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열차 탑승객의 현실적 의상, 새로운 세계를 구현하다
입력 2013. 08.22. 11:19:23
[매경닷컴 MK패션 김희선의 패션토크] 봉준호 감독의 다섯 번째 영화 ‘설국열차’가 900만 관객을 향해 쾌속 질주하고 있다.
지난달 31일 전야 개봉한 영화 ‘설국열차’는 모든 것이 얼어붙은 빙하기의 지구, 살아남은 사람들을 태우고 끝없는 궤도를 달리는 기차 속 이야기를 통해 서로 다른 인간군상 속 억압과 충돌을 그린다.
봉준호 감독이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영화를 계급 간 충돌로 보는 정치적 해석이 펼쳐지는 가운데, 이와는 무관하게 열차 속 계급을 현실적으로 표현해낸 의상 비교는 꽤 흥미롭다.
시작과 함께 등장하는 꼬리칸 사람들. 어두침침한 조명 속 꼬질꼬질한 이들에겐 어둠과 음침함만 있을 뿐이다. 같은 트레인베이비라도 꼬리칸 아이들과 교실칸 아이들은 ‘때깔’부터 다르다.

점호를 마친 이들 앞에 등장한 메이슨 총리(틸다 스윈튼)의 모습은 그야말로 압도적이다. 들창코와 가발, 입안 보철물에 처진 가슴 보형물과 소장하던 안경까지 동원해 변신을 자처했다는 틸다 스윈튼. 열차의 이인자인 그는 화려한 모피로 몸을 감싼 채 성스러운 엔진의 힘과 권위를 설교한다. 보라색 스커트 수트에 모피 코트를 걸친 채 서 있는 총리의 거만한 표정과 엉거주춤한 자세는 영화 속 계급사회의 불평등과 부조리의 일면이다.
메이슨은 힘없는 아빠 앤드류(이완 브렘너)의 머리 위에 구두를 올리면서 말한다. 머리 위엔 모자, 발밑엔 신발이 있어야 함을. 구두와 모자에 계급의 의미를 부여하며 제자리를 지키라 명령하는 그의 모습은 영화가 끝나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모피코트는 영화 속 가장 큰 상징을 담은 의상이다. 악당의 양복에서 17년의 세월을 표현하고자 올이 풀리게 연출했다는 봉 감독의 설명처럼 절대권력을 상징하는 메이슨의 번지르르한 모피에서도 세월은 묻어난다.
그런가 하면 환락의 방에서 크로놀에 취해 모피코트를 입고 흐느적거리는 무리로부터 남궁민수(송강호)와 요나(고아성)는 이를 빼앗아 입는다. 작위적으로 보이는 이 설정도 마지막을 위한 복선이었고, 결국 살아남은 자들 또한 다행히(?) 이를 걸침으로써 앞으로의 생존에 대한 관객의 불안을 어느 정도 누그러뜨린다. 모피는 영화에서 권력이자 생존을 의미한다.

나이를 막론하고 꼬리칸 사람들의 스타일링은 겹쳐 입기로 완성된다. 이들은 티셔츠와 셔츠, 니트 아우터, 점퍼와 재킷을 되는대로 걸치고 목도리와 모자로 무장해 추운 꼬리칸 환경을 짐작하게 한다. 길리엄(존 허트)의 재킷을 비롯해 꼬리칸 사람 누구의 옷도 더럽고 어두우며 여기저기 구멍이 나 있다.
반란군의 리더 커티스(크리스 에반스) 역시 티셔츠와 셔츠, 스웨터, 집업 상의에 코트까지 엄청난 레이어링을 선보이지만 놀랍게도 부피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중 주목할 부분은 지퍼의상. 어긋난 철로를 보듯 절대 잠기지 않을 것 같은 이 나간 지퍼는 누더기와 구멍보다도 더 실감 나게 꼬리칸 이들의 위치와 지난 세월을 보여준다.
영화의 의상은 ‘케빈에 대하여’의 의상을 맡았던 캐서린 조지가 담당했다. 그는 “기차 안에서 17년을 살아 온 설정 때문에 처음 가지고 있던 것을 재활용해야 했다. 기차 안에 있는 건 뭐든 입어야 했고, 패치워크에 중점을 두었다. 이런 것이 쌓여 일종의 기차 안 스타일을 만들어냈는데, 기차가 달리는 동안 기술은 전혀 발전하지 않았으므로 현실에 기초한 의상 콘셉트를 놓치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2014년에 출발해 17년째 돌고 있는 설국열차. 하지만 그 안엔 20세기와 21세기 스타일이 혼합돼 있다. 파티가 열리는 방에는 클로쉬햇을 쓰고 무릎길이 드레스를 입은 1920년대 ‘플래퍼’ 스타일의 여성들이 거닐며, 양복 재단실을 지나 등장하는 미용실은 아무로 나미에의 ‘뉴 룩’ 뮤직비디오 속 60년대 모습과 닮았다.
폭동 장면에선 그레이(루크 파스콸리노)의 아디다스 트레이닝 팬츠가 위엄을 발휘하며, 클럽칸 사람들은 한껏 노출을 즐기는 21세기 인물이다. 이처럼 시공간을 초월한 스타일은 전 세계에서 몰려든 탑승객의 다양한 민족성과 배경을 설명한다.
분장 또한 영화의 사실성을 더하는 데 한몫한다. 분장을 맡은 제레미 우드헤드는 “꼬리칸의 더러움과 누추함에서 앞쪽 칸의 화려함까지 표현해야 했다. 특히 앞쪽 칸은 건강한 피부 표현에 중점을 뒀다”고 설명한다. 봉 감독 또한 “보스턴 엄친아 이미지의 크리스 에반스에게 피부 속에서부터 장시간 켜켜이 문드러진 느낌을 주려 했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타냐 역할의 옥타비아 스펜서는 “더러운 공기가 가득한 환경에서 씻지 못해 모두가 어두운 회색 피부를 가진 꼬리칸 사람들의 형제애가 바로 영화 속 메시지”라 설명해 공감을 자아낸다.

누구나 정해진 자리가 있다는 열차 안 질서와 이를 깨려는 꼬리칸 사람들. 봉준호 감독은 대가가 혹독할지라도 새로운 세계를 향해 전진할 가치가 있다는 메시지를 던졌고 엄청난 스케일로 이를 표현해냈다.
“지저분한 주인공은 넝마를 걸치고, 악당은 깔끔하고 가짜처럼 반짝이며 겉모습은 예쁘게 정돈돼 있다. 미국 스튜디오 시스템에서 이런 대비는 신성모독으로 여겼을 것”이라며 앤드류 역의 이완 브렘너가 놀라워한 것처럼, 극명한 외모 대비는 계급 충돌을 풀어가는 영화의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뒷받침한다.
그리고 곳곳에서 묻어나오는 의상과 분장의 현실적인 디테일은 욕망의 충돌과 희망이 뒤섞인 영화의 복합적 재미와 어우러져 봉준호의 새로운 세계를 완성해냈다.
[매경닷컴 MK패션 김희선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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