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가 정병국 "생활한복의 상징성, 전통한복의 실용성 부족은 어떻게" [한복 세계화①]
- 입력 2013. 07.31. 18:29:54
- [매경닷컴 MK패션 한숙인 기자] “신옥의 뒤에 바짝 붙은 신혜는 감색 개량 한복에 반백의 머리를 챙이 넓은 모자 속에 감추고 있었다. 신옥은 자신의 등 뒤에서 주춤거리는 언니의 손을 쥐어주며 웃었다. 잘 다녀오라는 듯 고개를 조금 숙였다가 들며 다시 웃었다”
‘공지천의 해후’ 속 한 장면이다. 소설가 정병국 작가(66)에게 한복은 추억이고 삶이다.인터뷰를 위해 만난 자리에서 정병국 작가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함께 외출할 때마다 항상 아버지의 등을 붙잡고 다녔습니다. 아버지와 나 둘 다 하얀 수염을 기르고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한복을 차려입고 앞뒤로 서서 걸었죠. 그것이 저와 제 주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있는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인터뷰 자리에도 물이 빠진 황갈색 바지와 티셔츠와 블라우스의 중간쯤으로 보이는 매듭이 자리 잡은 흰색 속옷(속옷은 그의 표현이었다) 위에 조끼를 입고 나왔다. 얼굴의 밑의 반은 수염으로 위의 반은 모자를 눌러써, 생활 한복으로 가능한 최대한의 갖춤 복장으로 한 모습이 한복에 대한 애착을 짐작케 했다.
기자에서 소설가로, 그리고 글을 지도하는 선생이자 아픈 이들의 마음을 보듬는 사회운동가이기도 한 그의 이력은 생활한복에 대한 일관된 애정이 고집이 아니라 따스한 삶을 추구하는 그의 철학의 반영이라는 기막힌 반전을 끌어냈다.
“저도 사실 한복이 싫었어요. 어렸을 때 양말이나 옷이 귀했던 시절에 어머니가 뚝딱 만든 버선위에 양말을 신었죠. 어머니는 따뜻하라고 해주신 건데 그게 그렇게 싫더라고요. 바지도 버선처럼 만들어주셨는데 그런 어릴 적 기억들 때문에 한복이 싫었습니다”
그런데 90년대 초반부터 갑작스럽게 시작한 중국생활이 그를 변하게 했다고 한다. 중국에서 3~4년 거주한 이후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한복에 대한 애착을 갖게 됐다고 했다.
“그냥 입기 시작했어요. 일단 편하니까”라면서 그는 개인적으로 생활한복에 대해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하면서 두 가지 화두를 던졌다.
“편안함 때문에 생활한복을 입고 있지만 사실 전통한복에 대한 아름다움의 깊이를 생활한복이 따를 수 는 없죠. 간혹 전통한복을 집에서 입기도 하는데 그 멋이 참 좋아요. 그런데 전통한복을 막상 일상에서 입자면 생각이 복잡해지죠”라며 “한복의 세계화 역시 제가 가지고 있는 고민과 똑같은 딜레마에 빠집니다. 생활한복은 편하지만 상징성이 부족해 외국인들이 우리 한복에 대한 그릇된 생각에 빠질 수 있고. 전통한복은 상징성은 뛰어나지만 실용성이 부족해 외국인들이 편하게 입을 수 없죠. 이 딜레마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관건 아닐까요”
그가 던진 화두는 한복시장이 처한 현 상황에 대한 정확한 해석으로 공감대를 끌어냈다.
또 하나의 화두는 한복이 대중과 거리를 좁히기 위해서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한 착장이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는 사실 모자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나라마다 모자문화가 있는데, 생활한복을 입으면서 어떤 모자를 써야 될지가 가장 고민입니다. 우리나라 전통 모자를 쓰는 것도 안 어울리고 그래서 저 나름대로 최대한 옷과 어울리는 모자를 쓰려고 노력하지만 뭔가 자꾸 안 어울리는 느낌입니다”
그는 황갈색의 옷과 조화를 고려해 짙은 회색 배래모를 썼다. 여기에 끈이 없는 가벼운 소재의 검은 운동화로 생활한복 패션의 통일감을 줬다. 한때는 중국에서 생산해서 파는 독특한 신발을 구입해서 신어보기도 했지만 영 느낌이 나지 않아 요새는 신지 안 는다는 말을 덧붙였다.
한복에 대한 그의 철학은 한복을 일상에서 입어야만 끌어낼 수 있는 화두와 소설가로서 삶에 대한 깊이 있는 사색이 어우러져있다. 한복의 대중화 세계화와 관련해 결코 가볍지 않은 문제 제기임에도 그의 말에 정감이 가는 것은 이 같은 그의 배경에 기인한다.
한복의 대중화 세계화를 위해 필요한 모든 시도를 다 해봐야겠지만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체득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기도 하다. 한복을 오랫동안 입은 그는 그래서 한복을 입는데 일정한 격식이나 규칙을 정해놓지는 않는다고 했다.
“사실 인터뷰가 아니었다면 총 맞은 것처럼 구멍이 뚫려 있는 군용 스타일의 모자를 썼을 텐데. 사실 이런 비 오는 날에는 자주색 생활 한복을 입고 그 모자를 씁니다. 그 조합이 아주 잘 어울리거든요”라며 한복의 일상화가 필요하다는 견해를 대신했다.
인터뷰 장소로 한옥 마을을 정한 것도 그의 생각이었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게 있어요. 한국은 색 문화가 정말 발달했거든요. 한복은 이러한 한국의 아름다운 문화의 한 부분이고 한국인의 생활의 한 단편입니다”라면서 한복 대중화 세계화를 성취해야 할 목표보다는 소통의 문화로 봐야 한다는 의미 있는 화두를 던졌다.
[매경닷컴 MK패션 한숙인 기자 news@fashionmk.co.kr/ 사진=진연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