이 가장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논란과 이슈를 잠재우기 위한 표면적인 협의, 또한 이번 협의 사항이 또 다시 ‘갑’의 위치를 이용해 먹이 사슬의 마지막에 있는 가맹점들의 희생을 발판으로 극복하려는 의도는 없어야 하겠다. 먹이 사슬은 하위 개체가 없으면 상위 개체도 생존할 수 없다. 화장품 업계의 포화된 경쟁 시장 속, 갑과 을의 관계를 내세워 을의 생존을 압박할 것이 아니라 그 위기를 본사와 가맹점이 함께 극복 방안을 찾는 것이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방법이다.
[매경닷컴 MK패션 조혜원 백혜진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MK패션, photopark.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