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행어라 말하고 아픔이라 쓴다” 유통에 몰아닥친 ‘갑을 사태’ [2013 신드롬열풍②]
- 입력 2013. 12.18. 10:29:35
[매경닷컴 MK패션 한숙인 기자] 교황의 ‘규제 없는 자본주의는 새로운 독재’ 발언이 마르크스주의자 논란에 휩싸이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사실상 탈이념시대에 진입한 현대사회에서 대중은 힘의 논리에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는 노동자와 현대사회 절대 권력자인 소비자, 두 지위를 오간다. 호황에는 이 극단의 역할놀이가 무난히 조율해나갈 수 있지만, 불황에는 두 역할에 균열이 생기고 치열한 자아 찾기가 시작된다.2013년은 곳곳에 이 같은 균열이 생긴 한 해였다.
갑을 신드롬
자본이 지배하는 시대에 갑이니 을이니 하는 선 긋기가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올 한해는 갑과 을이 양극단에서 팽팽히 맞섰다.
지난 5월 남양유업 막말 사태로 발화된 갑을 논란에 시민단체와 국회의원이 합세해 을은 기존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발언권을 가질 수 있었다. 이렇게 결집된 힘으로 갑을 향해 ‘공정하게 살 수 있는 권리’를 외쳤다.
최근 1~2년 사이 급성장한 중저가화장품브랜드숍들이 갑을 논란의 중심에 섰으며, 오랫동안 메아리 없이 외쳐대기만 했던 편의점 가맹점주들이 가세해 갑을 사태는 프랜차이즈 산업 전체의 문제로 확장됐다.
그러나 백화점과 입점업체 간 관행화된 불공정 거래의 피해자로 거론돼온 패션업체들은 이번 갑을 논란에서 빠져있었다.
이에 대한 해석은 분분한데 일각에서는 백화점과 어패럴 간 1차 갑을 관계에서 어패럴과 생산업체, 어패럴과 대리점 간 2차 갑을 관계가 형성된 악순환 구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무엇보다 올해 촉발된 갑을 사태는 집단과 개인의 투쟁 형식을 띠고 있어 기업과 기업 간의 갑을관계는 절박함이나 호소력이 떨어진다는 해석도 있다.
갑을 논란이 무수한 파생어를 양산한 데서 알 수 있듯이 갑을 신드롬, 이상의 표현을 찾기 힘들다.
▶ 갑의 횡포 : 갑의 횡포는 프랜차이즈 사업에서 운영 결정권을 가진 본사 또는 가맹본부의 소통 없는 일방적 관리 행사를 의미한다.
중저가화장품브랜드숍 가맹점주들은 가장 심각한 갑의 횡포로 근접 출점과 밀어내기를 지적했으며, 방문판매대리점주들은 상권분할을 꼽았다. 편의점주들은 밀어내기 관행의 심각성을 제기하며 최소한의 생계비도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을 호소했다.
토니모리, 아모레퍼시픽, 세븐일레븐, 미니스톱 등 갑의 횡포 리스트에 올랐던 업체들 외에도 수많은 업체가 이 문제에 연류돼있지만, 어느 것 하나 해결된 것 없이 한해가 지나가고 있다.
▶ 을의 눈물 : 을의 눈물을 닦아준다는 정치권의 호소가 뜨거웠던 한해였다. 정치 속성상 진정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지만, 미디어를 끌어들이고 여론을 확산시킨 데 대한 기여도는 인정받을 만하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이다.
그러나 국감이 끝나기가 무섭게 거짓말처럼 조용해진 이유가 을이 더는 눈물을 흘리지 않기 때문일까.
▶ 갑의 호소 : 을의 눈물만큼이나 악의적 을의 태도에 대한 논란 역시 분분했다. 여론이 약자에게 관심과 응원을 보내면서 갑이 하는 모든 것들을 횡포로 치부했다.
그러나 갑의 횡포에 희생당한 을의 눈물을 아래서 자신의 잇속을 챙기려는 사악한 을을 향한 갑의 호소 역시 한 번쯤 귀 기울여 볼 만하다는 여론이 형성되기도 했다.
▶ 슈퍼 갑 : 갑을사태가 이어지면서 대기업유통업체들의 입점업체 대상 횡포와 무리한 근로시간 요구 등이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일명 ‘슈퍼 갑’으로 불리는 대기업유통업체 사이에서도 울트라 슈퍼 갑으로 롯데가 거론되는 등 대기업유통업체들에게는 불편한 한해였다.
[매경닷컴 MK패션 한숙인 기자 news@fashionmk.co,kr/ 사진=진연수 기자, 뉴시스]