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멋쟁이들의 실속 쇼핑지 ‘이태원 시장의 눈물’ [지역상권 현주소②]
입력 2013. 06.24. 13:27:08

[매경닷컴 MK패션 간예슬 기자] 예전에 ‘이태원 시장’하면 국내 패션잡지 에디터 및 바이어 등 실속파 멋쟁이들 사이에서 유명한 쇼핑 플레이스였다.
파란색 간판에 딱딱한 고딕체로 ‘이태원 시장’이라고 쓰여 있는 이곳의 낡고 투박한 외관을 보면 ‘과연 살 만한 것이 있었을까’하는 의문이 생긴다. 그러나 막상 그 안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지갑이 열리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이태원 시장은 홍대보다 올드하고 가로수길보다 촌스럽지만 타 쇼핑지와 비교할 수 없는 매력이 있었다. 바로 ‘이미테이션’ 제품이다. 과거 이태원 시장은 이미테이션 천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명품 브랜드의 모조품이 넘쳐났다.
이 중에는 바느질 등 경미한 하자 탓에 백화점에서 판매할 수 없는 ‘로스’ 제품으로 위장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상인들은 동대문이나 중국 등에서 싼값에 매입한 의류에 명품 브랜드 라벨을 붙이고, 일부러 칼집을 내는 수고를 하면서 판매를 한 것이다.

과거 이태원 시장에 드나들었던 쇼퍼들이 이 같은 사실을 전혀 몰랐던 것은 아니다. 그들이 이미테이션의 위험과 직원들의 불친절한 태도를 감수하면서도 이태원 시장을 선호한 것은 저렴한 가격과 트렌디한 디자인 때문이었다. ‘믿거나 말거나’ 이태원 시장은 해외 컬렉션에서 소개된 제품을 가장 빠르고 저렴하게 살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지난 몇 년 사이 이태원 시장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이태원 지하시장의 입구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동대문표 9,900원 짜리 티셔츠다. 조금 더 들어가 보면 바나나 리퍼블릭, 폴로, 질샌더 등의 브랜드 라벨에 칼집을 낸 로스 제품들도 간혹 볼 수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철 지난 제품으로, 과거 트렌디한 컬렉션 의류와는 차이가 있다.
가장 많이 보이는 브랜드는 아베크롬비로, 10대부터 30대까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만큼 이곳에서 그나마 ‘효자 상품’ 노릇을 하고 있다. 보통 인터넷 쇼핑몰에서 5만 원 대에 판매하는 티셔츠를 이곳에서는 2만 원 대에 구입할 수 있는데, 이 역시 ‘짝퉁’으로 자세히 보면 박음질과 로고 등이 엉성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이태원 시장이 예전의 모습과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활기를 잃었다는 점이다. 보통 ‘시장’하면 떠오르는 북적이며 시끄러운 이미지는 이곳에서 보기 힘든 광경이 됐다. 이태원 시장의 매력이었던 로스 제품 및 이미테이션 제품 판매를 이제 인터넷 쇼핑몰이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태원 시장에서 20년째 액세서리 소매업을 하고 있는 최모(63)씨는 “요즘 하루 종일 하나도 팔지 못하고 갈 때가 많다. 주말도 장사가 안 되기는 마찬가지다”라며 한숨을 쉬었다.
이태원 시장의 몰락은 인터넷 구매대행 또는 직수입 거래 탓도 크지만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한남동 쇼핑 스트리트의 영향도 적지 않다. 지난 2010년 바로 옆 동네인 한남동에 꼼데가르송 플래그십 스토어가 생기면서 하이엔드 브랜드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했고, ‘꼼데길’이 이태원 시장의 유명세를 뛰어넘었다.
한남동에서 이태원으로 이어지는 상권이 과거의 어두운 이미지에서 탈피해 깔끔한 레스토랑 및 쇼핑지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반면, 정작 터줏대감인 이태원 시장은 점점 빛을 잃어가고 있다.
[매경닷컴 MK패션 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 진연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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