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색을 양지로 끄집어낸 남일해의 ‘빨간 구두 아가씨’ [패션찬가 ③]
입력 2013. 07.26. 16:03:00
[매경닷컴 MK패션 윤상길 편집위원] <솔솔솔 오솔길에 빨간 구두 아가씨 / 똑똑똑 구두소리 어딜 가시나 / 한번쯤 뒤돌아 볼만도 한데 / 발걸음만 하나둘 세며 가는지 / 빨간 구두 아가씨 혼자서 가네 // 솔솔솔 오솔길에 빨간 구두 아가씨 / 똑똑똑 구두소리 어딜 가시나 / 지금쯤 사랑을 알만도 한데 / 종소리만 하나둘 세며 가는지 / 빨간 구두 아가씨 혼자서 가네>
암울했던 시대, 호소하듯 가슴을 파고드는 매력적인 중저음으로 뭇사람을 설레게 했던 더벅머리 인기가수 남일해의 대표곡 ‘빨간 구두 아가씨’다. 1963년에 발표했으니 꼭 반세기가 지난 노래이다.
남일해는 남진 나훈아의 쌍두마차 시기 이전인 1960년을 전후한 시기, 한국가요계를 대표하는 정상의 가수였다. 1938년 경북 대구 태생으로 본명은 정태호이다. 그는 1957년 대건고등학교 3학년 시절 대구의 대도극장(현재 국민은행 자리)에서 열린 ‘오리엔트 레코드사 주최 전국 콩쿨(콩쿠르)대회’에서 특상(대상)을 받아 가수가 되었다.
이 콩쿠르의 심사위원이었던 작곡가 나화랑에게 발탁되어 1958년 킹스타레코드에서 ‘비 내리는 부두’로 데뷔했다. 이어서 내놓은 ‘찾아온 산장’이 히트하면서 남일해는 일약 톱 가수가 되어 최희준, 박재란, 이미자, 현미, 한명숙 등과 더불어 한 시대를 풍미했다.
‘빨간 구두 아가씨’는 그의 가수 전성기 때 발표된 곡으로 하중희(1935~2004)가 노랫말을 짓고, 김인배(81)가 작곡했다. 정열의 붉은 색 구두를 신고 걸어가는 여성을 소재로 삼아 만들어진 노래로 제목부터가 이색적이다. 4분의 4박자 스윙조로 멜로디가 비교적 가벼운 느낌을 준다. 마치 구두를 신고 또박또박 걸어가는 젊은 아가씨를 바로 옆에서 보는 듯하다.
가요사가 박찬호 선생은 ‘한국가요사 2’에 이 노래에 얽힌 사연을 기술하고 있는데 그 내용이 흥미롭다.
노랫말을 지은 하중희는 KBS 사옥이 서울 중구 예장동 남산 언덕배기 초입에 있을 때 방송국 소속으로 일하고 있었다. 하씨는 출퇴근 때 버스를 타고 다녔다. 퇴계로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방송국으로 향하는 언덕길을 걷다보면 늘 오가는 안면 있는 사람들과 호기심 속에서 자주 마주쳤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방송국 부근 남산 오솔길을 걸어서 올라가는 빨간 구두 아가씨를 우연히 보게 됐다. 젊고 예쁜 그 아가씨는 똑 똑 똑 구두소리를 내며 남산 길을 오르고 있었다. 노래가사처럼 걸어가다 한번쯤 뒤돌아 볼만도 한데 그렇지 않아 하씨는 과연 어떤 아가씨인지 궁금했다. 밤에 앞서가는 여성을 뒤따라 걷는 보통의 남성이 느끼는 순수한 감정 그대로였다.
때마침 부근의 교회(지금도 그 자리에 있는 남산교회)에서 치는 종소리가 그런 분위기를 더욱 묘하게 만들었다. 그날 밤 미니스커트에다 빨간 하이힐까지 신은 그 아가씨는 젊은 작가 하중희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하씨는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순간적으로 떠오른 느낌들을 있는 그대로 노랫말로 만들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노랫말은 같은 방송국 경음악단 트럼펫 주자였던 김인배(후일 KBS 악단장 역임)에게 부탁해 멜로디가 붙여졌다.
당시 경음악평론가들은 “구두를 신고 걷는 소리를 음률에 맞춰 엮어낸 것도 감칠맛나지만 걸어가는 아가씨의 움직임을 곁에서 보듯 빠르고 경쾌한 멜로디를 곡에 반영시킨 걸작이다”라고 격찬했다.
‘빨간 구두 아가씨’는 발표와 동시에 인기를 끌었다. 차분하면서도 굵직한 목소리가 선율을 타고 부드럽게 넘어가는 남일해의 가창력과 가사, 경쾌한 멜로디에 가요팬들이 높은 점수를 준 것이다. 게다가 트로트풍의 노래가 주류를 이루던 시절 스윙조 노래가 나와 한창 경제개발을 하려는 활기찬 시대 흐름과도 맞아떨어져 히트할 수 있었다.
노래가 방송 전파를 타면서 서울시내엔 빨간 구두를 신고 다니는 아가씨들이 많아졌다. 명동 무교동 등 당시 번화가 구두 가게들도 매출이 부쩍 늘어 재미를 봤다. ‘빨간 구두 아가씨’가 ‘굽 높은 뾰족구두’로 불렸던 하이힐이 유행할 수 있도록 계기를 마련해준 셈이다.
‘빨간 구두 아가씨’가 당대에 또 다른 주목을 받은 것은 ‘빨간’이란 색깔을 사용한 노래 제목이었다. 이 노래가 등장한 1960년 초는 모든 분야에서 혼돈과 격동이 혼재한 불안한 시기였다. 정치적으로는 박정희 군사정권의 시기였고, 무엇보다 모든 국민이 가난하기 이를 데 없는 빈곤의 시대였다. 거리에는 실업자와 부랑아가 넘쳐났고, 상대적으로 일자리가 변변치 않았던 많은 여성들이 입술을 깨물며 뒷골목 유흥가로 발을 디뎌야 했던 불행한 때였다.
서울의 종로3가(종삼), 청량리역(588), 용산역, 서울역 인근의 양동 도동 등에는 몸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여인들로 집창촌이 형성돼 있었다. 좁은 골목에 이마를 맞댄 게딱지같은 집 대문마다 작고 희미한 빨간 색등이 하나씩 매달려 있었고, 이런 곳은 홍등가(紅燈街)로 불렸다.
무교동이나 명동, 청계천변에는 이런저런 술집들이 불을 밝혔는데, 네온사인도, 점멸등도 하나같이 붉은 색이었다. ‘울긋불긋’한 색깔의 간판들이 접대여성을 앞세워 술꾼을 불러 모았다.
결국 육욕이 넘실대는 홍등가와 붉은 네온사인의 유흥가는 ‘빨간 색’으로 이미지화하면서, 평범한 사람들의 빨간 색 패션은 금기시되던 시대였다. 때문에 빨간 색 구두는 ‘밤거리 여인’의 상징이기도 했다. 이런 시절에 남일해의 ‘빨간 구두 아가씨가 나왔으니, 파격적인 노랫말이란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 시절 하이힐도 유별난 구두였다. 대부분의 성인 여성들은 검정색 단화를 신었다. 흰색이나 갈색의 구두를 신는 경우도 있었으나 그렇게 흔하지는 않았다. 이런 때에 빨간색 구두에 하이힐이라니 얼마나 파격적이었을까. 노래의 히트와 함께 빨간 색 구두가 자연스럽게 일반 여성들에게 보편화 된 것을 보면 대중가요의 파급력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듯하다.
‘빨간 구두 아가씨’는 세월이 흐른 2005년, 이영애 주연의 영화 ‘친절한 금자씨’의 삽입곡으로 쓰여 다시 한 번 화제에 올랐다.
[매경닷컴 MK패션 윤상길 편집위원 news@fashionmk.co.kr / 사진=‘빨간구두아가씨’가 수록된 남일해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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