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거리 화장품 판매, 판매자는 합법! 구매자는 사기!
- 입력 2013. 06.10. 13:28:53
- [매경닷컴 MK패션 조혜원 기자] 길거리에서 낯선 사람이 ‘잠깐만요’를 외치며 붙잡는 경우는 크게 세 가지다. 길을 물어보는 경우, 흔히 말하는 ‘도를 아십니까’, 그리고 화장품 설문 혹은 테스트를 해 보라는 경우. 이 중에서도 10대, 20대 초반 여성이라면 세 번째 케이스, 화장품 설문을 해 보라고 붙잡는 낯선 이를 특별히 조심해야 한다.이들은 보통 승합차나 카페로 사람들을 데려가 처음에는 간단한 화장품 설문을 하거나 피부 타입을 체크해준다. 하지만 곧 고가의 화장품 구매를 부추기기 시작한다. 그들이 판매하는 화장품은 50~90만원대로 보통 6~12개월로 나눠 지불하도록 권유한다. 10개월, 12개월에 나눠서 내면 한 달에 3~5만원 정도인데 알바비로도 충분하지 않냐고 유혹한다. 그렇기에 그들은 주 타깃은 할부와 경제 개념이 불분명한 10대와 20대 초반이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구매한 사람이 대부분 차에서 내린 순간 이 구매에 대해 후회를 한다는 것. 그도 그럴 것이 이 화장품들은 가격에 비해 화려한 판매원의 언사 외에는 특별한 점이 없다.
‘그런 데 넘어가는 사람이 있을까 했는데 그게 나일 줄 몰랐다’는 것이 구매자들의 말로 그 정도로 판매원들의 말솜씨가 유려하다는 것. 진피층에 침투해 6개월 안에 피부가 몰라보게 변할 수 있다는 증명되지 않은 말부터 웬만해선 주지 않는다는 VIP 카드를 언급하기도 한다.
자신을 피해자라고 표현한 A씨는 “21살 때 길에서 간단한 화장품 설문 조사를 해 달라고 해 봉고차에 탔다. 처음 들어보는 E 브랜드 화장품을 손등에 발라주고 몇 번 두드리더니 특별한 기술을 도입해 흡수력이 남다르다고 했다. 16종 세트에 원래 95만원인데 10개월동안 매달 5만5천원씩만 내게 해준다며, 이번에 구입하면 아무에게나 주지 않는 프리미엄 회원 자격을 줘서 다음 구입시에는 95만원 짜리를 14만5천원에 살 수 있게 해주겠다고 했다.”고 구체적인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뭐에 홀린 것처럼 고가의 화장품을 구입하고 차에서 내리고 나서야 정신이 들었고, 인터넷에 E 브랜드를 검색해보니 온통 ‘사기 당했다'는 글만 나왔다.
비슷한 상황을 겪었던 구매자들을 여럿 만나본 결과, 이 판매원들이 하는 말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샘플이라도 받아가라’, ‘추첨해서 화장품 세트를 선물로 주겠다’를 시작으로 차에 오른 다음에는 ‘이번에 국내에 론칭했다’, ‘홈페이지가 있다’, ‘가격이 하루에 1천원대 꼴이다’, ‘VIP 카드를 특별히 발급해준다’, ‘아는 사람들만 알아서 연예인들 사이에서는 유명하다’, ‘프랑스 백화점에서는 원래 유명한 제품이다’ 등등.
심지어 한 구매자는 비욘세가 광고했다는 말을 믿고 L 브랜드를 구입했는데 거짓말이었다고 했다. 이 브랜드를 검색해보니 ‘비욘세 광고’, ‘비욘세 크림’이라는 게시글들이 연이어 나오는 것을 보니 한두 명한테 허위 광고를 한 것이 아닌 듯 했다. 게다가 론칭한 지 5개월 됐다던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2~3년 전부터 쓰여진 글들이 수두룩했다.
또 ‘프랑스 백화점에 입점해있다’라는 말도 거짓이었다. 프랑스에서는 이미 유명하고 이번에 국내 론칭해 지금 구매해서 VIP 회원이 되면 앞으로 엄청난 이익을 볼 수 있다던 F 브랜드는 프랑스에 입점한 적이 없는 국내 브랜드였다. 프랑스 백화점 사진 자료를 직접 보여주기도 하고, 유망한 자사 브랜드 쇼핑몰 계정을 만들어준다며 그 곳에서 친구가 구입하면 혜택을 주겠다는 등 다단계적 특성을 보이기도 했다.
이들 브랜드의 홈페이지 후기 게시판에는 ‘사기인줄 알았는데 효과 짱’, ‘걱정했는데 괜히 걱정했어요’ 등 포털 사이트 후기와는 전혀 다른, 다분히 사기를 당했다고 생각하는 구매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의도적인 후기들이 많이 올라와 있다. 또 제품의 특징을 소개하는 페이지에는 ‘유사 성분’, ‘다양한 기능 개선’, ‘안전한 성분’ 등 애매한 표현들이 주를 이뤘다.
결과적으로 이런 말들에 현혹돼 계약서에 싸인을 한 다음 구매자들에게 남는 것은 근본을 알 수 없는 고가의 화장품 세트와 할부금 독촉 전화뿐이다. 연체 시에는 이자까지 붙어 심지어 얼마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이 돈 때문에 6~8년간 시달린 사람도 있다.
주 구매자인 10대와 20대 초반의 경우 자신의 손으로 계약서를 썼다는 압박감 때문에 뭔가 잘못됐다고 느끼면서도 혼자 끙끙 앓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몇 년씩 고생할 필요가 없다.
이러한 판매는 방문판매에 해당되며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에서 계약서를 교부 받은 날부터 14일(계약서를 교부받지 않은 경우에는 방문 판매자의 주소를 알 수 있었던 날로부터 14일) 이내에 계약을 철회할 수 있다(동법 8조 1항)고 다루고 있다. 단, 재화가 멸실 또는 훼손 됐을 때는 제한될 수 있으니 의심이 간다면 절대 물건을 사용하거나 훼손해서는 안 된다.
게다가 판매자들이 계약서를 직접 썼으니 돌이킬 수 없다고 겁을 주는 것과는 달리 미성년자는 부모의 동의가 없었다면 14일, 물건 훼손의 제약없이 계약을 파기할 수 있다. 법적 미성년자는 만 19세로 실제 20살, 21살도 해당될 수 있으니 계약 파기를 원하는 구매자는 참고할 것. 계약서 상단에 자필로 ‘반품하지 않겠습니다’라는 문구를 적게 하기도 하는데 이는 법적 효력이 없다.
계약 파기는 공정거래위원회, 한국소비자원, 시도지사 또는 시장, 군수 구청장 등에게 피해 구제를 신청할 수 있고, 사업자는 물품 수령일로부터 3일 이내 대금을 환급해야 한다. 또 계약서를 작성할 때 대부분 1만원의 계약금을 받는데, 계약 파기를 요구할 경우 소비자 측에서 먼저 파기했으니 돌려받을 수 없다고 말하는 판매자 측의 말과 달리 위의 기관을 통해 진행해 계약금도 돌려받은 예가 다수다.
판매 회사쪽에 물건을 돌려 보낼 때 내용 증명을 작성해 3부 복사해서 하나는 회사에 보내고 하나는 우체국에 맡기고 하나는 본인이 가지고 있는 것이 좋다. 이렇게 해야 물건을 계약 15일, 16일 뒤에 회사에서 받더라도 혹은 그렇게 우기더라도 내용 증명상의 날짜로 인정받을 수 있다.
판매 회사에서는 이런 사례에 대해 ‘우리는 위법이 아니다’라고 대답한다. 실제로 이런 스타일의 판매는 방문 판매로 인정돼 그 자체만으로 사기라고는 단정할 수 없다. 하지만 구매자들 대부분이 자신을 피해자라고 여긴다는 점, 판단이 서투른 어린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 50~90만원대의 고가를 할부나 혜택이 확실치 않은 VIP 등을 언급해 적은 액수인 양 포장한다는 점에서 ‘사람을 속여 착오를 일으키게 함으로써 일정한 의사 표시나 처분 행위를 하게 하는 일’이라는 ‘사기’의 뜻에 크게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교묘하게 법을 피해 판매자 입장에서는 합법, 구매자 입장에서는 위법을 만드는 이런 부류의 사건은 위의 계약 파기 방법 등을 참고해 소비자가 스스로 자신을 지킬 수 밖에 없다.
[매경닷컴 MK패션 조혜원 기자 news@fashionmk.co.kr/사진=MK패션, photopar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