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패션 대기업의 주업무는 디자인 도둑질?
- 입력 2013. 08.01. 08:28:34
- [매경닷컴 MK패션 임소연 기자] 4대 패션 대기업뿐 아니라 대기업에 합병된 중견 그룹 등 너나 할 것 없이 ‘디자인 베끼기’ 관행이 심각한 수준이다.
“대기업은 절대 들어가고 싶지 않아요. 해외 명품 브랜드나 신진 디자이너의 옷을 카피하는 게 대기업 디자인실의 주 업무에요”국내 디자이너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해 화제가 됐던 패션 디자이너 H씨의 발언이다.
그는 대기업이 오너 디자이너 브랜드 등 중소기업 및 개별 브랜드를 매입한 이후 사업상 목적을 명분으로 브랜드 정체성에 심각한 타격을 입힌다고 지적했다. 특히 브랜드 고유의 색깔이 퇴색될 정도로 당연하게 벌여지는 ‘타 브랜드 카피’ 문제를 우려하고 있었다.
상업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대기업의 공공연한 카피 문제가 디자이너 개인의 자부심이나 창의력을 지켜주기에는 어려움이 따라 보인다.
이렇다보니 대기업 디자인실의 막내 디자이너들은 하루 종일 백화점과 매장을 훑고 다녀야 한다.
“주말이면 백화점과 편집숍을 모두 돌아야 해요. 대놓고 사진을 찍을 수는 없으니까 옷을 입어보는 척 탈의실에 들어가 디테일 하나까지 휴대폰으로 찍어 와요. 처음부터 끝까지 카피한다고 생각하면 되요”
막내 디자이너 M씨는 대기업 디자인실에 입사했다는 기쁨도 잠시 디자인 베끼기에 급급한 내부 현황에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모르겠다며 혼란스러워했다.
또 다른 막내 디자이너 K씨는 가방 안에 소형 카메라까지 설치해 ‘베끼기’ 업무를 감행한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여성복 브랜드의 경우 특히 심해요. 한 주에 나와야 할 샘플이 남성복이나 아동복, 아웃도어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훨씬 많거든요. 그렇다보니 그 주에 나와야 할 샘플이 블라우스면 경쟁 브랜드의 블라우스를 모조리 찍어서 고르고 보는 거예요. 라벨만 바꿔치기하는 거죠. 물론 디테일만 착안하기도 하지만 브랜드 자체적으로 전체 디자인을 하는 경우는 거의 드물어요. 브랜드끼리 서로 베끼는데 누가 뭐라 하겠어요”
언제부턴가 ‘OOO스럽다’, ‘OOO랑 비슷하다’라는 말에 죄의식조차 없어 보이는 대기업의 이 같은 실태가 한 가게 건너 하나 꼴로 같은 디자인, 다른 라벨의 옷들로 판치게 하고 있다.
패션 시장을 대표하는 대기업들이 앞장서서 디자인 도둑질을 하고 있는데, 국내 패션계의 더딘 성장 속도는 이미 예고된 바가 아니었을까.
[매경닷컴 MK패션 임소연 기자 news@fashionmk.co.kr/사진= 영화 ‘쇼퍼홀릭’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