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면도와 남자다움, 마초남과 그루밍족 사이에서의 이중적 태도
- 입력 2013. 06.21. 16:24:54
- [매경닷컴 MK패션 남자영 기자] 최근 축구선수 기성용이 한 면도기 회사의 광고모델로 선정됐다. 그는 축구실력과 함께 말쑥하고 깔끔한 외모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지난해에는 베이징 올림픽 배드민턴 금메달리스트인 이용대가 모 브랜드 면도기 광고 모델로 활약했다. 그 역시 출중한 실력과 더불어 이승기를 닮은 훈훈한 외모로 많은 인기를 구가했다.과거 면도기 광고에는 야성적인 이미지의 남자들이 주로 등장했다. 이들은 한결같이 짙은 수염에 조각같이 잘생긴 외모를 소유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남자들은 지금도 선호되는 광고모델로 배우 차승원이 대표적이다.
이들이 등장하는 광고는 대부분 터프한 남성이 면도를 통해 세련되고 깔끔한 도시 남자로 변신하는 과정을 담는다. 이 과정에서 면도하는 행위 자체는 말 그대로 멋있게 묘사된다. 때로는 미인이 동반되며 성적 코드를 내포하기도 한다.
터프하게 잘생긴 외모의 모델들이 면도기 광고에 등장했던 것은 남자다움 또는 남성미에 관한 사회적 시각과 관련이 깊다. 오랜 시간 동안 남성적인 것은 거칠고 강한 이미지와 연결됐다. 그리고 면도기는 흔히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지고 면도하는 행위 자체는 남성의 특권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따라서 야생과 어울리는 남자들이 남성성을 극대화하는 효과를 내며 광고에 등장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는 마초적 남성 모델들이 아닌 운동선수의 등장이 두드러졌다. 박지성, 데이비드 베컴, 로저 페더러, 티에리 앙리, 타이거 우즈, 데렉 지터 등 각 분야에서 최고의 선수로 인정받는 스포츠 스타들이 광고에 등장했다. 그들이 모델이 된 결정적 이유는 그들의 전 세계적 유명세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외에도 이들은 역시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는 경기장에서 생존한 강한 남성을 상징한다. 그리고 부와 명예를 거머쥔 성공한 남자를 연상시킨다. 따라서 스포츠 스타들이 면도기 모델로 빈번하게 기용된 것은 이들이 기존의 남성적인 매력을 어필할 수 있음과 동시에 성공한 남자를 표방하는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남자다움을 인지하는 시각이 변한 것도 이에 영향을 미쳤다. 과거와 달리 남자다운 매력은 터프함에 국한되지 않으며 사회적 요소가 결부된 의미를 지닌다. 요즘 남성 매력지수의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성공에서 파생한 부와 명예이다. 그러므로 남자다움을 어필하는 면도기 광고에서 변화된 남자다움의 상징인 스포츠 스타들을 볼 수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 된다.
기성용과 이용대가 면도기 광고에 등장한 것은 남자다움에 관한 또 다른 변화로 볼 수 있다. 스포츠 선수인 이들은 경기장 안에서 승부사로서 강한 남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반면 밖에서는 깔끔한 외모와 함께 부드러운 이미지를 보여준다. 이는 최근 남성 트렌드인 그루밍족 이미지와 맞아떨어진다. 이들은 고된 훈련을 소화한 후에도 거울에 손을 뻗을 듯한 느낌을 지니고 있다.
면도행위 자체는 여전히 남성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다만 예전처럼 터프하게 밀어버리는 것이 아닌 가꾸고 다듬는 행위로의 인식이 달라졌다. 따라서 이들이 면도기 광고모델이 된 것은 기존의 강함과 성공의 요소를 포함한 남자다움에 가꿈이라는 원소가 추가된 사회적 시각의 변화와 그 맥을 같이 한다.
오랫동안 단순히 자연적인 터프함만을 의미하던 남자다움이지만 최근에는 때에 따라 상반된 의미를 나타낼 수 있다. 그럼에도 남자다움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매력적으로 들리며 앞으로도 다른 의미를 유연하게 받아들일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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