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잇 백의 출현,"럭셔리는 죽었다" [명언에서 찾은 아름다움①]
입력 2013. 11.11. 11:22:18
[매경닷컴 MK패션 조혜원 기자] “패션계에서 럭셔리는 죽었다”
패션 디자이너 조르지오 아르마니가 말했다. 럭셔리를 대표하는 브랜드 중 하나의 수장인 조르지오 아르마니가 이런 말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아래와 같은 말을 덧붙였다.

“한 두 번 들다가 과거 속으로 묻혀 버리는 ‘이번 시즌의 백’은 결코 진실된 의미의 럭셔리가 될 수 없다. 지금의 소위 럭셔리 상품들은 오랜 기간 동안의 가치를 주지 못하고 사라져 버린다. 럭셔리는 세월을 초월하는 감성적 내구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부드러운 남성 수트와 매니시한 여성 블레이저 수트를 디자인한 엘레강스 캐주얼의 창시자다. 런웨이에 이질감이 느껴질 수 있는 슈퍼모델 대신 디스플레이를 세우고, 최초로 마르지 않은 모델을 고용하는 등 패션에 애정을 담은 모험을 해 온 디자이너가 현재 명품 세계에 던진 이 말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시즌마다 쏟아지는 비슷한 '잇 백'들
2000년대에 들어서며 ‘잇 백’이라는 말이 생겼다. 그 시즌에 뜨겁게 유행하는 백을 뜻하는데, 대중들이 잇 백의 개념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초반 사람들이 똑같은 가방을 들고 강남 거리를 걸으면서 부터다. 이때부터 압구정동을 떠올리면 누구나 아는 패션이 머리를 스쳐 지나가고, 그 다음 시즌에는 이 유행이 보란 듯이 변했다.
1980~90년대만 해도 페라가모 바라 슈즈, 샤넬 클래식 백, 루이비통 스피디 백, 프라다 나일론 백 등 고유의 디자인을 이어가던 명품 브랜드들이 시즌마다 바뀌는 잇 백 트렌드에 따라 비슷한 디자인을 마구 찍어내고 있는 것이다. 로고가 없다면 어느 브랜드의 제품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비슷해 보인다.
가장 최근 출시된 신제품들에서도 이런 현상은 명백하게 보여진다. 마크 제이콥스에서 가을 잇 백으로 새롭게 출시한 메트로 폴리탄 2014 리조트 버전 백은 제품 이름과 홍보에서 아예 잇 백, 2014 리조트 버전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질 스튜어트의 신제품 리틀 질 백도 최근 유행하고 있는 쇼퍼 백인데 다른 브랜드의 쇼퍼 백과 큰 차별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디자인만으로도 승부할 수 있었던 과거와 달리 이들은 최고급 가죽 소재나 유틸리티 등 이제는 소재와 기능성에 초점을 맞춰 홍보를 하곤 한다. 같은 소가죽이라도 개인 숍보다 명품 브랜드의 가방이 수십, 수백 배 비싼 것을 생각해 볼 때 이미 많은 명품 브랜드들이 진정한 명품, 럭셔리의 개념을 잃어버린 것이다.

▼럭셔리의 상실과 한국인 특성의 시너지 효과
이러한 명품 브랜드의 럭셔리 상실화가 한국인 특유의 성질과 맞물려 국내에서 특히 심화돼 나타나고 있다. 한 분석가는 “급격한 경제 발전으로 물질에서 가치를 찾는 한국인의 특징과 남들이 한 것을 안 하면 뒤쳐진다는 강박 관념이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우리나라보다 해외에서 잇 백을 추구하는 소비자층은 매우 얇다. 특정 나이대의 일부 여성들이 이러한 트렌드를 좇을 뿐이다. 해외의 거리를 살펴보면 같은 명품 백을 가지고 있는 여성이 드물고 심지어 명품 백을 들고 다니는 수도 국내보다 현저하게 떨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영국 런던 거리에서 명품 백을 가지고 있는 여성들을 인터뷰했을 때 그들의 대답에서 이러한 차이는 더욱 드러났다. 40대 이상의 여성들만이 특별한 날 선물을 받거나 스스로 구입한 것이라고 대답했고, 20-30대 여성들은 대부분이 부모님의 것을 물려 받은 경우였으며 그 중 몇몇이 디자인이 아주 마음에 들어 구입한 것인데 이 또한 명품이나 브랜드에 큰 의미를 두지는 않는다고 대답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브랜드와 디자인도 매우 각양각색이었다.
지금 명품 세계에서는 ‘잇 백’만이 남고 진정한 ‘명품’은 사라지고 있다. ‘럭셔리’가 그 품위를 잃고 사치가 되지 않으려면 브랜드 본질을 지키며 혁신을 추구하고, 소비자들도 그 중 진짜 명품을 골라내는 현명한 안목을 가져야 한다. 더불어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이러한 현상이 국내에서 더욱 심화되지 않도록 자신만의 패션 가치관을 확립하는 것 또한 필요해 보인다.
[매경닷컴 MK패션 조혜원 기자 news@fashionmk.co.kr/ 사진 = MK패션, photopark.com, 마크 제이콥스, 질 스튜어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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