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을 만드는 보이지 않는 손 `창신동 봉제골목` [패션 다큐⑭]
입력 2013. 06.26. 18:00:16

[매경닷컴 MK패션 남자영 기자] 화려한 동대문 쇼핑센터 너머에는 창신동이 있다. 창신동 일대는 언뜻 보면 차량 한 대도 다니기 어려워 보이는 좁은 골목길에 빨간 벽돌로 된 다세대 주택이 가득 들어찬 주거 단지로만 보인다. 그러나 동대문역 1번 출구에서 시작되는 창신시장 초입부터 낙산공원 삼거리에 이르는 가파른 언덕길까지 창신동 일대는 봉제공장으로 가득하다.

창신동은 '소리'로 경기를 가늠한다
봉제, 미싱, 재단, 단추 등 봉제업을 하는 곳임을 알리는 간판도 곳곳에서 눈에 띄지만 대부분 간판도 없이 주택을 고쳐 만든 작업장 형태를 하고 있다. 봉제공장임을 알 수 있는 것은 기계에서 나오는 수증기와 드르륵 돌아가는 시끄러운 재봉틀 소리다.
그러나 6월의 한 오후 창신동 봉제 골목은 기대했던 것보다 조용했다. 곳곳에서 재봉틀 소리가 들리긴 하지만 힘차게 돌아가는 느낌은 없었다. 간혹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며 물건을 배달하는 오토바이 소리가 더 크게 느껴졌다.

창신동의 여름은 침묵이다
3,000여 개에 이르는 봉제공장이 창신동에 운집해 있다고 하지만 두세 집 건너 한 집은 작업장 문을 닫은 듯 조용했다. 봉제업계에서 6월에서 8월은 일년 중 비수기에 해당한다고 한다. 봉제업이 가장 활발할 때는 이른 봄과 가을이다. 단순한 여름옷은 공임비도 적고 물량도 많지 않다.
봄옷과 가을옷은 다양하고 예전부터 물량도 많아 온종일 작업해도 납품 시간을 맞추기 빠듯했다. 몸은 힘들어도 행복한 고민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런 고민을 한 지가 오래됐다고 한다. 최근에는 기후 탓도 봉제업이 위축된 원인 중 하나다. 봄과 가을이 짧아져 봄옷과 가을옷 수요가 적어졌기 때문이다. 그만큼 작업할 물량이 많지 않았다.
봉제업은 유난히 경기에 민감하다. 경기가 나빠지면 사람들이 옷을 구매하는 데에 지갑을 쉽게 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는 듯 작업장 바닥에는 적당한 정도의 일감만이 쌓여 있었다. 다른 작업장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는 분위기였다. 최근에는 SPA브랜드의 옷이 인기를 얻으며 동대문시장표 의류의 수요가 줄어든 것도 재봉틀이 예전처럼 돌아가지 않는 이유 중 하나라고 한다.

창신동에 젊음은 없다
이러한 봉제업계 불안정한 사정보다 신규인력이 생성되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한다. 봉제공장에서 젊은 사람들을 보기는 어렵고 50, 60대가 대부분이다. 간혹 젊어 보이면 외국인 노동자이기 일쑤거나 작업장을 운영하는 가족의 일원이다. 사람이 귀하다 보니 소규모를 벗어나 작업장을 확대하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의류업계의 젊은 사람들은 봉제업보다 화려한 디자이너가 되기만을 대부분 꿈꾼다. 그러나 한 봉제업체 사장은 봉제업도 분명 매력적인 직업임을 강조했다. 비록 일 년 내내 일하는 것을 보장할 수 없고 정작 일할 때는 하루에 열댓 시간을 작업장에서 보내는 것이 부지기수지만, 자기가 일한 만큼 가장 정직하게 돈을 벌 수 있음을 피력했다. 또한 영세해 보여도 노력만 한다면 어느 대기업에 취직하는 것보다 나은 수입을 확보할 수 있음도 살짝 귀띔해줬다.
무엇보다 기술만 있으면 나이가 더 들어도 당당히 경제활동을 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임을 덧붙였다. 그 역시 시간이 지나면 잠시 접었던 재단 일을 다시 시작해 시간상으로나 경제적으로 여유 있게 작업장을 운영하고 싶다고 작은 꿈을 전했다.
그러나 성인이 되는 자녀에게 봉제업을 권유할 의향을 묻는 말에 조금은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다. 굳이 하겠다면 든든한 후원을 할 수는 있지만, 직업으로 추천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손재주도 부족하고 일 자체가 고되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지만 이것이 바로 열악한 우리나라 봉제업의 현주소라는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다.

창신동에 바람이 분다
최근 창신동에는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창신동 일대가 뉴타운지구에서 해제되고 봉제산업을 육성해, 트렌드를 즉각 반영하며 대규모 제작까지 할 수 있는 동대문 의류 시스템을 계승하고 지역 경제를 살리려는 정책에 대한 각종 움직임도 보인다. 또한 봉제박물관이 건립될 예정에 있어 우리나라 경제성장과 섬유산업을 이끌었던 봉제업에 관한 관심을 환기시키기 위한 노력도 진행 중이다.
그러나 봉제공장 업주들은 이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다. 박물관이 지어진다고 실제로 얼마나 달라지겠느냐는 이들의 의구심이 느껴졌다. 이는 그간 진행된 많은 정책 역시 이들의 삶에 직접적인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음을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 이들은 그저 수십 년째 같은 곳에서 같은 일을 반복하며 같은 모습으로 살아왔다.
[매경닷컴 MK패션 남자영 기자 news@fashionmk.co.kr/사진= 진연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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