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청동의 SK2 입점, "불매운동 하고 싶어" 불만 목소리 높아
- 입력 2013. 09.02. 15:32:25
- [매경닷컴 MK패션 조혜원 기자] ‘때론 쉴 곳을 잃어가도 넘어질 듯이 지쳐가도 아무 말없이 걸어가리…’. 아름답고 조용한 이 노래 가사의 주인공은 바로 삼청동이다. 이렇듯 단순히 좋은 동네가 아닌 사람들에게 힐링을 선사하던 삼청동 거리가 최근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서울에서 흔히 찾아볼 수 없는 옛 느낌과 골목골목 숨어있던 작은 가게들이 하나씩 사라지고 그 자리에 대기업 브랜드들이 들어서고 있는 것. 이미 스와로브스키, 아바타, 레페토 등의 큰 매장들이 거리를 메우고 있다.삼청동을 사랑했던 사람들은 이에 큰 불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 정점에는 SK-ll 팝업 스토어가 있다.
한 삼청동 마니아 A씨(32)는 “최근 몇 년간 올 때마다 삼청동이 많이 변했다는 이야기를 지인들과 나눴다.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과 몇몇 대기업 브랜드가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어쩔 수 없지라는 생각이었는데, 마치 백화점 한 코너를 보는 듯 붉은 건물로 들어온 SK-ll 매장만큼은 참을 수가 없다”고 분노했다.
또 다른 삼청동을 마니아 B씨는 다소 격한 단어를 사용할 정도로 화가 나 있었다. “SK-ll 브랜드한테 화가 난다. 인기있는 거리라 하면 무조건 밀고 들어오는 모양이다”며 “이미 브랜드 입지도 있는데 굳이 특별성이 있는 거리를 망치면서까지 매출을 올려야 하겠나. 불매 운동이라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길을 걷던 또 다른 행인도 “조금씩 변해가도 기대를 잃지 않고 왔는데 가로수길에서 봐왔던 SK-ll 팝업 스토어를 보자마자 씁쓸했다”고 전했다.
SK-ll가 특히 사람들에게 위화감을 주는 이유는 다른 대기업 브랜드들이 삼청동에 들어올 때는 그 특유의 분위기를 살린 인테리어와 콘셉트로 다가갔다. 반길 수는 없어도 그 거리를 망치지 않으려는 조심스러움이 느껴졌던 것. 하지만 SK-ll는 백화점에, 가로수길에 있던 그 모습 그대로 삼청동에 들어섰다. 브랜드의 이익만 생각하고 전체를 생각하지 않는 듯한 모습에서 사람들이 더욱 불만을 갖게 되는 것이다.
SK-ll에 대한 반감이 심할 뿐 대다수의 사람들이 삼청동 내 다른 대기업 브랜드 출현도 반가워하지 않는다. 갤러리, 개인 디자이너들이 하나둘 자리잡으며 이국적인 예술 거리의 분위기를 풍기던 가로수길을 대기업에게 빼앗긴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실상 삼청동의 속사정을 보면 조금 느리지만 그 수순을 그대로 밟고 있다.
삼청동에서 시작해 10년간 작업실을 운영하던 한 디자이너도 “예전의 분위기는 이미 찾아 볼 수 없고 건물 임대료는 치솟았다. 곧 가로수길과 마찬가지로 대기업이 아니면 버티기 힘들어질 것이다.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는 것 같아 다음 달 이사간다”고 말했다.
종로구청 관계자 또한 “종로구에서는 한복 입기 등 종로구만의 특화된 매력을 지키려고 노력중이다. 종로구, 특히 인사동, 삼청동의 행사에는 대기업 화장품 브랜드는 참가시키지 않고 손공예 등을 중심으로 진행하려고도 노력하고 있다”며 “하지만 건물주들의 이익에 따른 임대를 종로구에서 간섭하기는 힘들다”고 아쉬움을 전했다.
모든 사람들이 삼청동을 지켜야 하는 거리로 여기고 있다. 그것을 무시하는 사람은 직접적인 이익을 취하는 건물주, 대기업 뿐이다. 하지만 벌써부터 삼청동에는 대기업에서 초대한 파워 블로거와 이를 보고 트렌디한 거리를 찾아온 사람들로 붐빈다.
천천히 돌아가듯 곡선과 같은 매력으로 사랑받았던 삼청동이 이제는 효율과 성과를 중요시하는 대기업에게 그 자리를 또 다시 뺏길 위기에 있다. 사람들은 또 다시 돌고 돌아 둥근 매력을 지닌 다른 거리를 찾아 헤매야 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소중하고 가꿔온 거리를 또 이익 앞에 쉽게 뺏기는 악순환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대기업들의 장기적이고 차별화된 높은 안목이 필요하다.
[매경닷컴 MK패션 조혜원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SK2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