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을 앞서 간 우리 역사 속 그루밍족 [전통 화장법의 재해석 ➄]
입력 2013. 06.14. 14:38:57
[매경닷컴 MK패션 남자영 기자] 예쁘장한 외모의 남성이 인기를 얻으며 여성처럼 외모를 가꾸는 남자들이 점점 늘고 있다. 그루밍족이라 불리는 이들에게 비비크림, 아이크림, 피부 관리, 눈썹 정리 심지어 아이라인 그리기 등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남성들의 아름다운 외모에 대한 동경과 외모를 가꾸는 행위는 비단 오늘날의 일만이 아니었다.
삼국유사를 보면 여섯 소국가의 왕으로 추대된 박혁거세는 외모가 아름다웠고 동천에서 목욕을 하자 몸에서 광채가 났다고 전하고 있다. 통일 신라를 이끌었던 화랑이 되기 위해서는 미소년이어야 하는 조건이 있었다. 조선 시대에도 하얀 얼굴에 정갈한 옷차림의 양반이 선망의 대상이었다. 이러한 미의 기준이 옛 시대에 존재했던 것처럼 과거 남자들 역시 그에 따른 아름다운 외모를 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했다.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과거에도 백옥같이 하얀 피부가 미의 첫째 조건이었다. 흰 피부를 만들기 위해 백분을 사용해 얼굴을 하얗게 만들었다. 미소년 집단이었던 신라의 화랑은 얼굴에 분을 바르고 홍화를 사용해 볼과 입술은 빨갛게 칠했다고 알려졌다. 또한 이들은 화려한 색의 옷에 귀고리를 착용하고 구슬로 장식한 모자를 썼다. 당시 신라는 화장 기술과 화장품 제조기술이 우수해 납중독을 유발하는 백분 대신 연분이 한 승려에 의해 개발돼 널리 사용됐다.
조선 시대에도 여전히 흰 얼굴이 동경의 대상이자 양반의 특권이었다. 남자들은 흰 얼굴을 만들기 위해 분세수를 즐겼다. 춘향전에서도 이몽룡이 춘향이를 만나기 전에 분세수를 해 얼굴을 하얗게 만들었다는 대목이 나온다. 분세수는 백분을 비누칠 하듯이 바른 뒤 씻어내는 것으로 조두(팥·녹두가루로 만든 비누) 및 잿물 또는 콩 껍질 삶은 물로 세수해 얼굴을 희게 했다.
얼굴을 하얗게 하기 위한 노력은 피부 관리로 이어진다. 고려 시대 남자들은 면약이라는 액체 화장품을 사용해 피부를 가꿨다. 면약은 손과 얼굴을 부드럽고 희게 만드는 피부 보호제 겸 미백제로서 오늘날 영양크림과 로션의 중간 형태라 볼 수 있다.
조선 시대 남자들은 수세미 끓인 물 등의 미안수를 만들어 얼굴을 가꿨고 꿀찌꺼기로 오늘날의 팩을 만들어 기미, 주근깨, 흉터가 없는 투명한 피부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오이 꼭지를 얼굴에 문지르기도 했다.
눈썹이 얼굴의 전체 인상을 결정한다고 판단해 눈썹을 그리는 것도 일반적이었다. 신라의 남자들은 굴참나무와 너도밤나무 등의 나무 재를 유연에 개서 미묵을 만들고 눈썹을 그리는 데 사용했으며, 팔(八)자 눈썹을 아름다운 남자 눈썹으로 여겼다.
얼굴을 가꾸는 것뿐만 아니라 향수와 향료를 사용해 몸에서 좋은 향기가 나도록 노력했다. 향료는 일반적으로 향기 짙은 식물을 그늘에서 말려 가루를 내거나 향나무를 잘게 토막 내고 동물의 일부 등을 고형 혹은 분말 형태로 제조해 사용했다. 향수는 향내 나는 물질을 압착시켜 얻거나 향기 짙은 꽃잎을 기름에 재어 얻은 화정유, 동식물 등을 기름에 용해시킨 향유였다.
삼국 시대의 작은 향유병이 많이 출토되는 것은 이미 그 시대에도 향료 사용이 널리 퍼졌다는 것을 말한다. ‘고려도경’에는 고려 사람들이 향료를 담은 향낭을 즐겨 착용했다고 전한다. 조선 시대에도 역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향낭을 허리춤에 차고 다녔고, 관리와 승지는 향낭 착용이 의무 사항이었다.
이외에도 고려 시대 사설시조에 백발을 검게 하려 흑칠한다는 내용을 보면 당시에도 머리카락 염색이 널리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조선 시대 양반들은 허리춤에 각종 빗을 휴대하고 다녔고 남성 전용 경대 또한 발견되는 것을 보면, 외모를 단정하게 치장하고 아름다워지기 위해 원조 그루밍족들 역시 많은 시간을 할애했음을 추측할 수 있다.
[매경닷컴 MK패션 남자영 기자 news@fashionmk.co.kr/사진= KBS ‘성균관스캔들’ 방송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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