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이 못 당하는 흔한 중학생의 컴퓨터 가격[10대의 문제적 소비⑥]
입력 2013. 06.24. 13:23:02
[매경닷컴 MK패션 조혜원, 남자영 기자] IT 관련 커뮤니티를 보다보면 재미있는 게시글을 볼 수 있다. 각 100만원을 훌쩍 넘는 CPU와 그래픽 카드를 장착한 컴퓨터를 자랑하는 글이 올라오고 ‘부럽다’는 댓글이 이어진다. 그리고 ‘너무 부러워요. 도대체 님 직업이 뭐에요?’라는 한 댓글에 ‘중학생이에요.’라는 작성자의 댓글이 달린다.
놀랍게도 이런 글은 한 두 개가 아니다. 10대 남자 학생들 사이에서는 IT 기기에 대한 로망이 만연하게 자리잡고 있다. 10대에 학업 외에 남학생들이 접하기 가장 쉬운 ‘게임’을 분모로 컴퓨터에 대한 집착이 생겨나는 것. 앞서 나온 CPU, 그래픽 카드는 일반적으로 20~30만원대인데 이런 커뮤니티에서 그보다 약간 고가인 30만원대 제품은 자랑거리로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 보통 40만원 이상부터 100만원 후반까지를 기본으로, 이런 가격의 그래픽 카드를 2~3개씩 장착해 글을 올리기도 한다.
이는 영상 전문가, 사진 전문가, 설계자, 공학자들이나 사용할 법한 성능이다. 사실상 무의미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런 성능은 10대들이 성능보다 수치 자체에 관심이 쏠려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런 이유로 컴퓨터의 성능을 수치로 뽑은 뒤 스크린 샷으로 저장해 올리는 것이 하나의 문화이며 자신들 스스로도 이를 ‘점수 놀이’라고 부른다.
수치에 집착한 소비는 주변 기기에도 이어진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스피커, 헤드폰, 이어폰이다. 스피커는 최근 뱅앤올룹슨, 야마하, B&W가 인기다. 가격이 천차만별이라 언급은 어렵지만 웬만한 어른들도 쉽게 사기 힘든 가격의 기기들이다.
이어폰은 웨스톤 랩스, UE가 가장 인정받는다. 이들은 이어폰에 보청기용 장비를 3~9개씩 장착해 저음, 중음, 고음을 따로 잡아내는 특화된 기능을 자랑하는 브랜드다. 직접 귀의 본을 떠서 자신의 귀에 맞춘 주문제작도 가능하다. YG, SM 아이돌들이 이 이어폰을 하고 나오며 이슈가 되면서 10대들 사이에서 더욱 인기가 많아졌다. 이 이어폰을 소지한 최모군(18)은 “솔직히 프로가 아니어서 소리의 차이까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 이어폰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친구들 사이에서 우상이 될 수 있어요.”라고 구매한 이유를 말했다. 또 “우리들끼리도 스피커, 헤드폰을 구입하는 것을 ‘장비병’이라고 부르는데,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병이죠.”라고 덧붙였다.
IT 기기 분야에서 10대들이 걸렸으면 하는 병은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기변병’.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기기를 변경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로, 10대들은 보통 이를 위해 중고 거래를 활용한다. “신제품이 나온다는 소식이 들리면 가격이 내려가기 전에 얼른 기존 제품을 팔고 조금 기다렸다가 신제품을 사는 것을 반복해요.”라는 것이 자칭 기변병이라는 김모군(16)의 이야기다. 새로운 제품을 사용해보고 싶은 욕구도 있지만 얼리어답터라는 타이틀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란다.
기변병의 반대로 예전 시리즈를 찾아서 모으는 것도 IT 분야에서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양상이다. 예를 들면 애플 아이팟 나노는 이제 7세대까지 출시됐는데 1, 2, 3, 4세대 제품을 비싼 돈을 주고 어렵게 구입해서 수집하는 것. 이를 방에 전시회처럼 진열하고 사진을 찍어 커뮤니티에 올린다. 애플을 좋아한다는 이모군(19)은 이렇게 모아놓은 블로그나 커뮤니티 글을 하루에 1번씩 들어가서 본단다. 그 사진을 보면 언젠가는 자신도 꼭 저렇게 해야겠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다고. “저희 사이에서는 애플 제품을 여러개 가지고 있는 것을 사과 농장이라고 해요. 저도 빨리 사과 농장을 만들고 싶어요.”라고 기대에 부풀어 말했다.
위와 같이 고가의 기계를 구입할 형편이 안 되는 10대들은 액세서리로 눈을 돌린다. 케이스, USB, 필름 등. 10만원 중후반대의 엘레멘트, 드라코사, 3~5만원대의 인케이스, 벨킨 등의 핸드폰 케이스는 용돈을 모으거나 부모님을 졸라 구입해야 하는 필수 아이템이다. IT 기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케이스라도 트렌디해야 한다는 것이 10대들의 변이다. 보다 저렴한 가품을 구입하기도 하는데, 케이스임에도 가품도 3~4만원대이다.
심지어 IT 액세서리에 대한 로망은 10대들의 패션 트렌드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인케이스 백팩은 노트북 전용 가방이지만 10대들이 생활용 책가방으로 가장 많이 메는 브랜드 중 하나다. 얼리어답터를 중시하는 IT 업계의 빠른 트렌드만큼이나 IT를 반영한 패션 트렌드는 빠르게 바뀌어서 불과 1년전만 해도 핫했던 인케이스는 이미 한 물 가고 최근에는 꼬띠씨엘 백팩이 유행이다.
10대들의 IT 사랑은 여러 가지로 해석해 볼 수 있다. 학업 외에 다른 취미 생활이 어려운 학생 신분으로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는 컴퓨터, 이어폰 등에 대한 기기가 아닌 취미와 오락에 가까운 관심. 거기에서 오는 실용성을 무시한 집착에 가까운 구매 형태인 ‘장비병’, ‘기기병’과 수집, 수치로 드러내고 싶은 과시욕까지.
10대들이 IT 분야에 쉽게 빠지는 이유는 얼리어답터로서 남들보다 앞서 나가 듯 보일 수 있고, 성능과 수치로 나타나 프로같은 모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으로 파악된다. 또 10대들이 이러한 과장된 IT 기기에 대한 애정은 건전한 방과 후 활동, 취미 생활의 부재에서 자신을 어필하기 위해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물건, 소비에 대한 개념이 불분명하게 자리잡은 10대들의 이러한 잘못된 물건에 대한 애정은 성인이 된 후에도 돈, 과시로 자신을 드러내려는 행태로 발전할 수 있다. 또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10대들이 넓은 시각에서 자신의 취미를 찾지 못하고 한 분야에 얽매여있다는 점도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10대들이 자본·물질 만능주의로 성장하지 않고, 건전한 소비, 취미 문화를 만들 수 있기 위해서는 개인의 관심 분야를 개발할 수 있는 분위기 마련이 시급하다.
[매경닷컴 MK패션 조혜원, 남자영 기자 news@fashionmk.co.kr/ 사진=AP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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