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의 여성 디자이너 ‘노라노’ 그의 패션 철학
입력 2013. 11.09. 10:01:45

[매경닷컴 MK패션 이예원 기자] 흔히 떠올리는 국내 1세대 디자이너는 단연, 앙드레김이다. 수많은 패션계 종사자들은 외국의 코코 샤넬, 비비안웨스트우드에 대해선 명확히 알고 있고 그들의 패션철학을 추종한다. 하지만 현존하는 최초의 여성 디자이너 ‘노라 노’를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다.
영화 ‘노라노’는 한국에 ‘패션’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하던 시절인 56년 서울의 반도호텔에서 고객을 모델 삼아 패션쇼를 개최한 디자이너 노라노의 인생을 되짚는다.
올해 86세를 맞이한 노라노가 패션 디자이너로서 살아온 역사는 한국의 여성 권익 신장과 맞닿아 있다. 서양 복식인 양장이 허영과 사치로 생각되던 그 시절, 노라노는 여성복을 표준화해 누구든 쉽게 양장점에 들러 자신에게 맞는 옷을 살 수 있도록 사회 풍토를 바꾸는 데 앞장섰다.
또한 해방 직후 일하는 여성들이 늘어났는데, 그만큼 경제적 여유가 생긴 여성을 더욱 당당하고 돋보이게 할 수 있는 옷을 만든 이도 노라노다. 그는 맞춤복, 양장복을 가리지 않고 언제 어디서 입어도 여성스러우면서도 자신감 넘치는 분위기를 낼 수 있는 옷을 만들었던 것이다.

그는 일반인 고객과의 소통뿐만 아니라 당대 영화 거장 유현목, 신상옥, 이만희, 한형은 등의 영화에 의상 담당으로 활동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5,60년대에도 영화를 보는 재미 중 하나는 여배우의 패션 스타일을 엿보는 것이었다.
노라노는 이런 점을 십분 활용해 엄앵란에게는 당시 유행이었던 오드리 헵번 스타일의 옷을, 건강미 넘치는 배우였던 최지희에게는 브리짓 바르도를 연상하게 하는 가슴이 강조된 섹시한 옷을 입혔다.
윤복희는 한국 최초로 미니스커트를 입은 스타로 기록됐다. 그 뒤에는 노라노의 수고로움도 있었다. 두 사람 모두 미국에서 살다 와 틀에 갇히지 않은 사고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그 누구도 입어본 적 없는 ‘외설적이다’고 손가락질 받는 미니스커트에 쉽게 도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귀국해 한창 디자이너로 활동하던 시절 여느 젊은 세대가 그러하듯 도전적인 여성의 아이콘이었다. 하지만 그의 깊은 내면에는 뚝심 있는 패션 철학이 자리하고 있었다.
노라노는 말한다. “옷은 옷 다워야 한다. 옷은 예술품이 아니다. 옷이 사람보다 먼저 나와선 안 된다” 라고.
올해 86세가 된 디자이너의 패션 철학은 현재의 패션 산업에 경종을 울린다. 점점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패스트 패션’이라는 것이 생겨났다. SPA브랜드로 대표되는 패스트 패션에서는 장인이 닿은 손길을 찾아보기 힘들다. 노라노의 패션 철학은 그저 하나의 ‘놀이’, ‘소비품’으로만 전락해버린 패션계의 현실을 꼬집었다.
노라노의 50년 단골손님들은 “지금 꺼내 입어도 촌스럽지 않고 멋있다. 입었을 때 일하는 여성임을 드러내 줘서 당당함이 절로 생긴다”고 말한다. 그들은 하나같이 노라노를 기억하고 그에게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 하지만 노라노는 패션계에서는 잊힌지 오래며 올해 은퇴를 선언했다.

패션 선진국인 이탈리아, 파리 등지에서는 수 십 년 패션만 바라보고 한 길을 걸어온 디자이너를 추대하는 것이 사회풍토로 자리 잡고 있다. 전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 코코샤넬, 소니아 리키엘, 비비안웨스트우드가 여전히 유명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오랫동안 디자인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기도 하다.
영화 ‘노라노’는 발 빠른 유행에만 집중해 선두에 서 있었던 초창기 디자이너를 제쳐둔 국내 패션계를 은유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영화 말미에 노라노는 “낯선 길을 잃지 않는 용기로 여기까지 왔다. 누군가의 인정이 나를 만든 것이다”고 말한다. 60여 년 동안 한길을 걸어온 노라노에게 후회는 없었고 잊혔다고 해 원망스러움은 없었다. 노라노는 시대적 환경에 도태됐지만 특유의 고집과 열정으로 60년 이상 옷을 만들었던 ‘장인’으로 기록될 것이다.
[매경닷컴 MK패션 이예원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 영화 노라노 스틸컷,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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